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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다 Jul 17. 2023

당신의 풍경 - 안세나

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뉴질랜드거주 

#13살 아들, 9살 딸


 세나님은 학창 시절부터 본인이 납득하는 것,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평범하다고 하기엔 조금 특별하고, 특별하다고 하기엔 무난했던 학창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을 지나 그녀는 뉴질랜드에 정착하게 되었다. 정착한 지 1년이 되었을 무렵 문득 자신이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6년간 세계를 떠돌며 여행하듯 이곳저곳에서 삶을 이어 나갔다. 긴 여행 끝에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왔을 때, 뉴질랜드 국적의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됐고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둘을 낳게 되었다. 


- 소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셨던 건데, 한 곳에 정착해 육아를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말 엄청 힘들었어요. 저는 정말 저 밖에 없었거든요. 출산도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두 번이나 겪었어야 했고 심지어 한국도 아닌 곳에서, 친구도 친정식구도 없이 시댁식구들과 있다 보니 심한 우울증을 겪었죠. 시댁이 이민자이면서도 대가족이어서 같이 모이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저 하나만 알던 제가 결혼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낯선 세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게 견디기 힘든 일 중의 하나였어요. 아이 하나 낳을 때마다 ‘인간 된 도리로 딱 3년만 버티자!’ 해서 두 번 버티고 나니 7년이 지났잖아요? 정말 암흑 같았던 7년을 보내고 나니 ‘그래 그 시간도 그냥 운명이었다.’ 싶으면서 이제 그 엄청난 고통에서는 벗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육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군요. 

 힘들게 몸으로 육아하는 시기는 지났고, 이제 다른 면에서 고민하는 육아의 시기가 된 것 같아요. 육아는 끝이 없잖아요. 

아이들이 학교에 진학하고 나니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뭔가 해볼 만한 일들을 찾아봤어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주제로 공부를 해보자 해서 Primary Industry 쪽을 공부했어요. 아무래도 뉴질랜드가 1차 산업으로 먹고사는 섬나라다 보니 그걸 이해하는 게 앞으로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죠. 공부하는 동안 너무 재밌었어요.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자연 속에서 배우며 즐기며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보조교사(Techer aid)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저에게 생긴 거예요. 근데 저는 학교도 싫어하고 애도 싫어하니까 사실 고민의 여지없이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고 살아도 됐거든요. 근데 그 제안이 저에게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테스트처럼 느껴졌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으로서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래도 이 정도의 선은 지켜줘야 해.’ 하는 것들이요. 저는 사실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받아들여지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내가 살던 대로 좋아하는 것들만 하면서 사는 걸 보여 줄래? 아니면 내가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에 도전해 보고 부딪혀보는 삶의 모습을 보여 줄래?’를 선택해야 하는 것 같았죠.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했고 1년 정도 보조교사로 근무를 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뜻깊은 경험이었고, 제가 갖고 있던 교육관에 있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 세나님이 자유로웠던 것만큼 아이들에게도 어떤 경계나 한계를 두지 않으면서 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고민을 하셨었군요. 

 사실 저라는 사람이 그동안 경계나 안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모순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아이들에게는 그 안전을 위한 경계가 억압이나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 아이들을 위한 어떤 경계는 꼭 필요 하더라구요. 아이들은 그 경계를 모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이들은 그 경계를 지나치게 인식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제가 생각하는 바운더리(Boundary)의 의미는 다른 말로 세이프티(Safety)와 같아요. 

 부모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잖아요. 아이들이 그 경계를 못 느끼게 해야 한다면 부모가 가진 그릇의 크기가 엄청 커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수 있겠더라구요. 아이가 울타리 안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하게 그 울타리를 들고 계속 움직이면 돼요. 유연하게 움직이는 울타리인 거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애 때문에 한다’ 싶은 것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아이로 인해 부서지는 나의 한계, 아이가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삶의 모습 같은 것들이요. 물론 안 살았을 거냐 못살았을 거냐로 나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울타리를 들고 움직임으로 인해서 아이는 더 멀리 더 크게 성장해 나아갈 수 있음과 동시에 저 역시도 삶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길어지는 거더라구요. 

 일과 육아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어떤 경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엄마가 되어서 다른 세계로 넘어왔는데, 자꾸 엄마가 되기 이전의 삶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거잖아요. 더 이상 나의 삶의 위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넓어진 거예요. 한 통으로 생각해야 하죠. 

 아이를 낳은 건 산이 생긴 거예요. 이 큰 산을 얻어 놓고 산 뒤에 있는, 육아하기 전에 내가 정성을 들여서 가꿔 놓았던 정원으로 자꾸 돌아가고 싶은 거잖아요. 이제 기존의 정원과 산을 한 풍경에 같이 담아서 봐줘야 해요. 

 요즘은 그 산마저도 에베레스트 산, 한라산처럼 이름만 대만 다 알법한 산으로 만들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제주도에서 1년살이를 하면서 느낀 건데, 여기에 오름이 진짜 많아요. 근데 오름도 사실은 일반 산과 다를 게 없어요. 그저 크고 유명한 산들에 비해서 조금 낮고 덜 유명할 뿐이죠. 그런데 유명한 산에서 볼 수 있는 절경보다 더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풍경들을 제주의 많은 오름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내 삶에 커다란 산 하나가 생기는 것과 같았다. 출산 전의 삶이 잘 정돈된 공간 위에 내가 원하는 풀포기, 꽃송이를 심어내고 물조리개에 물을 담아 예쁜 정원을 가꾸는 행위였다면 출산 후의 삶은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커다란 산과 마주하고 그 산을 잘 보존해 내는 일과 같았다. 

 혹시 모를 산불이나 병충해의 피해로부터 지켜내면서 적당한 햇살과 바람, 때 맞춰 내리는 빗줄기를 기다리는 일. 산속에서 저마다 움트는 생명력에 감탄하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풍경에 울고 웃는 일상이 내 앞에 생긴 것이다. 원한다면 산을 넘어 이전의 정원으로 갈 수도 있고 애써 이전만큼 가꿔낼 수도 있겠지만, 내 인생의 풍경을 액자 안의 그림으로 넣는다면, 정원 앞에 우뚝 솟은 산의 모습을 빼놓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의 우리는 이전보다 더 크고 넓어진 내 삶의 액자 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 뉴질랜드와 한국을 비교했을 때 육아하는 데 있어서 좀 차이가 있나요? 

 우선 제가 말하는 것이 뉴질랜드의 실제상황이나 전체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보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저 한 개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해두고 싶어요. 

 뉴질랜드는 여권(女權)이 높은 나라 중 하나예요. 그 예시로 들 수 있는 사례가, 여기는 영국령이라 총리제를 선택하고 있는데, 헬렌 클라크라는 분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여성 총리로서 오랫동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총리직을 수행했어요. 이후에 최근까지 총리를 맡은 분은 미혼인 여성이었는데, 총리가 된 이후에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죠. 적어도 여성이라서 뭘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주체로서의 자부심이 더 강한 것 같기도 해요. 1차 산업을 위주로 하는 섬나라다 보니 출산율이 유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한몫한다고 생각하구요. 

 일 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육아보다, 좋아하는 일에서 찾는 가치가 있고, 일정 수준이상의 경제력을 동원해서 육아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평범한 수준에서 보통의 교육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별도의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수당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어요. 또 육아 자체를 커리어로 연계해 갈 수도 있구요. 한국에서 요즘 시행되고 있는 공동육아의 모티브가 된 것이 뉴질랜드의 ‘플레이센터’였어요. 기본 모토 자체가 ‘엄마가 제일 좋은 선생님이다.’여서 엄마들이 함께 교육에 참여하고 운영하죠. 그렇게 같이 아이를 키우다가 원한다면 필요한 교육을 단계적으로 이수해 최종적으로는 학사 학위까지 취득할 수도 있어요.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최초로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한 국가다.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인식이 보다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잘 되어있었다. 물론 한국과 비교했을 때에 그렇다. 

 2023년 1월, 뉴질랜드의 최연소 총리이자 재직 중 출산한 워킹맘으로 주목받았던 저신다 아던 총리는 번아웃을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재임 기간 동안 코로나19, 경제 위기 등을 겪으며 지지율이 하락하자 정치적으로 계산된 사임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사임 의사를 밝히는 연설문을 보면 그녀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얼마나 애써 왔는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정치인도 인간입니다…... 저는 총리직을 수행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더 이상 그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중 가장 많은 것을 희생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 분위기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여성으로서 고민하게 되는 어떤 지점은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죠. 세계 어느 나라든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지위는 예전에 비해 높아지고 있는데 임신과 출산, 육아의 시기를 겪으면 다시 200년 전의 지위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의사, 변호사를 하던 엄마들도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상황이 오면 비슷한 고민들을 하게 되더라구요. 

 한국은 좀 더 특별한 배경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인들의 무의식 안에는 아직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의 우리 그리고 전쟁을 경험한 분단국가로서의 불안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팅된 교육, 군대, 직장, 소비생활까지, 사회 전반이 어떤 두려움을 키워드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는 도시가 한국 엄마들에게 조기유학으로 유명한 동네예요. 그래서 그동안 한국 엄마들을 여럿 만나 자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종종 안타까운 지점들이 있었어요. 진짜 아이를 위해 뭐든 열심히 하고 너무 잘하거든요. 근데 한국 엄마를 보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폼페이의 화석, 엄마가 아이를 품에 넣고 한껏 웅크리고 있는 모습, 그게 떠올라요. ‘엄마가 애 키워야 한다. 이때 뭐 안 해주면 애 망친다. 엄마가 집에만 있으면 애들이 창피하다고 한다.’ 애를 주제로 자꾸 움츠러드는데, 그렇게 애 안고 웅크리고 있으면 결국 화산재 다 뒤집어쓰고 화석 되는 거예요. 화산이 폭발할 때는 애 손잡고 뛰어야죠. 그 뛸 수 있는 에너지는 ‘아이에 대한 내 안의 두려움은 쓸데없는 두려움이다. 나는 충분히 괜찮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의 환경에서 나는 최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거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뜨거운 화산재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뛰어간다고 해서 화석이 되는 걸 막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를 끌어안은 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괜찮다고 속삭이며 의미 없는 위로를 건네다가 화석이 되느니, 우린 해낼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눈으로 용기를 주고 손 꼭 잡고 힘껏 달려 나가다가 화석이 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사실은 거대한 행복산업과 육아, 교육 시장에 이용당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은 아닌지, 부모로부터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고 배웠지만 그것이 민주화의 격동과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그들이 가진 시대적 불안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나님은 스스로가 대체로 겁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에 대한 질문에도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답변을 내어놓았다. 


- 일에 대한 세나님의 생각이나 느낌이 궁금해요. 

 일이요. 글쎄요. 사실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일찍 은퇴하고, 일 안 하고 놀고 싶잖아요. 저는 어떤 외부적인 평가에 의해 내 노동력의 가치가 숫자로 측정되는 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반항적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나의 노동력의 가치에 매겨지는 숫자가 타인의 주관적인 필요와 판단에 평가되는 시스템에 맞추기보다는 '이 일은 필요한 일인가, 그 일을 좋아하는가, 내가 잘 할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조화롭게 충족되고 내 삶에 우선순위인 것들이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 안에 있다면 그것이 내가 할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은 제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이기도 하고, 삶에서 직업이나 경제적 가치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6년간 해외를 돌아다니며 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돌이켜 봐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나의 능력을 평가해서 숫자를 매겼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제가 알고 있는 그 일의 가치, 예를 들어 ‘하루 막일 하면 5만 원이야, 할래?’ 하면 제가 선택하는 거였어요. 그 일에 대한 가치는 이미 정해져 있고 제가 선택하면 ‘내 일과 그 일에 대한 가치는 내가 판단하고 내가 선택한다.’ 그런 개념이 됐던 거죠. 그래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었고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크게 딜레마를 가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세나님에게 가치 있는 일은 어떤 일이에요?  

 어떤 것을 만들어 냈느냐, 무엇을 이뤄냈냐 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의미를 내가 얼마나 느낄 수 있느냐가 더 가치 있는 목표나 보상이 된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지만 내가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무언가도 어디에선가 분명 씨앗이 되었다. 어떻게 크는지 나는 안 봐도 된다. 분명 어딘가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라고요. 그렇게 저는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심이고 그런 것에 노력하고 성실히 할 수 있다는 걸 자신감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어릴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걸로 대학을 가겠다면서 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했었거든요. 그때 노래를 했었어요. 근데 노래는 내가 즐거워서 혹은 부르고 싶어서, 나 좋으려고 하는 건데 사람들이 그걸 듣고 좋아하잖아요. 단순히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음악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나 에너지를 전달할 때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나 음악을 통해 사용하지 않는 감각들이 자극되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참 매력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일상에서도 그렇게 평소 쓰지 않는 감각 또는 일반적으로 느끼던 오감을 다르게 인지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건 결국 감정을 바꿀 테고 그것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꿀 수 있거든요. 심지어 다르게 느끼려고 의도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지금 어떻게 느끼느냐’를 멈춰서 자신에게 물어보면 그 감정을 긍정으로 갈지 부정으로 갈지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과 육아가 있겠지만 누군가의 말로 인해, 어떤 환경적 변화로 인해, 심지어 날씨를 이유로 시선을 조금만 틀어도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세나님의 일과 육아는 보이지 않는 것을 쫓아, 보이지 않는 것에 진심을 다했던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앎을 찾아 정해진 일 없이 세계를 여행했던 젊은 날, 사람 된 도리라는 말로 옭아맸을지언정 진심을 다해 아이 둘을 키워낸 시간, 아이들을 통해 내 삶에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경계를 세워보고 그 둘레의 영역을 넓혀가던 순간이 있었다. 그렇게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그녀만의 숲과 풍경 속에서 매일의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감각하는 일들이 그녀가 삶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었다. 


- 인터뷰한 소감이 있으시다면요? 

 인터뷰를 돌이켜보니 굉장히 굳건하고 강한 사람처럼 말해온 것 같은데, 사실 저는 대나무 같기보다는 민들레 같은 잡풀이라 항상 많이 흔들려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자주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정신없이 흔들리다가 다시 정신 차리기를 반복하죠. 그 주기가 제가 성장할수록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고, 아마 죽을 때까지 그 갭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죠. 

 저는 오늘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고 하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육아에 대해 일에 대해 새로운 느낌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각자가 그려낸 풍경들이 그 산과 오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네요. 


 그녀의 마지막 말처럼, 육아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우리에게도 나름의 풍경이 있었음을 깨닫는 인터뷰였기를, 각자의 오름에서 예쁘게 피어난 꽃송이를 발견하는 소중한 순간들을 마주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민들레처럼 마음껏 바람에 흔들리며 누구보다 멀리 날아갈, 그리고는 어딘가에 씨앗을 내릴 세나님의 새로운 풍경도 온 마음 다해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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