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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l 20. 2024

세계가 꿈꾸는 나라, 한국을 향해

 복지 혜택의 이면들

15세에 학교를 중퇴한 두 프랑스 친구의 다른 삶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케 할 정도의 미모의 알제리 여자 친구가 있었다.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성품도 천사 같은 친구였다. 결혼한 적도, 남자친구도 사귀어 본 적 없지만, 부모의 사정으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조카를 친 딸처럼 15년째 키우던 친구다. 어느 여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어느 마을로 바캉스를 같이 떠났다.


깊고 푸른 에머럴드 빛의, 파도소리 하나 없는 고요한 지중해의 아름다움은, 나의 현실은 멈춰지고 사진 속으로 순간 이동해, 아름다움과 낭만만이 존재하는 정지된 화면 속에 들어가 사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우리는 함께 멋진 풍경의 현지 엽서를 사서 파리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친구가 내게 멋쩍게 오더니 편지를 대신 써달라는 것이었다. 사실은 글을 쓸 줄 모른다고. 항상 경우가 바르고, 특히 부러울 만큼 말을 너무 잘하는 친구라 나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스토리는 이러했다. 부모님이 알제리인이시고 다른 평범한 알제리인들처럼 파리로 이민을 왔다. 엄마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셨다. 그러다가 그녀도 15살 때부터 엄마를 따라 가사 도우미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5살에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게 되니 더는 학교에 다닐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직업은 가사도우미가 되었고, 학교와는 그렇게 담을 쌓게 되었다.


그녀는 그때의 선택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접근이 쉽고, 익숙한 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 길, 처음엔 친구들보다 잘 나가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한계에 부딪혔다.


당시 그녀의 꿈은 오래전부터 짝사랑하고 있는 프랑스 영화배우를 만나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매일 그 배우를 맘에 품으며 희망으로 삼았다. 그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도 다 꿰고 있을 정도였다.


며칠의 바캉스에서 그녀의 인생 많은 스토리와 많은 꿈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장 글도 쓸 줄 모르는 그녀의 현실 속에 그녀의 꿈들도 갇혀있는 듯했다. 정말 사랑스럽고, 외모만큼 마음도 아름다운 그녀가 더 활짝 날개를 피지 못하는 것은, 식민지 출신이기 때문인 걸까, 다른 이유가 있다면 뭘까, 안타까운 마음에 나 나름의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15살에 그녀처럼 학교를 떠나 경제적 활동을 시작한, 또 다른 프랑스인 친구가 있다.


그의 엄마는 보험설계사였다. 아빠가 어릴 적 감옥에 가게 되시고 유가 없던 형편이라, 그 역시 15살부터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엄마를 따라 보험 설계사 일을 배웠고 그도 보험 관련 직업을 갖게 되었다.


그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큰 성공을 거두어 프랑스 여러 곳에 많은 별장, 개인 경비행기, 파리에 수채의 아파트를 보유하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허물어진 오랜 별장을 헐값에 사서, 주말에는 별장으로 달려 가 땅을 파고 수영장을 만들고, 내부를 허물고 새 집으로 변신, 2~3년에 별장 한 채씩을 그렇게 만들어 갔다. 경비행기는,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사무실 지하에 작업장을 꾸미고, 그렇게 경비행기를 몇 년에 한 대씩 만들어 갔다. 돈이 조금 모아지면, 파리에 작은 스튜디오를 하나씩 매입해 임대료 수입을 모아 아파트를 늘려나갔다.


알제리 친구의 경우,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고 지중해에서 바캉스를 즐길 만큼의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복지혜택 덕분이다. 사는 집도 정부의 복지 혜택이 있었고, 바캉스를 갈 때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했다.


적게 버는 만큼 복지 혜택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어쩌면 그녀의 성장에 발목을 잡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 하는 말이 있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복지 혜택 정보를 한국인들도 서로 공유한다. 하지만 그런 복지 혜택에 대한 정보를 찾고 신청하며 기다리는 시간에, 더 공부하고, 더 일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끝이 나곤 했다.


자립심 강한 한국인의 정서 때문일까? 애초부터 기댈 곳이 없이 스스로 일어서야 했던 한국인의 특성이 이렇게 어디를 가든 나타나는 것을 본다.


우리보다 자원이 월등하게 많음에도 가난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아프리카를 보아도, 환경보다는 사람의 생각이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이민자 중에는 복지혜택 전문가가 많다. 그들은 각 복지 기관마다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는 각 종 복지 혜택에 대한 정보를 연구하고, 그것을 받을 때까지 매일 출근하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피해를 많이 받은 때문인지 자신의 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이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여준다.  


유럽에서 확산되는 반 이민 정서


앞서 말한 국민연합의 장마리 르펜은, 아프리카계 사람이 프랑스에 와서 5명의 자녀를 출산할 경우, 각 복지기관에서 받게 되는 보조금이 7000유로(한화 약 980 만 원)가 넘는다며, 이민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점점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프랑스 국민들도, 열심히 일한 만큼 세금을 내면, 열심히 일하지 않는 만큼 가져가는 복지 세금에, 결국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인가 하는 불만이 생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이런 불만은 더 커져갈 수밖에 없다.


이런 불만들과 이민 온 여러 민족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발생되는 테러 등으로, 반 이민 정서는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사회에 전체에 확산되고 있다.


한국도 점점 복지에 대한 비중이 커지면서 세금에 대한 부담 가중되고 있다. 이로 인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아직 이민 사회는 아니지만 인구 부족, 노동력 부족 등의 이유로 이민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앞서간 유럽의 고민들이 우리의 것이 될 날들도 그리 멀지 않을 수 있다.  


프랑스의 이민 역사를 훑어보면, 프랑스도 우리처럼, 처음에는 부족한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태리, 폴란드, 벨기에 등에서 많은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어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 재건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위해 대규모 이민을 유도해서,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같은 북아프리카의 많은 이민자들이 프랑스로 건너왔다. 1973년, 석유 위기로 경제가 악화되면서. 이민 제한 정책을 도입, 신규이민 유입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1990년대부터는, 이민자 관련된 사회적 긴장과 인종 차별 문제가 부각되고, 이민자들의 사회 통합 정책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1981년 미테랑 정부는, 이민자들을 보호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구제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다시 2000년대가 되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재임시기 (2007-2012년)에는. 엄격한 이민 통제 정책이 도입, 불법이민 단속, 합법 이민 요건을 엄격화했다.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반이민 정서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증가하면서, 오늘날 국민연합과 같은 극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커져가게 되었다.


300만 명의 외국인을 필요로 하는 한국


우리나라도 외국인 유입 과정은 비슷하다. 199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산업인력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1993년, 산업 연수생 제도를 통해,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을 연수자격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게 하였으나, 노동조건 열악, 권리 부족의 문제가 있었다.


2004년, 이를 해결하고자, 고용허가제를 도입,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 합법적 취업의 길이 확대되었다.


지금은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 수용 확대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결혼을 통한 다문화 가정도 급속도로 증가하며 결혼 이민자들을 위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다양한 지원 정책도 확대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외국인수는 226만 명이다. 2030년에는 300만 명의 외국인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낯선 프랑스 땅에서 이방인이었던 내게 아무 조건도, 아무 이유도 없이, 베풀었던 프랑스인들의 친절을 생각해 본다.


프랑스가, 특히 파리가 세계 어느 도시보다 눈부시게 이름답고 예술적이고 매력적인 것은 이런 사랑과 친절, 수용 속에 동화되어 가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있고, 또 모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 국에서 온 사람들과 출신국의 독특한 문화들이, 프랑스 문화와 융합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파리를 꿈꾸게 만드는 파리만의 독특함이며 파리 문화이다. 전 세계 예술인들이, 미식가들이 어느 도시보다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꿈꾸고, 식당을 꿈꾸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사회가 이민 문제로 지쳤다 하나, 여전히 프랑스는 이민자에 대한 프랑스의 몫을 다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처럼 ‘’ 세계의 모든 가난을 다 품을 순 없지만, 그 일부는 프랑스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테랑 정권 때의 미셀 로카르 총리의 말). 선진국의 의무이며 권리일 것이다.


언젠가 서울도 파리처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와 한국 문화가 융합된, 독특함과 아름다움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도시가 될 날을 기대한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또 법무부의 발표처럼 외국인에 대한 우리의 필요도 늘고 있다.


이민을 막는 것이 반시대적이라면, 앞서 경험한 유럽사회들의 이민 문제를 잘 연구해서, 문제보다는 해결점을 찾가가며 균형 있는 이민 정책으로, 오히려 세계적으로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는 글로벌 도시, 서울이 되어가기를 꿈꾸는 것이 현명하다.  


세계적인 도시는 세계적 시민이 만들어낸다. 든든하게 잘 다져진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 교육에, 이제는 세계적인 시민으로서의 ‘시민’ 교육이 더해짐으로 균형을 찾아간다면, 한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문화가 수용하고 발전되는, 한국만의 독특한 세계적 도시가 탄생될 것이다.


어디서나 따뜻하게 서로에 대한 정이 깔려있는 한국 사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열정과 용기, 실패에도 물러서지 않고 달려 나가는 강인함, 이방인에겐 더 배려가 필요함을 이해하며 친절을 베푸는 여유. 바로 이런 넘치는 에너지와, 복잡함 속에서도 정과 매력이 넘치는 한국이, 세계인들이 살고 싶어 하고 꿈꾸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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