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회색 지대 인터뷰집
#사회복지사, #6살 아들
호롱님은 아이를 낳은 뒤 만 3년 정도 공백기를 가졌다. 이후 재취업에 도전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현재는 인권센터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경력 공백을 겪으며 일과 육아사이에서 방황하는 회색지대의 누군가에게 현실을 들여다보며 공감하는 시간이길 바래본다.
-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시게 된 거예요?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육아로 인한 공백도 있으셨는데 일자리를 찾기가 쉽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아이가 18개월 즘 되었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었어요. 면접 기회도 잡기 어려웠는데, 어렵사리 찾아간 면접장에서도 어떤 나이 있으신 남자분이 ‘애가 이렇게 어린데, 애 때문에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죠!’라고 하시면서 너무 구박을 하는 거예요. 안 뽑으실 거면 그런 잔소리하지 마시고 보내주시지… 아직도 저를 구박하시던 말투와 눈빛이 기억나요. 정말 서럽고 속상했어요.
재취업을 위해 애쓰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한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어요. 어렵사리 알바자리부터 구해 일을 하거나 계약직 신분으로 있다 보니 불안정한 시기들을 보내왔죠. 지금은 인권 관련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여전히 불안한 마음은 있어요. 2년 뒤면 또 바뀔 자리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저 소모되고 있는 소모품 같다는 생각에 허무함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다가도 ‘이 자리가 그래도 어디냐, 감사하자, 2년 뒤에 걱정하자, 기회가 좋으면 또 정규직이 될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지금처럼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내가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20대 때 저의 꿈은 멋진 직장에서 직책 달고 일도 완벽하게 해내고, 가정도 잘 가꾸는 완벽한 슈퍼우먼을 꿈꿨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것은 어불성설이고 취업불안이나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마 전 필자가 카페에서 하루 3시간,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을 근무하는 아르바이트 자리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점주는 면접 시간의 반 가까이 그간 육아를 이유로 결근을 하거나 얼마 못 가 일을 그만둔 사례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대부분의 면접 시간을 점주의 불안함을 달래는데 썼다. 면접 분위기는 좋았지만 이후 연락은 오지 않았다. 한 달에 300만 원을 벌던 내가 하루에 3만 원도 벌 수 없게 되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여성가족부에서 실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력 공백 이후 첫 번째 일자리에서 사무직과 상용직은 각각 23.7% p, 36.7% p 감소했고, ‘판매직(14.0% p)’, ‘서비스직(12.5% p)’, ‘임시근로자(9.4% p)’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력 공백 이후 첫 일자리 임금은 경력 공백 이전의 84.5% 수준이었으며 경력 공백을 경험한 여성의 현재 임금은 경력공백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의 84.2% 수준으로 경력 공백이 임금 격차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임을 밝혔다.
통계 현황에서 볼 수 있듯이 경력 공백기를 겪고 난 후 상당수가 호롱의 사례와 같이 불안한 계약직 신분이거나, 이전 임금 수준의 약 84% 수준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 마저도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다니고 있었다.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돈이 가장 중요하죠. 저는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생활을 길게 했다 보니 직장에서 돈을 벌고 일하는 것이 생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어요. 제가 벌고 그 번 돈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 제가 전업주부 생활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 한잔을 사 먹는 일, 내 얼굴에 바를 화장품을 하나 사는 일이었어요. 자꾸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남편 혼자 외벌이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니 쓸 수 있는 돈은 한정적인데 어딘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더라고요. 남편이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제가 스스로 자꾸 주눅 드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알바라도 하게 되면서 내 명의의 카드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게 되면 너무 행복하고 눈치도 안 보이고 좋더라고요.
-적지만 내가 스스로 번 돈이 주는 안정감이 분명 있네요.
맞아요. 사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물리적으로 많이 기대하고 의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그런 기대감이 많이 없어졌어요.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에도 남편과 동등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주변에 전업주부 하는 친구가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맨탈이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어쩌면 직장으로 도망친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는 아이를 돌보는 일도 너무 힘들고, 나를 노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견디기 어렵고, 내가 밤 11시까지 집안일을 하고 쉼 없이 움직여도 남편도, 심지어 나 조차도 뭘 잘했다고 알아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빨리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일터로 도망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업주부를 하면서 집안일에서 의미를 찾고 전업주부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친구가 새삼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볼까요?
저도 지금은 워킹맘이지만 당장 일 그만두면 전업주부거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업주부였던 시기가 있었죠. 그렇게 둘 다 경험해 보고 나서 느끼는 게, 엄마들 사이에서도 편 가르기가 있어요. 일을 안 한다고 하면 ‘집에서 뭐 하냐, 애 어느 정도 컸으면 일하러 나가야지’ 하고 직장 다니면 ‘얼마나 벌겠다고 일을 나가냐,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애 키울 시기에 애를 제대로 돌보아야지’ 하죠. 그 두 가지 시선을 다 겪고 나니 ‘아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겠다.’가 되더라고요. 대중들의 시선보다 더 절절히 느낄 수 있었던 분위기 차이는 시댁으로부터 왔던 것 같아요. ‘일도 안 하고 노는데, 김장할 때 와서 좀 도와라’ 하시다가도 ‘직장 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오지 마라, 가서 쉬어라.’ 하셨었어요. 일 할 때는 제 사적인 영역이 존중되고 배려받는 기분이라면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온전히 침범하는 느낌이었죠.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주장에서도 여성은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고 합니다. 타인의 정체성을 통해 자신을 형성하고 만들어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로 한국 문화에 강력하게 뿌리내린 가부장적인 태도에 대해 여성들은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고 그것에 도발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저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 부적절함을 느끼지요. 죄책감과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주인인 가부장, 남성의 질서가 부과해 놓은 것입니다. 안정과 유지라는 안락한 환상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이득을 얻은 그 주인인 가부장의 의식과 주인 담론이 만들어낸 지식들이니까요. …. 자아를 강화해서 내 고집대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주장하면, 정체성을 찾는 주체가 된다는 생각은 큰 오류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주체는 즉 자아가 곧 세계가, 문화가, 인간에 대한 거대한 담론의 권력이 만들어 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체성을 회복하고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지식의 지배에서 의문을 놓지 않는 행위입니다.
-박우란 [남편을 버려야 내가 산다] 中
우리 삶에서 필연적으로 듣게 되는 수많은 타인의 음성을 우리는 감히 거부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의심 없이 갖는 생각과 행위들이 어떤 시선과 태도에 길들여져 있는지 의심하고 알아차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호롱 역시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던 우리 사회의 담론이 만들어낸 어떤 기준들을 온몸으로 겪으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또 다른 자신을 만나기도 했다.
-왜 자꾸 뭔가 하려고 하는 걸 까요?
제 안에 뭔가 ‘성장을 해야 된다.’는 버튼이 하나 있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했지만 내가 그래도 그날 하루를 잘 보냈으면 일상이 실패한 것도 의미를 잃은 것도 아닌데 견디기가 힘들 때가 있더라고요. 임신기간 동안에도 일을 쉬고 있었는데, 그때도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임신 기간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잠이 많을 때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낮잠을 자고 3시쯤 눈이 떠지면 화들짝 놀라곤 했던 기억이 나요. 일을 하거나 공부를 했으면 생산성이 가장 높을 시간인데 내가 쓸모없고 한심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도태될 것 같은 불안함, 내가 쓸모 없어진다는 기분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어딘가에 고립될 것 같고요. 누군가 ‘넌 여기서 나오지 마’ 할 것 같아요. 물리적인 어떤 틀을 떠나서 내 안의 심리적인 공간에 갇힌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되는 건 너무 두려워요.
- 그럼 삶에서 내가 꼭 지켜내고 싶은 게 있다면요?
자유요. 제가 남편이랑 결혼하고 나서 결혼 전이랑 모든 게 다 달랐는데, 딱 하나의 장점이 모든 단점을 없애더라고요. 그 장점이 저한테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의 삶에서 다른 사람이 제 영역을 침범한다는 생각이 들면 굉장히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 고립과 자유는 뭔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으면서도 모순되는 지점이 있네요.
맞아요. 고립되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시댁과 가까이 살았던 그 3년의 시간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었거든요. 결혼하고 나면 저는 무조건 사랑받고 환대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내 가정의 바운더리를 존중받으면서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있었죠. 그런데 존중받고 싶으면 거리를 둬야 하고 제안을 거절해야 하고 미움받는 것을 감수해야 되더라고요. 사랑받고자 하면 경계를 허물어야 하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원하는 대로 들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더라고요. 미움받더라도, 고립되더라도 내 자유를 지켜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고립되면 외롭지 않나요?
사실 저는 천주교 신자예요. 외롭고 고통스러울 때는 그대로 두죠. 피하면 피할수록 힘들더라고요. 요즘 많이 외롭구나, 힘들구나, 하면서 신앙으로 위로받아요. 신혼 때는 남편이 좀 따뜻하고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작년에 남편이 저랑 결혼한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적당히 시부모님께도 잘하고 집안도 본인이 꿀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뒤처지니 말 그대로 적당히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란 결론을 얻었어요. 냉정하지만 그게 진실인 것 같더라고요. 포기라는 말은 좀 그렇고 그런 저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은 오히려 좀 더 편해졌어요.
주말에도 남편과 아이 함께 나가 놀고 싶은데, 막상 나가면 남편이 피곤해하고 있는 게 너무 느껴지니까 이제는 그냥 따로 놀아요. 남편은 집에서 청소하고 저는 아이랑 나가 놀고 그러죠.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를 예민하게 읽으시는 편인가 봐요.
저는 아직도 아기 우는 소리가 너무 스트레스예요. 누가 우는 소리만 들려도 흠칫 놀라요. 그 친구의 감정이 전이되는 느낌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감정 변화에도 영향을 많이 받아서 종종 벽을 쌓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공감도 TPO(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이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저도 상황과 타이밍에 맞게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고 싶네요.
호롱은 끝내 쓸모 없어져 어떤 공간에 버려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타인에게 맞춰 애쓰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게 타인을 향해 있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선을 넘는 타인으로부터 오는 피로감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롭기 위해 고립을 선택한 호롱의 외로움을 기록하면서 나는 그녀가 가엾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고립은 스스로를 향한 애정이자 호롱 그 자체로 살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 같은 것이었다. 두렵지만 마주해야 하는 내 안의 진실된 모습, 나의 진짜 욕망들이 그 고립된 공간 안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소감이 있다면요?
저는 제 내면을 항상 저만 대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나만의 세계를 갖게 되는데 인터뷰를 통해 저만의 세계를 향다님이 들여다 봐준 기분이에요. 내가 몰랐던 나를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서 저의 착각이나 제가 잘 모르던 저를 발견하게 된 기분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기만 하는 편이었는데 최근에 내 얘기를 가장 많이 한 날이 된 것 같아 어색하기도 하고 이 인터뷰가 과연 잘 진행된 인터뷰인가 걱정도 되는데, 잘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마지막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들을 인터뷰이가 해준 답을 바탕으로 성실히 담아내었지만 인터뷰어의 권한으로 위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고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고쳐보고 싶다.
[제가 작년에 남편이 저랑 결혼한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적당히 시부모님께도 잘하고 저에게 공감받는 따뜻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거나, 집안도 본인이 꿀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뒤처지니 제가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말 그대로 적당히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거란 결론을 얻었어요.]
그녀의 일터인 인권센터에서 만나게 될 고객들에게, 주말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나가 뛰어놀 아이에게도 인터뷰 내 필자가 느꼈던 호롱의 따스함과 성실함이 온전히 전해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육아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그 누군가의 삶에서도 오늘 호롱의 가슴 깊은 고민과 성찰이 따스함으로 다가갔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