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8살 아들
#보육교사, #그림책큐레이터,
동글 엄마님은 10년 경력의 보육교사로 근무 중이다. 이전의 전공과 직업들은 보육교사와 무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보육교사가 되었다고 했다. 고작 두 문구로 그녀가 이 일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해 온 과정과 육아와 병행하게 된 계기 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이 직업을 선택했어요.’ 혹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자격증을 준비했어요.’와 같은 뻔한 답변은, 내가 듣고 싶었던 답이었음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가 왜 이 일을 선택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이 일을 통해 그려 나아갈 그녀의 내일이 더 중요했다.
- 저는 제 아이 둘을 집에 데리고 있는 것도 벅차서 주말마다 어디라도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보육교사 반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5명의 아이들을 한 번에 돌봐야 하잖아요. 힘들지 않으세요?
사실 저는 보육교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100이라고 한다면 저는 한 150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기가 빨리는데, 저도 그런 기분을 종종 느끼기도 하지만 대게는 괜찮거든요. 완전히 소진되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담임교사로 근무할 때에는 아이들의 성장을 옆에서 함께 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거든요. 연장 반 교사로 근무 중인 요즘은 담임교사 맡았을 때처럼 농도 짙은 보람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늦게 오시는 부모님을 아이가 맞이할 때, 부모님이 저 또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않을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에너지 넘치는 선생님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즐겁게 놀았구나. 엄마아빠를 너무 그리워하거나 선생님을 힘들게 하지 않았겠구나 참 다행이다.’ 생각하고 마음 놓고 맡기실 수 있게요.
-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너무 감사한 말씀인 것 같아요. 이 일에 대해 동글 엄마님이 갖는 가치관이나 태도를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저는 아이가 즐거워야 가정이 편안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이가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하면 부모님은 주변의 도움 없이는 당장 직장을 나갈 수도 없잖아요. 저는 제가 단순히 아이만 돌보는 게 아니라 한 가정이 경제활동으로 삶을 영위해 나아가고 아이의 밝음과 순수함으로 다시금 에너지를 얻어 있을 수 있게 하는 선순환의 구조의 가장 중심에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중요한 일인데 여러모로 힘들죠. 언론에서 보도되는 몇 안 되는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사례들은 보육교사들에 대한 안 좋은 여론만 확산되게 하고 보육이라는 일 자체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해요. 자격운운은 둘째치고 현장이 얼마나 힘든지는 잘 모르잖아요. 보육교사의 처우와 인식개선이 먼저 선행되어야 더 좋은 양질의 보육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부모님들이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기는 것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불안해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너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보육교사의 월급은 기본적으로 어린이집에서 지급하는 기본급과 정부지자체에서 지원되는 처우개선비 그 외에 각종 수당으로 구성된다. 기본급은 대게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하며 지자체에 따라 다르지만 담임교사의 경우 30여만 원 농어촌 특별교사의 경우 10여만 원의 추가 처우개선비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만난 어린이집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로 인해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방역비로 많이 지출되면서 어린이집에 할당되었던 방역비나 기타 활동비 명목의 지원금이 줄어, 원장 개인 사비로 이미 지출된 부분을 메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원장 개인 역시도 기본급은 최저시급으로 받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본급 외에 추가적인 수당을 받을 수 있으니 적지 않은 돈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경쟁의 논리를 들이댈 수 없고 얼마나 아이를 효과적으로 돌보았는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없음을 안다면 이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보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넉넉한 예산 편성과 지원금의 확대는 꼭 필요하다.
- 보육교사 일뿐만 아니라 그림책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그림책은 모든 교사들이 가장 손쉽게 활용하는 매체 중 하나예요.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도구로서 접근했는데 읽다 보니 그저 아이들만 보는 그림책이 아니라 어른들도 볼만한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실제로 그림책을 만드시는 분들 만나보면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한 권을 만드시는지 알 수 있어요. 그야말로 장인정신이 깃들어진 하나의 작품이에요.
원래 제가 미술관 가서 미술 작품 보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이를 데리고 미술관에 가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 되었거든요. 같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도 민폐지만 누구보다 제가 힘들더라고요. 최근에 정말 유명한 도슨트의 작품 설명이 있다고 해서 그래도 아이가 좀 컸으니 같이 가볼 수 있겠다 싶어 찾아갔었거든요. 설명 중간에 아이가 힘들다고 뒤집어지는 바람에 20kg이 넘는 아이를 등에 업고 30분 동안 남은 전시를 들었어요. 다시는 아이와 오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던 날이었죠. 아무튼 직접 가서 보는 것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그림책을 보면서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싶은 저의 욕구가 해소되는 느낌이에요. 집에서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도 참 좋고요. 아이랑 같이 그림책을 보면 아이의 시선으로 발견하는 재미난 것들이 많아요. 제 시선에서는 글자를 보느라 보지 못한 작가들이 숨겨놓은 장치들도 아이는 쉽게 찾아내곤 하더라고요.
아이로 인해 시작한 그림책이었지만 누구보다 제가 즐기고 있고, 아이와 함께 즐기면서 더 즐거워진 게 그림책이에요. 조금 더 잘 알아보고 이 분야에 대해 깊게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림책과 관련된 분야도 많이 공부하게 되고 하다 보니 또 욕심이 생겨서 그림책 큐레이터 자격증도 취득하고 대학원 진학까지 하게 됐어요.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종종 내가 아이처럼 놀고 있는 듯한 시간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정확한 진단명 없이 주사를 남발하는 병원놀이와 내가 낸 돈보다 많이 거슬러 받아야 하는 이상한 가게놀이, 맥락도 없이 공격만 퍼부어 대는 공룡 박치기 놀이는 예외다.
보통 내가 아이와 완전히 동화되어 놀이하는 시간은 스토리가 있는 책을 읽을 때,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거나 노래 부를 때 등이다. 결국 내가 즐기고 있어야 아이와 완전히 동화될 수 있다.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지를 고민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내 놀이에 끼어들게 하는 것,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무언가를 같이 해 나아가는 시간 속에 있음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놀이 방법이다.
- 그림책 큐레이터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거예요?
쉽게 설명하자면 그림책을 골라주는 사람이에요. 서점에 가면 서가에 전시된 책 중에 이달의 그림책을 선정하는 일이나 주제에 따라 그림책을 구분하는 일, 그림책 주제와 맞게 오브제를 전시하는 일, 책에 메시지를 적어서 추천하는 글을 쓴다든가, 어떤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특정 책을 추천해 준다든가, 그림책을 읽는 좋은 방법들을 코칭해 준다든가, 그림책과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하는 게 그림책 큐레이터라고 보시면 돼요.
- 대학원 진학도 하셨다고 했어요.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으세요?
유아교육학 석사 과정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그림책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동발달과 교육과정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지금 논문 계획서들은 대부분 그림책과 관련되어 있는 주제예요.
어릴 때부터 제 꿈은 말로써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어요. 낭독도 제 목소리와 말을 이용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오디오 북을 만들어 주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그림책을 알게 되면서도 저만 좋고 끝난 게 아니라, 아는 지인의 제안으로 ‘그림책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코로나 기간이어서 Zoom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림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수업들을 기획해서 강의를 했어요. 한 회당 50~100명을 대상으로 6주짜리 수업을 3회, 5주짜리 수업을 1회 했었으니 그래도 250여 명의 엄마들을 만나 그림책, 명화 등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역시나 제가 알고 있는 것을 타인과 나누는 데서 오는 기쁨이 크더라고요.
강의를 조금 더 해보고 싶었는데 석사 학위가 있으면 한층 전문적인 지식으로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겠다 싶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죠. 아직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저 혼자 연구하고 공부해 온 내용들을 토대로 4월부터는 도서관에서 그림책/책육아/엄마표 그림책 큐레이션 강의를 맡게 됐어요.
-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사는 방법을 알고 계신 것 같아요. 결국은 동글 엄마님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계신 거 아니에요?
맞아요. 결론적으로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자꾸 새로운 길들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어요. 누가 ‘뭐 할래요?’ 하면 손들고 ‘저요!’ 하고 저질러버리는 저의 적극적인 성향이 한몫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종종 후회를 많이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이걸 잘 버티고 해내면 나중에는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하게 돼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 저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인플루언서 분과 함께 했던 그림책 강의도, 문화센터에서 하게 될 강의도, 시립도서관 그림책 큐레이션 전시나 활동지 만들기 작업 등 역시도 곁에 계신 분들이 먼저 저에게 추천해 주시고 제안해 주신 덕분에 함께 할 수 있었거든요. '아 내가 인복이 좀 있나 보다' 싶을 정도로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참 감사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보육교사도, 그림책 큐레이터도 제 적성에 잘 맞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할 때마다 즐겁고 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즐거움에 대한 정의 내린다면요?
즐거움도 종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나게 놀아서 재미를 느끼고 그것이 즐겁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누군가한테 무언가를 해줌으로 인해서 기쁨을 느끼고 즐거울 수 있잖아요. 저에게 즐거움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었을 때, 그리고 이렇게 내어놓은 결과물을 타인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참 좋아요. 비단 배운 것에 대한 결과물뿐만 아니라 단순히 여행 가고 맛있는 것 먹고 이런 것도 블로그에 기록해 두거든요. 단순한 행위지만 이걸 기록하고 타인들과 공유함으로써 정보나 감상을 제공할 수 있으니 제가 한 일이 단순한 활동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블로그의 경우, 아이와 함께한 활동이나 사진, 영상들을 올리곤 하는데 이것도 하나의 아카이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가족이 그리고 우리 아이가 살아온 과정들을 쭉 돌이켜볼 수 있도록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올릴 때는 막상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구글 애드 센스로 들어오는 수입도 나름 쏠쏠하고 제가 홍보하고 싶은 강의나 콘텐츠가 있으면 알리는 용도로도 참 좋은 것 같아요.
- 이런 부지런한 일상들을 영위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해요? 철저한 자기 관리 노하우 이런 거 있으세요?
무조건 체력이죠. 육아하는 엄마들에게 중요한 건 첫째도 체력, 둘째도 체력이에요. 이것도 에너지와 같은 맥락인데 내가 몸이 힘들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날은 아이에게도 친절할 수가 없어요. 내가 몸이 힘들면 애한테도 짜증이 나고 그럼 아이도 짜증을 내고 다시 또 짜증 내는 아이에게 짜증이 나는 악순환의 반복이죠. 반대로 애가 좀 몸이 아파도 내가 체력이 충분히 좋으면 아이를 케어해 줄 수 있는데, 보통은 아이가 아프고 나면 엄마가 꼭 아프거든요. 저는 적어도 애가 아프고 나서 나는 아프지 말아야겠다 생각해요. 예전에는 재활목적의 필라테스 강습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 정도 기초체력을 만들고 난 뒤로는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기보단 잘 챙겨 먹으려고 해요. 그리고 잠도 충분히 잘 자려고 하고요.
- 오늘 인터뷰 소감은 어떠셨어요?
다른 분들이 왜 인터뷰 끝나고 나서 좋았다고 하시는지 알 것 같아요. 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 떠다니는 생각들을 잡아당겨 손바닥 위에 내려놓고 귀하게 바라보는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랬구나…’ 하고요.
그녀의 본업은 보육교사지만 보육교사를 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에너지, 장점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일들에 그녀가 가진 재능들을 한껏 쏟아부어 작은 기회들을 만들어 왔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던 ‘말로써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었으며, 그녀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내가 놓지 않으면 놓아지지 않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그녀를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더불어 특정한 직업을 가진 모습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모습을 상상할 때 그 꿈에 한발 더 가까워지리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육아 회색지대에서 일과 육아 중 무얼 선택할지 고민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혹은 하고 싶은 것 가운데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가치들을 찾아내고 그것에 온전히 그리고 즐겁게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이가 먼 미래에 부모인 자신을 추억할 때 ‘나랑 진짜 재밌게 놀아줬어, 우리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은 정말 즐거웠어.’라고 말해준다면 참 좋겠다며 옅은 미소를 짓는 그녀에게서 그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도 얼마나 최선을 다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먼 미래에 그녀의 아이가 ‘우리 엄마는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즐겁고 밝은 사람이었어.’라고 덧붙여 추억할 수 있으리라 감히 확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