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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진 Nov 17. 2019

여행길 위에서 친구 사귀기라는 강박

주체적 여정에서 요구되는 관계 맺기의 자세

에코 비치, 짱구, 발리, 인도네시아




길 위의 인연이라고 모두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현지인이나 여행자를 대상으로 간간이 포트레이트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붓에 이어 짱구에서 다시 만난 안토니의 소개로 현지 여성 하나와 안면을 트게 되었다. 시내에서 일한다는 패션 디자이너 A. 마침 사진 촬영에 관심이 많다기에 언제 기회가 되면 함께 작업을 하자고 얘기했더니 대단히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흐름이 좋다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뜻밖의 현실이 연거푸 드러났다. 결국 작업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A와는 두 번을 만났다. 두 번 다 안토니가 함께했다. 둘 사이의 약속에 내가 불려 나가는 식이었다. 첫 만남 당시 A는 대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내밀한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처 받은 과거를 줄줄이 토해내는 그녀의 모습은 흡사 비극 영화의 주인공 같았다. 가난한 성장 환경에 대한 묘사며, 궁핍한 생활로 인해 저 세상으로 떠난 여동생의 이야기며, 남자들에게 배신당한 경험이며 어느 하나 씁쓸하지 않은 사연이 없었다. 눈물을 쏟아내며 생의 아픔을 하소연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저녁 하늘을 잿빛으로 뒤덮었다. 


두 번째로 만난 장소는 A가 사는 집이었다. 그녀의 집에서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며 안토니가 나에게 동행을 청해왔다. 그녀의 거주지는 직장 고용주의 자택이었는데 가서 보니 수영장이 딸린 2층짜리 고급 풀빌라였다. 호주인 고용주가 휴식 차 고향으로 돌아간 상태라 한동안은 혼자서 생활할 예정이라는 A의 설명. 안토니가 요리한 음식을 나눠 먹은 후,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벼웠던 대화가 이내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한 A는 이따금 절규에 가까운 몸짓으로 인생의 비애를 호소했다. 비슷한 일을 반복해서 경험하던 시점이라 설움을 토해내는 A의 모습이 그리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토니는 그러한 상황이 생소했는지 연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안토니가 급기야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는 A를 안토니가 끌어안자 A는 더욱 처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거친 소리로 절망의 말들을 내뱉었다. 그럴수록 안토니는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이 무슨 시트콤 같은 상황인가 생각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졌다. 사태의 전말이 깔끔하게 파악된 것이다. 첫 만남에서도 짚이는 바가 있었는데 비슷한 상황을 한 번 더 겪으면서 현상의 본질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자학 중이었다. 눈물과 절규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해 과거부터 습관적으로 반복한 행위였다. 자신을 비련의 인물로 설정해 그동안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주변의 관심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유형인 듯했다. 그 대상 중 다수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자신의 절규에 상대의 호응이 잇따르는 일련의 흐름에서 희열을 느끼는 그 모습이 여간 아찔해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보여 주는 모습이 적잖게 자기 파괴적인지라 스스로 지쳐서 그만둘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호응하면 호응할수록 더 거칠게 포효할 그녀였다. 친분이 두터운 사이도 아니어서 잠자코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내가 무심한 태도로 상황을 관조하는 동안 안토니는 그녀가 판 구덩이 속으로 계속해서 빨려 들어갔다. 절규하는 그녀를 부둥켜안은 채 저 나름의 방식으로 감정의 격랑을 탔다. 그녀에게 매달릴수록 에너지를 빼앗길 테지만 안토니를 말릴 수도 없는 노릇. 한 여인의 비극적 인생이 담긴 대서사시가 막을 내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애달픈 사연으로 가득한 한밤의 모노드라마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안토니는 후에도 그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두 번 더 만났다고도 했다. 가끔 그녀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을 나에게 털어놓았는데 매번 부정적인 사연으로 가득했다. 문자 메시지로는 우울한 감정을 전파하고, 만났을 때는 절규를 되풀이해 그녀를 상대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러다가 안토니는 방콕으로 떠났고, 나는 짱구에 남았다. A에게 사진 작업을 하자고 얘기해 둔 상황이라 가부간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녀의 행동에 개의치 말고 작업만 딱 하고 헤어지면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바람직한 선택이 아닌 듯했다. 어떻게든 파고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한 데다가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를 잔뜩 빼앗길 공산이 컸다. 결국 그녀와 작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사람에 치여서 오른 여행길이었다. 극동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에서 체류한 10개월 동안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다. ‘I am a forest’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계 각 국의 친구들에게 한국에 돌아가서 강원도의 숲 지대에서 전시회를 열겠다고 약속해 두었기 때문에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축제를 준비해야 했다. 장소 물색부터 준비 작업, 축제 개최, 뒷마무리에 이르기까지 행사에 전심을 기울였다. 한 달 간격으로 3차례에 걸쳐 벌이는 행사여서 여름 석 달은 아예 행사에 올인했다. ‘I am a forest’ 프로젝트와 맥을 함께하는 '숲'을 주제로 한 두 번째 행사는 거의 투신하다시피 했다.  


밑그림도 좋았고, 내용도 알찬 축제였으나 마지막 행사가 끝나갈 무렵에는 상당히 지쳐 있었다. 다양한 성향의 예술가들이 모이다 보니 행사가 내 맘 같이 흘러가지 않았다. 겉으로는 무난히 진행된 듯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행사의 취지에 반하는 상황들도 종종 발생했다. 예술 행사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현상이어서 그리 놀랍지는 않았고, 럭비공처럼 튀는 예술가들의 성향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정도면 행사를 잘 치른 셈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심신이 소진되는 현상은 어쩔 수 없었다.  


행사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사람이었다. 참가자들 다수는 행사에 힘을 불어넣는 쪽으로 움직였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다 같이 우왕좌왕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행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사건도 일부 있었다. 다수가 동시에 조금씩 문제를 만들어 내며 행사의 역동적인 흐름에 균열을 내기도 했다. 성급한 말들이 떠돌았고, 그게 다시 어딘가에서 오해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장하는 사람은 잔뜩인데 들어주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행사마다 시끄러운 장면이 반복적으로 펼쳐졌다.  


행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나니 이례적인 피로감이 밀려왔다. 완벽한 방전. 행사를 무사히 잘 마무리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씁쓸한 감정도 입안에서 서걱거렸다. 직면을 꺼려왔던 삶의 이면, 인간 세계의 뒤안길을 한눈에 조망한 듯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당분간 스스로를 보호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꼈다. 인생의 한 챕터를 심도 깊게 공부할 수 있어서 다행스럽다 싶었지만 조용한 곳에서 심신을 회복할 시간도 그만큼 절실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왔다. 


축제를 치르며 얻은 화두도 있고, 자기 회복을 위한 여정 위에 있기도 해서 관계에 대해 좀 더 초연한 태도를 취하기로 했다. 안토니와도 그랬듯, 길 위의 우정은 감동을 자주 안겼지만 그 흐름이 모두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 그중 일부는 나에게 원인이 있었다. 외로움의 등쌀에 떠밀려 친구를 만들기도 했고, 더러는 평이한 인연 위에 그럴싸한 서사를 입히기도 했다. 자랑거리 삼아 닥치는 대로 인연을 맺은 적도 있었다. 작위적으로 맺은 인연은 깊이가 얕았고 수명도 짧았다. 성숙한 여행자가 되기 위해서는 인연에 대한 강박부터 벗어야 할 터였다. A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그러한 각오를 한 번 더 다지게 했다. 자연스럽게 흘러드는 인연만 받아들이고 일부러 사람을 찾아다니는 행동은 삼가기로 다짐했다. 고독의 길이 그 모습을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 여행의 인연에 대하여

성장을 중요한 목표로 삼아 길을 나선 여행자라면 주체적인 태도로 관계에 임하는 게 좋겠다. 다가오는 인연을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만 필요를 넘어서는 관계까지 받아들일 필요도 없을 게다. 너무 빈번하게 관계 맺기를 할 경우 자기만의 고유한 여행의 흐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쉴 새 없이 다른 여행자와 접촉하면서 상대가 제안하는 계획에 의존해 여행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자기 관리에 능숙하지 않을 경우 수동적인 태도가 고착될 수 있다. 추억은 늘어나겠지만 내적으로는 퇴행할 가능성이 있다. 농담 따먹기나 음주가무로만 일색한 인연은 깊이감이 적다. 후에 재회하더라도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라 여행 당시의 떠들썩했던 풍경을 회자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게 없다. 맺어지는 과정도, 흘러가는 과정도 모두 자연스러울 때 우정은 깊이를 품는다. 풍부한 화두, 통찰력, 인생에 대한 혜안, 실천적 태도, 탈권위적 사고, 유행을 뛰어넘는 유머 감각, 유연한 대인 능력은 모든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요소다. 성숙한 여행자에게는 인연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여행 경험을 어느 정도 누적한 여행자라면 주체적인 관계 맺기에 대해 성찰해 보면 어떨까 싶다. 여행 초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닥치는 대로 경험하면서 균형을 스스로 찾아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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