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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미 Jun 07. 2024

休: 파랗게 지친 자신을 노오란 에너지로 채울 시간

: 휴가의 의미

그림 이명애, 『휴가』(모래알(키다리), 2021)     




비뚤어진 블라인드와 어질러진 책상의 모습이 어울려 보인다. 널브러진 양말 두 짝과 책상 아래 떨어져 있는 노트조차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을 만큼 그 방은 지치고 힘들어 보인다. 이러한 방의 모습이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의 뒷모습과도 닮아있다.



창밖을 내다보는 여자의 눈빛은 초점을 잃은 듯하고, 파란 표정은 그녀의 지친 일상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달력에 표시한 ‘X’가 그녀가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낸 표시 같다.



그녀는 롱패딩에 자신을 구겨 넣어 기차에 올랐다. 계절적으로 롱패딩은 맞지 않지만, 롱패딩은 계절감을 잃을 정도로 일에 쫓겨 살아온 그녀의 일상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녀가 냉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건 롱패딩 입은 그녀는 지금 충분히 지쳐 보인다. 



파란 내지 세상 속에서 검은 애벌레 같은 그녀가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뉘었다.



그녀는 파란 한숨을 작게 내뱉어 보았다. 그 숨을 내쉴 때마다 용기가 생겨나는 듯 점점 깊고 크게 파란 한숨을 내 쉬어 본다.




‘휴’



기차가 그녀의 파란 세상을 내뱉어 놓고 노오란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삼척에 도착했다. 드디어 그녀가 두꺼운 롱패딩을 벗었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검은 고양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파란 그림자의 그녀가 노오란 그림자의 고양이를 따라간다.



그 고양이가 사람이 많은 해변으로 갔다. 색색의 파라솔이 펼쳐진 모래사장과 너울거리는 푸른 해변 속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도 그 사람들처럼 구명조끼를 입고 그들 속에 앉았다.


  

그녀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는 양말도 아무렇게나 벗어 놓고, 먹은 음식도 치우지 않았다. 가방 안에는 일거리가 가득 들어앉아 있고, 노트북은 충전 중이다. 그녀는 창밖에 내리는 비를 멍하니 내다보고 있다. 일상에서 떠나온 듯했는데, 다시 일상 안으로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비가 그치자 그녀는 다시 해변가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 틈에 발견한 지난번에 마주쳤던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는 다시 검은 고양이를 따라나섰다. 혼자였던 그녀가 검은 고양이 덕에 외롭지 않게 되었다. 



검은 고양이는 세상과 단절된 듯한 푸른 숲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와 검은 고양이는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안겼다. 



점점 그녀를 감싸던 푸른빛이 노오란 빛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하는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시원한 계곡에 몸을 뉘이고, 푸른 바닷속에 자신을 내던졌다.



그녀는 지친 일상의 한숨을 자연 속에 다 토해 놓고, 자연의 냄새, 소리, 촉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삶을 살아낼 힘을 얻었다. 노오란 바위 위에 검은 고양이와 함께 앉아 붉은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제법 여유 있어 보인다.



한여름 바닷가의 모래사장과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치는 노오란 색이 뜨거운 태양 아래 무더위 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얻는 에너지 같기도 하다. 파랗게 질릴 때까지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는 우리가 자연에서 잠깐 머무는 것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그 에너지 말이다.



그녀가 다시 검은 롱패딩을 입었다. 그녀 발아래 파란 그림자가 다시 생겼다. 그녀에게 아직 휴가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그녀는 파란 바다를 눈에 담고, 롱패딩을 벗어 들고 산에 올랐다. 가벼운 차림의 그녀가 검은 롱패딩을 입고 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이들도 두꺼운 롱패딩을 벗으러 온 것 같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녀는 이제 따뜻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지쳤을 때, 쉬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잠시 일상에서 멀어져 보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쉼’ 있는 일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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