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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주 5일제 여행의 시작

여행 휴일로 여행의 질을 높여라

뜨갈랄랑, 발리, 인도네시아




적정한 휴식은 여행의 만족도를 키운다


주말 아침이 밝았다. 카메라 가방의 가슴 끈을 조이며 스쿠터에 시동을 걸었다. 우붓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로 통하는 계단식 논을 탐방할 계획. 이후에는 '물의 사원'이라는 별칭이 붙은 힌두사원 티르타 음풀과 바위를 깎아서 만든 탑이 있다는 구눙 까위를 방문하기로 했다. 현지인들이 뜨갈랄랑이라고 부르는 계단식 논까지의 거리는 우붓 읍내에서부터 약 10km. 뜨갈랄랑에서 그만큼을 더 달리면 티르타 음풀과 구눙 까위가 한데 모인 지역에 닿는다. 


읍내를 벗어나자 쭉 뻗은 도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은 감촉으로 목덜미와 팔뚝을 어루만지는 동안 맑고 푸른 하늘이 머리 위로 끝없이 흘렀다. 잡화를 취급하는 구멍가게며, 동네 주민들이 찾는 식당이며, 토착민의 훌륭한 손재주를 확인할 수 있는 공방에 이르기까지 발리의 일상적 공간들이 좌우를 스치며 여행의 감성을 돋웠다.


큰 기대를 품고 찾은 뜨갈랄랑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드넓게 펼쳐지는 계단식 논의 풍경은 꽤 근사했지만 관광 사진들이 보여주던 그 느낌은 아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압도적인 풍모에 비해 그 규모도 작았다. 관광 사진은 멋진 부분만 오려서 보여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기부금을 강제로 요구하는 현지인의 모습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열어 둔 주머니를 오히려 여미게 만드는 풍경. 한눈에 보아도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갈취에 가까웠다. 첫 번째 기부금 요구 구간을 지나쳐 두 번째 기부금 요구와 맞닥뜨렸을 때는 거칠게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장년 사내가 손목을 붙잡으며 완력을 행사하기에 힘으로 맞서 그를 뿌리쳤다. 아름다운 자연과 대비되는 혼탁한 인간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씁쓸했다. 그렇지만 자연의 기운이 도처에 가득한 뜨갈랄랑이었기에 논두렁을 오르내리는 순간 만큼은 충분히 기분 좋았다.


티르타 음풀과 구눙 까위에서도 인상적인 풍경을 만났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가 고생을 안겼지만 깊은 신앙심이 느껴지는 발리식 힌두 문화의 면면은 현지의 역사와 전통을 더듬어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폭우를 피해 머문 공간들 역시 이색적인 운치를 선사했다. 티르타 음풀 주변에 위치한 간이식당을 겸한 구멍가게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폭우가 그치길 기다리는 사이 주인아줌마의 일상이 내 바로 곁에서 여과 없이 펼쳐졌다. 구눙 까위에서는 비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사색의 시간도 누렸다.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빗발에 노출되는 좁다란 바위 터널과 휴일을 맞이한 상점의 처마 밑에서 보낸 느긋한 시간이 맑고 고요한 기억으로 남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순간은 계획한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올 때였다. 새로운 풍경을 구경하고 싶어서 갈 때와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발리 특유의 목가적인 경관이 도로 양옆으로 아름답게 펼쳐졌다. 


주 5일제 여행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5일은 여행하고, 이틀은 휴식을 취하는 방식. 사진 작업이 여행의 초점인 만큼 5일은 작업에 집중하고, 이틀은 여가 활동을 하는 식으로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여가 시간으로 할당한 이틀 동안에는 인근의 볼거리를 구경하러 다니거나 환경 정리, 생필품 구입 등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했다. 피로감이 누적된 날에는 낮잠도 푹 잤다. 


여행 휴일제의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 몇 달 전 극동 유럽을 6개월 반 동안 탐방한 여행에서 주 6일제 여행을 도입했다. 장기 여행에서 중간중간 찾아오는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었는데 꽤 성과가 있었다. 이동하는 여행의 특성상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자주 돌출하는 데다가 그동안의 여행을 통틀어 공식적인 휴일 제도의 첫 실행이기도 해 그 과정이 마냥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심신의 상태를 조절하는 데는 효과가 큰 방식이었기에 앞으로도 여행 휴일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지역에서의 장기 체류를 기반으로 한 이번 여행에서는 생활에 활기를 돋우기 위해서라도 여가 시간을 더더욱 적극적으로 안배해야 하는 상황. 여행 휴일을 이용해 이따금 무위의 시간을 즐겼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여행 휴일제를 다시금 실행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여행을 했다. 제대로 된 휴식은 거의 없었다. 원래도 활동적인 성향인데 여행지에서는 그 활기가 두세 배쯤 증폭하는 터라 체력이 닿는 한은 최대한 돌아다녔다. 스태미너가 충분했고, 궁금한 것도 많았다. 계속 움직이다가 몸이 제풀에 지치면 그때 휴식을 취했다. 쉴 새 없이 진격한 결과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돌아보면 지나치게 저돌적인 방식이었다. 등산깨나 한다는 이가 여행을 함께 하다가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주변을 살피지 못한 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여행법이었기에 그 방향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각성은 극동 유럽에 앞서 여행한 남미에서 찾아왔다. 아침이 되면 숙소를 나서 온종일 쉴 새 없이 볼거리를 찾아다니다가 저녁이 되면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의 반복이 직장 생활의 일상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아침에 숙소를 나서면서 지금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인지 출근을 하는 것인지 헷갈린 순간이 많았다. 현지 풍물과 진솔하게 교감하지 못하고 직장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듯 다음 볼거리를 향해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자유를 찾아 나선 여행에서 이런 식의 일과가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미에 이은 다음 여행지가 주 6일제 여행을 시도한 극동 유럽이었다. 그 뒤를 이은 이번 여행에서는 극동 유럽에서보다 휴일을 하루 더 늘렸다. 여행 복지의 수준이 좀 더 높아졌다.


협업 공간에서 마주친 서양인의 상당수는 주말마다 적극적으로 여가를 즐기러 다녔다. 워라밸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생계의 문제에 인생이 통째로 질질 끌려가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많이 달라 보였다. 나중에 보니 서양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여가 시간을 요령 있게 이용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가 장악한 국가 출신들은 더더욱 워라밸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의 관점이나 태도는 OECD 최고의 과로국인 대한민국에서 온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그들의 생활상에서 간간이 교훈을 발췌해 나갔다.


그 언젠가 여행국 숫자 늘리기에 골몰하며 시작했던 여행이 세월의 사막을 지나고 경험의 언덕을 타 넘으면서 질 높은 걸음,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유도해 주는 여정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주 5일제 여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여 나갔다. 5일을 작업에 매진한 후 이틀 간의 여가 시간에는 인근의 트레킹 코스를 밟거나, 스쿠터를 끌고 교외를 탐방했다. 그림보다 더 근사한 뭉게구름과 도처의 때깔 좋은 녹음이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자주 덮쳐왔다. 건강한 기운이 심신에 들어차는 소리도 이따금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 여행의 질을 높이는 컨디션 관리

휴식을 주목적으로 하는 단기간의 휴양 여행과 달리 장기간에 걸친 자유 여행은 심신의 혹사가 불가피하다. 자유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험난한 과정을 인내함으로써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까지 참고 견디려다가는 여행의 흐름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배낭여행에서 반복되는 활동인 트레킹, 레저 체험, 도보 투어, 장거리 이동, 여장 운반, 짐 풀고 꾸리기 등은 모두 노동에 가까운 혹은 그 이상의 에너지 소모를 요한다. 한달살기 같은 체류형 여행 역시 일정이 분주한 기간에는 심신이 혹사된다. 낯선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정신적인 피로도 누적된다. 향수병, 언어의 벽, 소외 현상 등이 겹치면 무력감도 찾아든다. 도난사고, 타인과의 갈등 등 여행의 또 다른 복병들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달려들면 내면의 균형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여행을 후회하거나 길을 잃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시점이 이때다. 사전에 적절히 휴식을 취하며 심신의 상태를 관리하면 여행의 흐름을 좀 더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심신의 관리는 여행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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