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생짓는남자 Aug 20. 2019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요?

사장이나 상사들이 좋아하는 말이 있다. ‘주인 의식’이다. 그들이 이 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열일하는 직원이 있다면, 아마 그들은 다른 직원들 앞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할 것이다. 오버스러운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칭찬에 인색한 부류인 그들이 갑작스레 칭찬 부자가 되는 경우는 “여러분도 이 직원처럼 ‘주인 의식’을 가지고 일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할 때뿐 일 것이다. 참 뷁스러운 사람들이다. 직원 입장에서 ‘주인 의식’은 정말 듣기 싫은 말인데 윗사람들은 그 말을 좋아하니,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가보다.

윗사람들이 ‘주인 의식’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부하 직원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마인드가 아니다. ‘주인 의식’은 정신 승리에 가까운 ‘기술’이다. 윗사람이 권유하거나 압박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당사자가 “그래, 결정했어” 굳게 마음을 먹어야 가질 수 있는 마인드다. 왜? 당사자, 부하 직원은 주인이 아니니까. 단어가 풍기는 냄새로 알 수 있듯이, ‘주인 의식’은 주인만 가질 수 있는 마인드다. 그 마인드는 주인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다. 주인과 동등한 권리와 혜택을 받지 않는 한 부하 직원은 결코 그런 마인드를 갖지 않는다. 가지려 하지 않는다. 적당한 비유는 아니지만, 부하 직원의 입장은 세입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내 집도 아닌데 방구석에 핀 곰팡이를 세입자가 돈 들여 제거하겠는가? 내 옷이 상하지 않는 한 곰팡이를 알아서 제거할 세입자는 없다.




‘주인 의식’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주인처럼 일하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다 생각하고 주인과 같이 근무 시간과 개인 시간 구분 없이 모든 가용시간을 일하는 데에 투척하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 에너지를 일에 전부 쏟아붓는 것이다. 한 마디로 나를 회사와 일에 갈아 넣는 것이다. 이것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아름다운 행위 예술이고, 직원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고문이다.

‘주인 의식’을 다르게 해석하면, 내가 맡은 일에 있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문가 혹은 권위자가 되기 위해 내 업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거나 향상하는 것이다. 이것은 회사를 위한 게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투자다. 일을 잘해서 연봉 협상의 우위를 점하거나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적금이다. 나를 생각한다면 이러한 의미의 ‘주인 의식’을 부여잡아야 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주인 의식’은 대개 전자다. 직원도 대개 전자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윗사람들은 그 말을 좋아하고, 아랫사람은 싫어할 수밖에 없다.




“주인 의식을 갖고 함께할 열정적인 직원 모집합니다.”

어떤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구인공고 제목이다. 제목을 그렇게 쓴 사장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면, 측은지심이 자동으로 발동한다. 요즘에는 이상한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하루 일하고 일언반구 없이 잠수 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충 일하고 월급 타가는 사람도 있다. 성실히 일 잘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게 구인 시장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 의식’을 가진 직원을 찾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처사다. 하지만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기는 했을까? 구직자 입장에서 말이다.

글은 독자 친화적이다. 글을 해석할 권리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에게 있다. 어떤 문장에 담긴 의미는 읽는 사람이 해석한 바대로 정해진다. 글 쓴 사람이 자신이 의도한 바를 어떤 문장에 담아 공표해도 읽는 사람이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구직자들이 ‘주인 의식’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말은 제목에 넣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바람을 담지 말고, 독자인 구직자들이 구미가 당기는 제목을 달았어야 했다.




윗사람들이 ‘주인 의식’이라는 말을 독자 친화적으로 사용한다면 직원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열심히 일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리 없다. 윗사람들은 오로지 자기들 입장에서만 사용한다. 일을 강요하는 의미로 말이다. 그런 의미로 사용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혜택을 준다면 직원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일할 것이다.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일만 강요하니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내가 사장이나 상사라면 ‘주인 의식’을 가지라며 직원들에게 무작정 레프트 라이트 어퍼컷을 날리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여건을 마련하고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직원은 결코 스스로 ‘주인 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이라는 말을 연발로 날리는 사장이나 상사는, 관리자로서의 역량이 떨어진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니면 게으르거나. 관리자로서의 역량이 떨어지니, 할 줄 아는 거라곤 강요뿐이니 강요만 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사람의 기질상 적당한 압박과 강요는 필요악이긴 하다. 하지만 그런 기질도 컨트롤하기 나름이다. 윗사람이 관리자 혹은 리더로서의 능력이 탁월하다면 굳이 강요하지 않고도, 분위기를 조성하고 직원들을 잘 독려하여 열심히 일하게 만들 것이다.


강요만 할 줄 아는 관리자라면, 부하 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갖지 않는 걸 탓할 게 아니라, 관리자로서 자신의 함량 미달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건을 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강요만 하는 관리자라면 여견을 마련하지 않는 자신의 게으름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 04화 월급에 스트레스 받는 게 포함되어 있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