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 그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순 없지만 우리의 의지로 행동을 통제할 순 있다. 사랑의 행동을 할 때 사랑의 감정은 만들어진다. ‘’
‘’ 사람의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 그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순 없지만 우리의 의지로 행동을 통제할 순 있다. 사랑의 행동을 할 때 사랑의 감정은 만들어진다. ‘’
프랑스인들의 선택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한국인과는 조금 다른 프랑스인들의 가족관계, 연인관계가 이해된다.
한 때 벵센느 숲 근처에 산적이 있다. 파리에서 2 정거장 떨어진 근교로 거대한 뱅센느 숲의 숨결이 불어오는 동네다. 조용한 곳이다 보니 은퇴한 노인들이 살기에도 좋아 우리 아파트엔 노부부들이 제법 사셨다.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오는데 집 앞으로 구급차가 와있고 1층 할아버지 집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할아버지 집에서 악취가 나는데 인기척이 없다는 이웃의 신고로 119가 출동한 것이었다. 문을 열어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꽤나 시간이 흘렀던 상태였다. 정말 슬프고 안타까웠다. 어떻게 아무와도 연락이 안 되었던 걸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자녀가 없으신 독신이셨던지 아니면 자녀가 있어도 크리스마스 때나 운 좋으면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21% 정도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독신자들이 많다 보니 노인이 되었을 때 찾아올 자녀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오후에 카페에 가면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적지 않다. 장 보러 나오시는 길에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를 찾으시는 분들이다. 할머니들은 얼마나 예쁘게 옷을 입고 나오시는지 흰 장갑까지 끼시고 우아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나오셔서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하루종일 집안에서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노인이 아닌 혼자 지내야 하는 유학생들이나 프랑스인들도 동일하다. 골목마다 카페가 많고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카페는 곧 그 골목의 거실 같은 역할을 한다. 카페에 나와 카페주인과 매일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며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 일상을 나눈다.
프랑스 친구들 중에 큰 수입이 없는데도 파리에 집을 소유하거나 별장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비결은 시간이 지나면서 먼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거나 또는 자연스레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로부터 상속받는 경우들이다. 집안에 자녀들이 별로 없다 보니 한 세대가 가면서 다음 세대에게 상속되는 집과 별장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프랑스의 부모자식 관계
일반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는 한국인들처럼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다. 자녀는 부모가 선택한 것이지만 자녀는 부모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자녀를 낳기로 선택한 부모가 자녀를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녀들에겐 당연한 것이 아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바라지도 않는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최선을 다할 뿐이다.
프랑스의 지금 세대가 이러한 자유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사실 이 전 세대들이 많은 의무감속에서 일궈놓은 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스도 2차 대전을 겪은 전쟁 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 의무를 가져야 했고 선택보다는 의무와 책임감으로 일을 하며 살아왔다. 이제 그 여유들이 그다음 세대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나의 친구 이자벨은 남자친구와 사귀다가 임신을 했는데 남자친구는 아기를 원치 않고 이자벨은 원했다. 결국 두 사람은 부모가 되는 선택 앞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였고 남자 친구는 아빠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이자벨만 홀로 아기를 낳아 육아의 책임을 혼자 지고 있다.
매정해 보이지만 이들의 선택이란 개념에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원망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선택에 자유가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도 자기 몫이므로 평가도 자신만의 것이다. 다시 말해 부모가 형편이 부족해 자녀 부양을 잘 못해주어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부모 또한 자식에게 한국 부모들처럼 미안해하지 않는다. 반면 자녀들은 받은 것에 감사하고 못 받는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가 의사인 그랑제꼴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겨울에 자신의 스웨터를 잃어버리자 정말 상심한 얼굴을 하며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사준 옷이라는 것이었다. 부족함 없는 가정이지만 엄마가 사준 옷 하나에도 얼마나 감사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랑에서의 선택의 개념
이 선택의 개념에서 사랑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진정한 사랑을 위한 자유로운 관계의 기초는 여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선택은 나의 의지에서 출발된 것이기에 항상 주도적으로 관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선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는 상호 간에 의무가 없다. 피차간에 자유의지만이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사랑을 사랑으로 느낄 수 있고 감사를 감사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의무에는 감사나 사랑보단 당연함만 있고 모자람에는 원망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사랑이 식어가는 현상들은 관계에서 사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의무를 더 크게 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불행도 자기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더 크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하다 보면 관계에서의 불만족이 주로 원인이 될 때가 많다.
기대하는 것을 충족받지 못할 때, 또는 관계에서 이런저런 의무를 다해주지 못하다고 느낄 때 욕구불만이 생긴다. 상대를 의무로 죄고 역시 자신도 의무로 죈다.
의무로 최선을 다하고 의무로 사랑을 할 때 사랑은 점점 식어지고 요구만 남게 된다. 사랑은 줄어들고 원망만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도 선택이란 개념을 이해한다면 사랑에 자유로울 수 있다. 내가 사랑하기로 선택했다면 때론 상대가 나를 사랑해주지 못해도 나의 선택으로 상대에게 사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선택의 자유로움에서 싹트고 열매 맺고 풍성해질 거라 생각한다.
나의 딸이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었을 때 해 준 말이다. 지금까지 8년을 연애하고 사랑했지만
결혼은 이제 너의 모든 자유의지를 갖고 평생을 그 사람을 사랑하기로 네가 스스로 ‘선택’하는 거라고. 이 한 번의 선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매일매일 너는 그 남자를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여러 어려운 시기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지속적으로 선택해 가면서 위기들을 넘기며 더 견고히 사랑을 키워나가는 딸 부부가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하다. 마치 답을 가지고 출발한 사람들이 가다가 문제가 막히면 이미 함께 찾아놓은 답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 같다. 그 답은 서로를 사랑해서 계속 사랑하기로 ‘선택’하였다는 답이다.
행동은 감정에서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설득의 심리학’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콩클린을 통해 설득당한 중요한 인생철학이 있다.
‘’ 사람의 감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 그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순 없지만 우리의 의지로 행동을 통제할 순 있다. 사랑의 행동을 할 때 사랑의 감정은 만들어진다. ‘’
성적인 감정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된다. 많은 한국인 부부들이 섹스리스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프랑스 부부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세상 젤 부러운 모습을 보인다. 항상 달콤해 보이는 스킨십이 닭살을 돛게 만든다.
그 차이는 사랑의 차이보다는 성적 표현의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단 프랑스 가정에선 아이들은 무조건 9시가 되면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실은 그때부터 부부만의 공간이 된다. 그 시간부터는 텔레비전에서도 19금영화들이나 방송들이 송출된다. 금요일 저녁 정도는 아이들을 맡겨두고 부부만의 외출을 갖도록 노력한다.
프랑스 식당이나 카페에서 연인들을 보면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한 눈 파는 것이 예의도 아니지만 이런 행동들이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비쥬(볼에다 키스하는 인사) 문화도 그렇다. 서로 만나면 무조건 연인이나 부부는 입술에 키스를 하고 눈을 마주친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사랑의 감정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결국은 선택과 의지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 아닐까 감정에 굴복당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도 만들어 내는 위대함.
나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기쁨이 그리고 내가 원하는 감정을 누릴 수 있다는 기쁨이 나를 지배해 온다.
프랑스부부들과 한국 부부들을 비교해 보며 건전한 부부관계를 위해선 이런 부분들을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 결혼을 했어도 아내와 남편은 영원히 여자이고 남자이다. 결혼을 하면 엄마가 되고 엄마가 되고 나면, 여자가 아닌 엄마의 모습으로 남편과도 살아간다. 남편과 아내는 여자로서 남자로서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였다. 아이를 낳아도 아이에게 엄마 아빠인 것이지 서로에게는 여전히 한 여자, 한 남자로서 존재해야 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 떠나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결혼 전체기간을 따져보면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출가할 아이들의 미래 행복을 위해서도 부부로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게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교육적이다.
2. 가정은 자녀 중심이 아니라 부부 중심이어야 한다. 자녀들이 우선순위가 아니고 부부가 우선순위를 갖는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관계를 존중하고 부모님의 권위아래 있을 때 오히려 안정감을 갖는다. 자녀에게 끌려다니는 부모 아래 있는 자녀들은 불안감이 더 크다. 부부의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자녀들도 부모의 관계를 존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3. 부부는 이성의 만남이고 이성관계의 핵심동력은 사랑이고, 부부로서 두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성적인 친밀감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성적인 친밀감을 잃어버리면 부부로서의 존재의미도 함께 희미해진다. 성적인 친밀감을 함께 누리는 것은 부부사이의 비밀스러운 특권이다.
4. 부부, 자녀, 모두 독립된 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항상 기본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기본을 지켜줘야 한다. 감사와 사랑의 표현은 기본적인 인권 존중의 나타남이다.
프랑스부부들과 한국 부부들을 비교해 보며 건전한 부부관계를 위해선 이런 부분들을 우리도 다시 생각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