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노래처럼 멀리 지나가는 기차 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한 시골 마을에 바람은 사라졌고, 나무는 동상처럼 우뚝 서 있다. 그리고 한 아이도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현관문 안에 멈칫 서 있다. 아이는 한 겨울밤 추위가 자신의 몸 안으로 조금이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코트, 털모자, 부츠, 털바지, 장갑, 목도리로 꽁꽁 감싸고 있다. 이 문을 넘어설 준비를 마친 것 같다.
노란 테두리의 현관문은 달빛을 머금은 듯하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두웠지만 막상 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나선 바깥세상은 밝은 달과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잘 시간을 한참 넘긴 겨울밤(It was late one winter night, long past my bedtime)’이라는 글이 없었다면 낮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그림자는 어둡고 주변은 밝다. 달빛 아래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기차 소리에 대답하듯 강아지들의 짖어대는 소리(A farm dog answered the train, and then a second dog joined in)’조차 시끄럽기보다 공기 중에서 금방 사라질 것 같은 분위기다. 아무도 밟지 않은 듯한 새하얀 눈밭을 지나면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아이는 세상의 소리를 뒤로 하고, 아빠와 함께 부엉이를 보기 위해 설레는 기분으로 숲에 들어섰다. 아빠와 아이는 함께 가면서도 서로 나란히 서지 않았다. 아이는 조용히 아빠 뒤를 따를 뿐이다. 집 앞에서는 아빠가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지만, 숲에 들어서면서 아빠는 자기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숲에 들어선 이후로는 아빠는 아이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아이의 주변을 비춰주는 달처럼 아이를 살펴줄 뿐이다. 아빠의 역할은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는 아빠를 조용히 뒤쫓아갔다. 아빠를 놓칠까 봐 급한 마음에 아빠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아이는 한 번도 아빠를 부르지 않았다. 코랑 볼은 얼었고, 누군가 자신의 등을 얼음 손으로 쓸어내리는 것 같을 만큼 추웠지만, 아이는 그 매서운 추위를 묵묵히 참아냈다. 또, 나무들이 울창한 숲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무서웠지만 아이는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부엉이를 보기 위해 숲에 들어선 순간부터 지켜야 할 규칙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이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부엉이를 보기 위해서는 3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는 숲에서 조용히 해야만 하고, 둘째는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따뜻하게 해야 한다. 끝으로는 용감해야 한다. 그런데 이 3가지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엉이를 보겠다는 소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망이 아이가 숲에 들어올 수 있었던 절실함이 되었다.
아이는 한밤중에 아빠와 단둘이서 부엉이를 보는 것을 무척이나 기다려왔다. 이미 몇 차례 다녀온 오빠들의 무용담을 수도 없이 들었을 이 아이는 자기도 오빠들처럼 그 모험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숲에 들어선 순간 아이에게는 자신만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한편으로, 아빠에게는 아들들 없는 그 시간이 그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빠는 그 시간을 아이가 소망할 때까지 기다려왔을 것이다. 부모가 적당한 때 아이와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원하는 시간을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가 가기 싫어하는데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데리고 간다면, 그것은 아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보다는 끌려간 아이가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동시에 아이는 성장하기보다는 피곤함과 반항심만 커질 것이다.
스스로 추위와 공포를 견뎌내면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숲 속을 걸어갈 때 아이는 성장하게 될 것이다. 부모가 그려 놓은 그림 속을 지나가는 아이로 키우기보다 부모가 보여주는 눈이 내린 것 같은 하얀 도화지에 자신의 그림으로 채워나가는 아이로 자라게 해야 할 것이다.
아빠는 하늘에서 지도를 찾는 것처럼 별자리를 찾았다. 그리고는 큰 부엉이가 된 것처럼 부엉이 소리를 냈다. 아빠와 아이는 조용히 부엉이를 기다렸지만, 부엉이는 한 번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도 아이는 부엉이가 나타나지 않은 것에 실망하지 않았다.
오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엉이를 만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에게 끌려서 억지로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망하고 기다리다가 온 것이기 때문에 아이는 어떤 상황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드디어 아빠의 큰 부엉이 소리에 진짜 부엉이가 응답했다. 아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드리워졌다. 아빠가 내는 ‘부우우우우우엉 부우우우우우엉(Whoo-whoo-who-who-who-whooooooo)’이라는 소리가 허공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부엉이에게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는 마치 부엉이의 언어로 아빠와 부엉이가 서로 소통하는 것 같이 들렸다. 그제야 아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자신의 숨소리조차 삐져나오지 못하게 가렸던 벙어리장갑을 입에서 떼어냈다.
점점 부엉이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갑자기 부엉이 그림자 하나가 커다란 나무 그림자에서 떨어져 나와 아이의 머리 위로 솟아올랐다. 아빠와 아이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아빠는 한 손으로 손전등을 들어 부엉이를 비추었다. 부엉이가 나뭇가지에 앉는 순간부터 다시 조용히 날아가는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아빠는 손전등을 부엉이에게 계속 비추고 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아이의 팔을 잡았다. 숲에 들어온 이후 손전등도 처음으로 꺼냈고, 아이를 잡아준 것도 처음이었다. 막상 부엉이가 눈앞에 나타나니 아빠는 아이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다.
부엉이는 각장마다 숨어 있던 작은 야생동물과는 달리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지게 그려져 있다. 부엉이와 아이와 아빠가 서로 응시하는 장면에서는 금방이라도 부엉이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것 같이 느껴진다. 한 밤중에 숲 속에서 부엉이를 만난다면, 그 부엉이를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부엉이를 만난 아이는 이후로 한층 성장될 수 있을 것이다.
부엉이가 커다란 날개 짓을 하며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사라지자 아빠는 집에 갈 시간이라고 숲에 들어온 후에 처음으로 말을 했다. 이제는 부엉이를 보러 올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아이는 부엉이처럼 자신도 소리 없는 그림자가 되어 아빠에게 안겨 숲을 빠져나왔다.
아이를 안고 집으로 내려가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두려움을 잘 견뎌낸 아이를 토닥여 주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모험을 하는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지만, 모험이 끝났을 때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인데, 걱정이라는 함정에 빠져 아이를 채근하기만 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또,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에는 인색하게 칭찬하고, 그 수고로움도 아이의 선택이니 감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야박하게 느껴졌다.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도 긴장하고 두려워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들을 일이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아이의 성장 영화 한 편이 막 끝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원근법으로 잘 표현되어 그 운동감이 전해지고, 각 장들의 그림이 연속되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살아 움직이게 했다. 인물들의 표정을 자세하게 그려 넣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가 다 느껴져 그들의 감정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2D의 세계인데 마치 3D 세계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시적인 표현력과 글의 배치로 그림을 더 공감 있게 볼 수 있었다. 시인으로도 유명한 작가답게 ‘달빛이 아빠 얼굴에 은빛 가면을 씌웠다(The moon made his face into a silver mask)’는 등의 글을 통해 아빠와 아이가 숲에서 느끼는 긴장, 숙연함, 감격 등의 감정이 오롯이 전해졌고, 그림을 해치지 않는 글의 배치는 한 장 한 장이 한 편의 시화같이 느껴질 정도로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져 보였다.
달이 뜬 한겨울이라는 상황은 아이에게는 가장 춥고 어두울 때 숲에 들어가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지만, 아빠에게는 위협적인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고, 달이 훤히 밝아서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상황일 수 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도전정신을 더 키워줄 수 있는 상태이고, 아빠는 방어능력을 더 키워 놓은 상태이다.
그래서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차가울 수 있는 하얀색과 파란색의 이미지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름달’ 같은 아빠가 보여준 부모의 모습과 ‘부엉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면서 성장한 아이의 모습이 전해주는 감동인 것 같다. 비단,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추위와 공포를 해치고 부엉이를 만나겠다는 소망으로만 춥고 어두운 숲에 들어선 아이의 모습에서 자신들 앞에 놓인 험난한 길을 용기 있게 헤치고 나가겠다는 소망으로 자신의 시간을 새롭게 열어보기를 바란다. 내가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아빠의 모습에만 나를 대입할 필요는 없다. 부모도 매번 새로운 길을 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