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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Jan 21. 2024

유자식 하팔자 입니다만.

그런데 가정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뉴욕타임스에 여성의 가장 강력한 권리주장은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란 광고가 실렸을 때

처음엔 이건 무슨 소리지? 하고 기우뚱했다가

점점점 무릎을 탁 치며 , 저 광고가 굉장히 과격하긴 하지만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구나 하고 수긍이 갔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긴 하지만 이 혼인이란 인구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제도라는 것이 사랑만으로는 유지하기에는 참 힘들고 어렵고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더 힘들고 어렵다는 것.

살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유자식, 하팔자.


그런데 사실은 나는 조금 행복하다. 그리고 더 많이 행복하고 편안할지도 모를 무자식 상팔자가 부럽지 않다.

혼인과  출산이라는 제도가 여성에게 굉장히 힘들고 불리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이 제도 안에서 안정감과 행복을 느낀다는 이 이율배반을 이제부터 설명하려고 한다.


대한민국 40대, 여성, 아들 둘과 남편을 부양하며 살고 있다.

남편은 나와 같은 시대를 나고 자랐고 비슷한 교육 과정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다른 결과물이 창출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 생각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물론 그는 결혼 전 연애시절엔 그의 이런 성향을 잘 감췄다 그런데 그건 그냥 나와 결혼하기 위해 잠시 연극을 한 것일 뿐 그는 뼛속 깊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고 결혼 후에는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휴지통을 비워야 한다든지 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하고 자라난 사람이다. 그래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가사 노동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자기가 그 노동을 해야 하는 당위성을 모른다.

즉 내가 살려면 내가 움직여야 내 주변과 일상이 단정히 유지된다는 자명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버려서 집구석이 단정하게 유지되기 위해 부인이 하는 노력과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 물리적으로 내 일상이 단정하고 내 집이 깨끗해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다.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서 찾기가 쉬워야 하고 부엌과 옷장이 정리된 게 좋다.

나의 식탁은 늘 깨끗해야 한다. 매일 물을 갈아주어서 싱싱한 생화가 오래 유지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애들을 재워놓고 집을 정리하고 조용히 식탁 위의 꽃을 바라보거나

조도를 낮춘 거실 소파에 앉아서 티브이 소리는 배경으로 깔고 거실의 내 식물들을 돌아보는 밤이 좋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런건 아니였다.

내 취향대로 만들어간 집안 에서 그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노동했다. 안락하고 정리된 공간에서 일상을 유지하는 남편과 아들들은 그 사실을 당연히 여겼다 감사하지 않았고 노력하지 않았다. 마치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 메이드가 룸클린징을 하듯 우리집도 나의 공력으로 그렇게 유지되고 있음을 당연히 여겼다

 

내가 좋아서 내 공간을 정리하고 꾸미고 유지하지만 그 일상에 대해 당연히 여기며 이 공간을 유지하지 않고 흩트리고 어지럽히는 것은 또 몹시 화가 나고 억울하다.

억울함의 시작점은 우리집은 맞벌이 부부고 소득도 내가 더 많은데 깨끗하고 단정하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가사노동을 나만 한다니!!!. 나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몹시 억울했다. 

소득의 문제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가사노동이 중요한 이유는 성인 이라면 무릇, 자기가 난 자리는 정리하고 자기 입에 밥이들어가기 위해선 밥을 지을줄 알아야한다.


문제는 이 가족의 구성원중 나만 빼고 아무도 옷 ,식기, 물건들이 구조화되서 제자리에 있어야 다음 일상이 돌아가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단정한 일상과 생활을 유지할때 얻는 힘이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걸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남편 에게 가사노동의 배분을 할때 명확하게 업무분장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정해진 틀을 지정해주고 물건의 자리를 알려준 후 그걸 유지하도록 지속적으로 가르쳤다.


어느덧 정리정돈과 구조화된 공간이 주는 중요성을 알고 그걸 유지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식구들이 변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간을 정리 하고 정돈 하고 가사 노동의 가치를 모르는 남성들을 꾸준히 가르치고 있다.  힘들고 짜증이 나도 참고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가르친 보람을 점점 느낀다.

아마도 내 아들들은 어디 나가 그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더라도 자기 자리는 깨끗하게 해서 상대에게 폐가 되거나 불편을 주지 않을것이다.

물론 처음 결혼해서 함께 꾸린 공간 공간을 카오스로 만들어 놓던 남편도 어느덧 점점 정돈되고 정리하는 습관을 붙여 갔다.

몹시 화가 나고 억울한 순간들도 결국 시간을 들여 지속적인 반복교육을 하면 해결된다.

사실 이건 굉장히 짜증 나고 힘든 과정이다.


가끔 이런 당연한 교육을 시키지 않고 아들을 장가보낸 시부모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만큼의 인내와 노력을 나 자신에게만 집중했으면 어쩌면 사회적 성취나 성과를 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사회적 성취나 성공보단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는게 더 좋은 사람이다.

이게 나다.  

물론 내 일을 잘해야하고 본업에는 집중해야한다.그렇지만 본업에 대한 야망이 커서  정리된 일상을 유지하지 못할만큼 에너지를 소비하게된다면, 나는 야망을 포기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애들과 속썩이는 남편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리는 안온하고 단정한 일상이 가장 좋고,중요하다.



 

사실 혼자가 편하다는 말의 시작은 물리적으로 내 빨래만 하면 되고 내가 어지러 놓은 것만 치우면 되고 내가 내입만 챙겨서 먹으면 되고 내가 먹은 것만 설거지하면 된다는 것이 아닐까? 즉 내 에너지를 나에게만 쏟는게 편하단 말!.


화를 참아 누르고 남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교육할 필요도 없이 내가 나만 먹여 살리고 내 일상만  유지하는 삶은 간소하고 쉽고 에너지 소모가 덜 한 삶일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자녀를 교육하느라, 맞지않는 ,배우자나 배우자의 가족들과 맞춰가느라 에너지와 돈을 쓰지 않는 인생이 훨씬 덜 소모적이고 어깨도 가벼운 인생일 것이라는데도 동의한다


그런데 나는 내 에너지를 쓰더라도 가정 안에서  평화를 찾는 사람이다.



내 결혼 생활은 쉽지 않았다. 시작부터 내 결정이 아닌 남편의 결정에 따랐던 것부터 어긋났다. 그게 사랑이라 믿었기때문이다.

남편의 의사에 따라 그의 고향으로 이주하고  자리 잡을 동안 아들 둘을 낳고 키우고 일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 둘, 육아 도움 받을 구석 없음, 친정은 멀리 있음, 시부모는 지배적인 성향, 어쩌면 나르시시스트인 데다가 자식의 삶에 경계도 한계도 없이 끼어들기를 좋아함. 남편은 유약하고 정리안 되고 산만한 스타일. 그런 시부모를 막아주지 못하고 부인을 보호해 주지 못함. 이런 조건이 쉬운 조건은 아니였다.


 남편과 시부모의 성향, 남편이 시부모의 부하직원 이라는 위계가 내 생활에 굉장한 공격요소로 작용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일상과 집을 깨끗이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또 당연하고 성실한 루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정해진 루틴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괴로울수록 공간의 모든 것들을 아름답고 단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공간에서 주는 힘을 받아 이 결혼과 가정이 유지되었다고 생각한다. 화가 나고 억울하면 청소를 하고 정리를 했다. 분리수거 물건들을 내다 버렸다.

아이들 침대 시트를 빼서 향긋하게 빨았다. 

팬트리를 정리하고 쓸데없이 쌓여있던 것들을 치우고 나면 집안엔 또 새로운 기운이 돌았고 새로운 기회가 다가왔었다.


그리고 정리하고 구조화 하는것을 할 줄모르는 뜬구름 같은 남편에게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습관을 길러줄 때까지 긴 시간과 노력이 걸렸다.

내 남편이 아닌 타인이라면 절대 그런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도 않겠지만, 그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에 그에게 단정하게 유지되는 일상 습관을 잡아주기 위해, 그의 엄마가 아들에게 해야만 했던 노력을 뒤늦게 부인인 내가 하느라 아주 진이 빠지게 힘들었다.

 그는 사실  어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들을 들여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과정의 고통은 생략하고  성격이 급하고 불같아서 당장 결과만 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새로운 일을 벌이다 안되면 포기하고를 반복하기에 그가 무언가를 이뤄낼 때까지 나 역시 긴 시간 애간장이 녹도록 걱정하고 도와주다가 많은 부분을 나 역시 포기하고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에게 포기못한건 (그와 공간을 공유해야 하기에  )물리적인 정리 습관. 그것만은 포기 못하고 끈질기게 주입시켰다.


이런 결혼 생활의 과정에서,

결혼이 뭐예요? 지옥불로 뛰어드는 겁니까?

출산은 뭐예요? 지옥불로 뛰어들면서 폭탄도 같이 앉고 뛰어드는 겁니까? 하는 물음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주변의 미혼 교사들이 결혼 고민을 하고 있거나 연애 고민을 하고 있으면 그냥 결혼하지 마, 혹시라도 고민과 의혹이 1%라도 있다면 헤어져. 사는 건 실전이라 결혼 전에 100% 장담했던 사람도 삶의 위기 앞에서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니까 결혼 전에 99% 면 되었지 , 내가 1% 채워줄래 하는 마음이면 절대로 결혼하지 마!로 대답해서 그들을 경악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고 집안을 단장하며 깨끗한 일상을 유지하는 삶이 좋다. 살림을 좋아한다. 남편이 좋다는 게 아니다. 사람이 아닌 결혼이란 제도가 좋다. 한 사람과의 온전하고 깨기 힘든 계약이라는 견고함이 좋다.

배우자를 너무나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생활, 기혼자의 생활이라는 것이 좋다.


그래서 가끔 좋아죽을 것 같고 죽이 척척 맞는 부부도, 우리처럼 그냥 그렇게 참아가고 포기해 가며 남편이란 분리수거 잘해주고 쓰레기 잘 버려주면 됬다 하고 맞춰서 살아가는 부부도 결국엔 결혼이란 이 견고함 속에서는 다 똑같다는 체념을 하게 된다.


결국 남는 건 루틴대로 흘러가는 일상이라 여긴다.



가사 노동이란 게 티가 안 난다고 하지만 이렇게 티 안나는 일이라도 늘 일개미처럼 움직여 내 가정이 정리되고 안온하게 유지되는 사실이 참 좋다.

애들과 남편이 없다면 더 쉽게 공간의 깨끗함은 유지된다. 하지만 그런 건 왠지 텅 빈 것 같다.

무균실 같은 깨끗함보다는 생활의 냄새가 섞인 깨끗함을 선호한다고 설명하자면 이해가 되려나?


아이들이 잠든 밤. 조도를 낮추고 거실 소파에 누워서 싱싱하게 유지되는 내 식물들을 돌아보면서 멍 때리는 일이 좋다.


우리 집 거실 통로 있는 아가베는 아이가 던진 공에 맞아서 한쪽 잎사귀가 잘렸다.


처음 저 식물을 들였을 때 입사귀를 따서 아가베 시럽을 수확할 만큼 크게 키우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던진 야구공에 맞아서 잎사귀가 잘려나서 더 이상 자라지 않고있다. 그런데 잎사귀가 잘린  아가베도 내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다. 어쩌면 잘려나간 아가베 , 크게 키워내지 못한 아가베는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와 연결해서 귀여움의 상징 같아져 버렸다.

그래서  만족스럽다. 에너지가 넘치는 둘째 아들에게 집에서 야구하지 말라고 잔소리 하긴 했지만 나는 내 아들이 야구도 축구도 좋아하며 운동을 잘하며 커가는 게 만족스럽다.

내가 유지하고 있는 집이란 하드웨어가 잘 굴러가는 것도 좋고 그 속에  속하는 천방지축 아들들이란 소프트 웨어들이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게 크는 것도 좋다.


주말 저녁 애들을 재워놓고 남편의 술장고를 털어서 와인 한잔 함께 하면서 한 주간 아이들의 동향 보고를 하고 그동안 또 한주를 살아내느라 수고한 서로를 묵묵히 위로하는 것으로 또 다음 주를 살아낼 힘이 된다.

봄이 오면 애들이 좋아하는 싱싱한 딸기로 식탁을 차린다.


결국 살아보니 유자식자의 생활이라는 것. 그리 만만치 않고 힘들지만 기쁘고 행복하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키워내야 하는 건 부모의 노후를 담보로 끌어오는 행위라는 걸 알지만 나는 노후를 담보 잡히 더라도 지금은 자녀를 키워내고 그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는 생활을 유지하는 사실이 행복하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계절을 보내고 일상을 살며 식물을 키우는 일로만 설명할 수 없다.

마음속 깊숙이 나를 들여다보면

나는 가정을 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이다. 넓고 얕은 관계보다는 유의미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아무리 멋있는 사람이 트럭으로 있다 해도 독점적이고 깊이있는 관계를 유지할수 있다면 멋없더라도 좋다. 중요하다. 그런 관계만이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그래서 아무리 나와는 다르고 이해하기 어려운 남편이지만 그와의 관계 속에서 어떤 배움이 있고 그것이 나를 더 성장시킨다 믿는다.

그래서 멋없고 제멋대로인 사람이라도 살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런 독점적인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나 같은 사람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이용하고 지배하려는 사람도 있다.

결국 결혼과 출산은 타인을 독점하고 싶어하지만

스스로가 바르게서서 상대에게 기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끼리 해야 옳다

그런데 상대가 나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약한 자인지 스스로 생을  살아갈 능력이 있는 자인지는 살아보기 전엔 절대 모른다.

그래서 기혼 유지를 중요시 여기는 나는 어느 순간 상대보다

자식에게 더 무게를 두었다

무엇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모든 사랑 중에 으뜸이라 믿고 자식을 키워보면 정말로 사람이 다음 단계로 변화하거나 진화한다고 생각한다.


유 자식자가 진화한다는 나만의 진화론은 편안하게 상팔자로 살아가는 무 자식자에게는 해당 안 되겠지만, 애들을 낳고 키우면서 포켓몬스터의 파이리가 리자몽으로 진화하듯 내가 더 커지고 진화하며 화력과 공격력  또한 커지고있음을  느낀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의 필요성에 동의한다. 이 제도를 유지하고 끊어내기 힘들게 만든 족쇄이자 결과이기도 한 자녀 출산과 양육의 중요성에 동의한다. 미래 동력이자 재생산까지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자녀는 약속의 과정이자 결과라고 생각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이 어지러운 세상을 지탱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제도와 계약으로 묶인 끊기 힘들고 어려운 관계.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좋든 싫든 가족이란 테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느끼는 안정감과 행복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결과물인 자녀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양육해서 사회로 독립시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인생의 과업이 되었고 자녀들에게  집과 가정이라는 따스함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무한히 참고 인내하고 또 참아내지만 부모란 그런게 아닌가?


결혼을 유지하고 자식을 키워나가는 삶은 힘들다.


 누가 더 많이 힘드냐  내가 애낳고 살림하고 애와 남편을 책임감있고 역할을 다하는 사람으로 키워내느라, 그러면서 돈도 버느라 더 힘들다! 하고 외치는게 아니다 .

사실부모됨은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그 이전의 삶과 차원이 다른 힘듦이다.


그래서 단순히 결혼과 출산과 육아가 사회적 계약이고 이것을 진지하게 지켜나가는 과정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완성한다고 믿음 만으로 살아가기 부족할 만큼 힘들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힘든 과정이다. 하찮고 작은 불꽃을 내던 귀엽던  파이리였던 나는 거대한 도마뱀 되서 큰불꽃을 뿜는 리자몽으로 변했다.

그런데도 힘든 진화 과정이 , 힘들지만 돌아보니 행복했다





아이의 행복한 웃음을 보는 것. 때마다 아이의 성장을 느끼는 것.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식 때마다 느끼는 자식이 커가고 있음에서 얻는 감사함과 희망은 꽤 강력하고 압도적이다. 아마도 아들이 군대를 가거나 취업을 하거나 하는 순간을 맞는다면. 특히 아들이 결혼을 한다면 정말로 기쁘고 감사하고 만감이 교차되겠지. 그리고 내 자식이 자식을 낳는 것을 목격하고 그런 자식의 성장 여정에 내가 어떤 가이드 역할을 해주거나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면 아주 행복하고 기쁠 것 같다.


마음에 안 들고 나를 힘들게 하는 배우자라도 그 배우자에게 의리를 지키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함께 만들어가는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다.



유아기 아이들이 하루종일 집을 어지럽히고 난장을 쳐 놓아도 기어이 집을 정리하고 단장하고 모두 잠든 밤 깨끗하고 정리된 부엌에서 조용히 혼자 앉아 있는 밤이면 이런 내 삶의 과정이 참 만족스럽다. 힘들지만 내가 힘들여서 꾸린 이 조용함과 안온함에서 오는 기쁨을 자각한다. 그럼 힘든 하루의 모든 것이 해소된다.


아름답게 전실을 꾸며놓고 예쁜 아가페를 들였지만 아들이 야구공을 던져 내가 아끼는 아가페의 팔이 꺾여도 좋다.

물론 혼자 살면 집을 더 아름답게 꾸밀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가 공을 던져서 아끼는 식물의 팔이 꺾이는 이벤트는 없을 것이다. 그럼 애가 혼나서 엉엉 울며 아가페 화분 옆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서다가

"아가페 나무야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그 과정을 보는 재미는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런 지지고 볶고 괴롭고 즐겁고의 과정에서 나는 깊어지고 자라난다.


삶에 모든 열매는 그 열매를 얻기 위해 거름을 주고 땅을 고르고 한여름의 뙤약볕을 이겨내야 당도 높고 가치 있다.


우리나라 미래 재생산율이 0.7을 지나 0.6에 수렴해 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에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애 낳고 키우는 게 어렵고 괴로운 국가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동감한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에 그런 광고가 실리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다들 똑똑한데? 자신의 신간이 편안해지는 길을 다 아는데?  

결혼을 앞둔 미혼의 친구들 중에는 결혼은 해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동의한다. 자식을 낳는 순간 이 결혼 제도에 종속되고 개인의 삶은 자식에게 담보 잡힌다는 게 사실이니까. 자식이  생기는 순간 그 아이의 생을 책임져야한다는 중압감이 부모를 짖누르게 되니까.

요즘 사람들은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결혼이란 제도가 힘들면 힘들고 지질한 현실을 바로 벗어나는게 오히려 안전장치라 여긴다.

하지만 아마도 나 같은 사람도 있겠지. 힘들고 지질한 현실이라도 약속과 계약을 가장 중요성을 더 중요시 여겨서 그 지질함 속에서도 계약이 이행되는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


유자식 하팔자는 편리성과 편안함에서는 무자식 상팔자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편한 인생만 재미있는 인생인가?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자신만을 책임지는 인생이 더 좋은 인생인가? 하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나처럼 이렇게 자식에게 담보 잡힌 삶,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삶에서 더 큰 의미를 찾고 재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니까!

사실 드라마틱하고 지지고볶으며 드글드글 사는 재미는 유자식 ㅎㅏ팔자가 무자식 상팔자의 삶보다 더 크다고 자부한다.

삶이란 게 명쾌하게 설명되는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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