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젠가 Jan 28. 2024

MZ는 달라

비둘기 그녀에게 배웠다

나에겐 13살 어린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늘 소문의 가장 끝에 서 있는 나에게 각종 학교의 소식들을 물어다 줘서

나는 그녀를 비둘기라 불렀다.

비둘기 그녀와는 나이 차이가 나지만 나는 그녀와 가장 이야기가 잘 통했고 가끔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요즘 MZ들은 다르구먼 하고 느낄 때가 많았다. 좋은 쪽으로!

나는 그것이 성평등을 비롯한 평등교육이 교육과정에 들어온 세대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한 내 세대를 구분 짓는 요인이라 여긴다.



4년 전,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된 그녀의 연애담을 나누고 조언자를 자처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녀에게  큰 깨달음을 얻었었다.


비둘기가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는 늘 그는 어떤 성품이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계획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그녀를 통해서 아는 사람이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 남자친구라면, 기혼자의 입장에서도 찬성할 만했다. 나는 기혼자였지만 결혼과 연애 상담 때는 비혼을 주장하는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자친구는 보수적이지 않고 부모와 독립되었으며 스스로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고 여자친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따라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비둘기와 비둘기 남자 친구는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느 날 그녀가 새초롬한 라탄 가방을 들고 왔는데 못 보던 거라 남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건지 물어봤다. 실용적이고 가벼워 보였지만 귀여운 디자인이었다.


그 라탄가방 때문에 그때 모인 사람들의 주제가 연애하며 받은 선물 자랑으로 흘러갔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를 비롯한 40대 이상의 여성들은 남자 친구에게 내가 갚아 줄 만한 능력보다 조금 더 비싼 선물을 받아도 된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아도 될 만한 호의다라고 생각했고

비둘기를 비롯한 30대 이하 여성들은 절대로 내가 돼 갚아 줄 만한 능력보다 더 비싼 선물은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건 호의가 아닌 권력의 문제다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심지어 비둘기는 아무리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라도 남자에게 명품을 받는다면, 나도 명품을 선물해야 하고 내가 그런 능력이 안된다면 안 받을 것이다라고 선언 했을 뿐 아니라 친구가 남자에게 명품을 선물 받고 자기도 그 정도의 보답 없이 그걸 자랑만 하길래 그 친구에게

"니 그 명품 가방 받으면 그 남자에게 비슷한 수준 선물을 해야 하는데 보답했니? 그럴 돈이 없어서 보답 안 할 거라고? 니는 거지가? 빨리 못 받는다고 돌려줘라" 하고 일갈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 내가 연애하던 시절, 20년 전에 왜 내 주변에는 비둘기 같은 친구가 없었을까?

20년 전 내 친구들은 남자 친구에게 티파니 러브 링이나 목걸이를 받아서 걸고 다니고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아도 된다고 여겼으며 그게 사랑의 척도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친구가 그런 명품을 받아서 행복하다면 그걸로 되었다, 비싼 거 받아서 부럽다 정도로 반응 했지 아무도 너도 그 남자에게 그 정도의 보답을 했니? 하고 물어보지 않았었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나를 수용하고 너를 수용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나를 알아다는 것. 그것이 연애인데 20년 전의 나와 내 친구들은 연애의 본질을 모르고 나에게 얼마만큼 해줄 수 있는 남자 인가를 따졌었다.


아마도 연애의 본질은 그 과정에서 반드시 상대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 결국 나를 정확히 알고 상대를 통해 더 나은 나를 찾으려 하는 것이 연애의 완성, 그래서 결국 나를 잘 알고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아주 통렬히 그리고 진지하게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알아가는 것이다.


연애 시절, 20대 나도 나를 모르는 채로 내 남편이 나에게 얼마나 맞춰주고 얼마나 잘해주는지만을 고려해서 결혼을 해버린 나는 지난 20년간 결혼 이후로 아이를 키우며 생활을 하면서 나를 정확히 알아야 했고 남편도 정확히 알아야 했고 내가 낳은 아이들 까지 정확히 알아내느라 굉장히 힘들었다.



물론 이제 , 40대가 돼서 안다. 연애 관계에서도 물질의 불균형은 관계의 불균형이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질을 베풀기만 하는 것이나 , 받기만 하는 것의 문제는 호의의 문제나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문제이고 특히 여성이 남성에게 물질을 받기만 하는 연애를 하면서 그것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그녀를 아끼는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이 조언을 해줘야 한다는 것.


비둘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비둘기야 너는 걱정 없겠다 하고 생각했다. 어떤 연애를 하든, 어떤 결혼을 하든 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에 잘 맞는 상대를 만날 것이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서로가 지향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살아갈 것 같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와 같은 과정을 겪어도 된다. 물론 나는 내가 살아온 과정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중요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나와 상대를 아주 잘 알고 한계와 지향점을 명확히 알고 시작하면 더 편안할 것이다.  

지금 비둘기는 그렇게 잘 살고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지금 받는 공교육과정에서 지식의 깊이와 수준이 내가 받던 때와는 확실히 더 깊어지고 어려워졌다는 걸 많이 느낀다. 사교육은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다.

4세 때부터 언어, 외국어 교육은 심화되고 쏟아지는 정보가 많기 때문에 언어 교육에서는 문해력 교육도 심화된다. 사교육이 리딩하는 지역, 소위 학군지 라는 곳에 아이들이 받는 사교육의 카테고리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소위 학군 지라 만나는 엄마들마다 영유아 때는 아이들의 사교육 이야기 중고등 때는 입시전략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누구며 어떤 사람인지? 내 아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연애를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서 맞춰나가고 완성되어 가는 삶을 살아가면 좋을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없다.

딸의 엄마에게 당신의 딸이 연애의 과정에서 혹시나 벌어질 사랑해서 주는 선물, 그 물질로 인한 권력 관계를 겪게 된다면? 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지만, 40대 이상의 학군지 엄마들은 이미 물질로 인한 권력차가 나는 결혼이나 연애도 합당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세대의 사람들이라 이런 화두를 던지는 내가 기묘한 사람일뿐.


그런데 중요하다. 아무도 가르치지 않지만

가르쳐 주고 싶다. 공교육 과정에 성 평등 교육이 이왕 들어왔으니

아주 디테일하게

연애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아는 것이다!!! 라고 가르치고 싶다.

그리고 비둘기의 일갈은 많은 걸 의미하고 있으니 반드시 가르치고 싶다.

"너 거지가? 네가 보답할 수 없는 수준의 선물은 받지 말아라"



이전 12화 유자식 하팔자 입니다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