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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생산적인 일상을 위한 루틴 만들기

잘 관리된 일상은 여행의 성과를 높인다

뒷골목 풍경, 우붓, 발리, 인도네시아




일상의 루틴은 생활을 지탱하는 골조다


하루 일과의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짜임새 있는 스케줄로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여행에서는 어떤 식으로 일상을 꾸리는 게 좋을지에 대해 이참에 한 번 고민해 볼 심산이었다. 외부의 자극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외국이니 만큼 루틴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좀 더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일과를 추리고, 더하고, 빼고, 순서를 조정하는 사이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루틴이 만들어졌다. 


우붓에서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한 후 책을 읽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독서한 내용을 음미한 후 작업 도구를 챙겨 숙소를 나선다. 인근 식당에 들러 브런치를 들고 협업 공간으로 가서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의 중간 지점인 더위가 꺾인 오후를 택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수영을 한다. 수영 직후에는 선베드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30분쯤 휴식을 취하거나 짧은 낮잠을 잔다. 휴식을 마친 후에는 샤워를 하고 협업 공간으로 복귀해 저녁 시간까지 작업을 이어나간다. 이후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멤버십 등록을 한 다른 협업 공간으로 이동해 조금 더 작업을 한다. 10시 정도에 작업을 마무리 짓고 숙소로 복귀해 여행 수첩을 정리한 후 책을 읽거나 다른 여행자들과 교류를 하다가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평일을 그런 식으로 보낸 후, 주말에는 미뤄 뒀던 일을 한다.


독서와 수영, 많게는 하루 세 번의 샤워에 이르기까지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계한 하루 일과가 건강하고 상쾌한 느낌을 자주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원안 대로의 실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슷한 일과를 날마다 반복하자니 어떤 날에는 무료한 기분이, 어떤 날에는 허무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오래된 게으름도 이따금 기승을 부리며 당초의 각오를 흔들었다. 일상에 활기를 돋우기 위해 루틴에 없는 활동을 새로이 하고 나면 생동감은 증폭된 대신 생활 리듬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국내에 있을 때보다는 여러모로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일상을 가지런히 꾸린 경험도 부족한 데다가 주변의 자극까지 빈번한 국내에서는 원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끌고 가기가 더욱 어려웠다. 인간 관계도 복잡하고 생활의 속도도 빨라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예기치 않은 일들이 내 마음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건드려 오니 일상을 고요히 응시하려 해도 중심이 계속 흔들렸다. 집중 좀 해 볼라 치면 외부에서 유무언의 요구가 밀고 들어오기 일쑤. 길게는 며칠에 한 번, 짧게는 몇 시간에 한 번 꼴로 외부에서 나를 흔들어댔다. 


개인 생활은 그랬지만 사회인으로서는 일과 관리를 무난하게 해 왔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내가 능동적으로 일과를 주도했다기보다는 환경이 나를 끌고 갔다. 조직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정해진 일과만 그대로 따르면 됐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차피 업무가 일과를 이끌어 가니 주어진 일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는 사이 한나절이 알아서 흘러갔다. 얼마 되지 않는 여가 시간에는 지인을 만나거나 문화생활을 즐겼는데 그러다 보면 금세 하루의 끝이었다. 직장에서든 개인 생활에서든 따로 노력을 들여 일과를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겉으로만 보자면 그 모양새는 괜찮은 편이었다. 평시에는 집에서 브런치를 들고 작업실이 있는 홍대 앞으로 나가 밤까지 작업을 했다. 프로젝트나 협업 등으로 분주할 때를 제외하고는 여가 활동도 풍부하게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료 예술가들이 벌이는 예술 행사를 방문해 작품이나 공연을 감상하면서 자리에 참석한 이들과 여흥을 즐겼고, 인간관계의 다른 축인 여행자 친구들과는 교외나 지방으로 함께 주말 여행을 떠나거나 이따금 삼삼오오 만나 담소를 나눴다. 지인들이 작업실 부근으로 찾아올 때는 인근 문화공간이나 연트럴 파크 등지로 나가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작업도 열심히 하고 여가 활동도 풍부하게 즐겼으니 꽤 안정적인 일상을 누린 셈이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밖에서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국내의 일상은 사실 내가 주체적으로 설계해 그에 맞춰 꾸려 갔다기보다는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 직장 생활은 그러한 원리가 작동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나는 타인의 욕망이 디자인한 프로그램 속에 투입된 존재였다. 여가 시간마저 직장 생활의 부속 과정처럼 돌아갔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내가 선택해 실행하는 듯 보였지만 따져 보면 숨 가쁜 직장 생활의 반발로 이루어진 활동들이었다. 배후의 현상을 미처 인식할 새도 없이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프리랜서 생활에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양상은 비슷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업 과정에서는 협업 파트너가 요구하는 대로 따라갔고, 여가 시간에는 외부의 힘들이 끌어당기는 대로 끌려갔다. 후에 그에 대한 각성을 하면서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고 일과에 안정감을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완벽하게 하루를 장악한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채로 발리에 왔다.


국내에 있을 때보다 한층 더 집중하며 일과를 꾸려 나갔으나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의 영향력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이다 보니 그동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었던 부분들에서도 예기치 못한 오류와 과오가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갈 길이 먼 듯했다. 보이지 않는 전투의 현장에서 날마다 힘겨운 투쟁을 해 나갔다.




# 창조적 삶을 유도하는 일상 관리

일련의 과정을 지나온 후에 찾아든 깨달음은 다음과 같다. 수면, 샤워, 식사, 청소, 휴식 등의 일상 루틴은 생활을 받치고 있는 핵심 뼈대다. 건축물로 따지면 골조에 해당한다.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중요한 일들이다. 일상을 재생하기 위한 필수 활동이므로 생활에서도 우선순위를 가장 앞에 두는 게 좋다. 그러면 사회나 학교 생활에서의 능률도 높아진다. 창조성이 왕성한 상태이기 때문에 생산의 성과도 좋다. 반면 과업에 몰입하느라 일상 루틴을 생략하면 생활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불안감, 무력감, 회의감, 자괴감 등의 현상은 생활이 균형을 잃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몇 개의 골조가 무너진 상태일 테니 속히 수습 작업에 돌입할 필요가 있다. 귀찮다고 미루면 나머지 골조들이 건축물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진다. 이후에는 스스로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이 불안정해진다. 루틴 실행도, 수습 작업도 모두 귀찮게 느껴지겠지만 흐름이 궤도에 오르면 몸이 알아서 필요한 일을 실행한다. 행위의 의미와 효능을 살피면서 행하면 더욱 능동적으로 일상을 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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