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정은 꽃길입니다.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 미뤘던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별다른 증상은 없지만 사업장 소속 근로자가 국가 검진 미수검할 경우 사업주가 과태료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는 조항을 알고 있기에 혹시라도 내가 속한 학교에 나 때문에 불이익이 갈까 봐 하는 걱정, 시 교육청에서 복지 포인트로 교직원들 건강검진비를 지원해 주는 맞춤형 복지혜택을 이용하려고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건강 검진을 하기 전에 이미 나는 꽤 불안하고 불완전한 상태였다. 별 다른 증상은 없었지만 지난해부터 무기력하고 피곤했다. 그리고 지난 내 삶의 모든 회오리바람의 원천. 늘 흔들거리고 뿌리내리지 못하는 내 남편이 또 사업에 실패하여 그 자신도 흔들리고 있었다.
파국으로 향해가는 급행열차 같은 사람을 말리지도 못하고 나와 자녀들 역시 그 열차탑승하고 있으니 뛰어내리지도 못하며 불안하게 바라보는 심정은 하루하루 소진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런가 사실 검진을 하며 갑상선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어라? 어라? "하는 소리를 냈을 때도 큰 병원에 가보라는 진료의뢰서를 발급해 줬을 때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더 큰 고통은 큰 고통을 누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암 진단을 받을 순간부터 인생이 바뀌는 여정이 시작된다.
가장 크게는 수술할 의사를 정하고 수술 방법을 정하는일부터 보험 처리나 산정특례등록까지 질병 외에도 굉장히 많은 소진이 시작된다.
그런데 그 첫 과정인 건강검진 갑상선 초음파 검사에서부터 나는 너무 내가 당연히 암이 아닌 다른 진단일 것이라고, 그냥 결절이 좀 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그런가 첫 단추가 꼬이게 되었다.
갑상선에 어떤 이상이 발견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검사는세침검사이다. 돌아서 생각해보니 이 검사를
하는 병원부터 잘 정해야한다.치료의 여정이
여기서 시작되기 때문. 그런데 난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예약해서 갔다. 모든것이 귀찮고 지긋지긋한 심정이였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기니 관점이 변했다. 나는 결혼이후 남편도 시월드도 자식도 모두 나를 흔들고 쥐어짜는 것 같다고 여겨졌다. 기혼생활이란 나는 앞만 보고 달려가도 늘 그들은 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데 그걸 이겨내는 시간같았다. 그래서 지금,진단을 받고 병가를 쓰며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들 어쩌면 지금이 내인생에서 넘어진 김에 쉬어갈 기회라 여겨진다.
세침검사는 아주 작은 주사를 갑상선 조직에 넣어서 조직을 흡인하여 슬라이드에 도말하여 조직의 병변을 살펴 병리학적 분석을 하는 검사이고 이것으로 내 갑상선에 신생 물질이 악성인지 양성이 지를 파악하는 첫걸음이 된다.
아무리 순한 암이라고 해도 암 진단을 받는 사람에게는세상 이런 충격이 없는데, 세침검사를 한 동네 병원에서는 너무 대수롭지 않게 암이니 수술하자는 워딩이 전부였다.
첫 세침 검사를 한 의원에서 대수롭지 않게 "암이니 수술합시다. 나가서 수술예약 잡으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두 가지 감정은
"어라? 암 진단을 이렇게 받는 건가? 나한테는 세상 무너지는 무서움인데?"
" 갑상선 암은 무슨 피부과에서 점 제거 하듯이 제거하면 되는 거야? 이건 거의 시술처럼 간단히 말하니 진짜 별거 아닌 거 같네" 였다. 그래도 암인데 저렇게 무미건조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고 ?
나는 동네 병원에서 진단받고 고민끝에 수술은 서울의 3차 병원에서 하기로했다.
어떤 경로든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 특히 지방러인 사람들에게 당부한다. 서울의 빅 5를 찾아가라!
나도 생각한다. 의료자원의 수도권집중, 자원분배의 문제가 심각하다는것. 지방사람들이 치료나 진료를 위해 새벽 첫 차를 타고상경하거나 심지어 병원근처에 단기거주하면서 치료를 받는 그 과정의 소모적인 자원의 낭비. 문제다.
오죽하면 야당대표가 지방거점 국립대학이 아닌 서울에서 수술받은 것이 문제화되었을까.
그런데 내가 진단을 받고 나니, 암 수술은 그게 사소하든 아니든 그 과정이 굉장히 지난하고 힘든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에 믿을만한 의료진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진 병원의 선정이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다.
암진단을 받으면 일단 수술을 위해 병가를 내든지 해야하고 생업에서 손을 놓게된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너무 잘 돼 있어서 중증환자는 치료비의 5%만 지급하면 되지만 비급여 치료나 요양비가 발생한다. 일상이 균열되고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믿을만한 명의를찾는건 너무 중요하다.무엇보다 자신이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진단 과정에서 오진에 대한 의혹 혹은 마지막 소망을 품는다. 전신마취에 몸에 칼을 데는 수술을 해야 한다면 혹여라도
다른 소견을 얻고 싶은 마음도 당연한 것이다. 왜 사람들이 닥터 쇼핑을 다니는지 알았다.
나는 전직 간호사로 내가 졸업한 학교는 정말 의료진 양성에 특화된 교육기관이었고, 내가 근무했던 모교 의료원은 굉장히 체계적이고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의료원이었다. 내가 아파보니 알았다. 그 속에 속했을 때 그게 당연한 거라 여겼지만 이제 밖에 나와서 보니 그건 굉장히 오랜 시간 오랜 공을 들여서 완성된 결과물이고 그 의료원 조직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교직원들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는 것. 내가 신규간호사로 모교의료원에서 일할 때 나는 태움만 당하는 우주 최고의 똥멍충이고 가장 빌어먹을 존재다라고 여기고 박차고 나왔을 때와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졸업한 지 20년 만에 모교 의료원을 찾았을 때는 내가 이곳에서 근무를 했었어서 참 다행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겼다.
의료자원의 수도권 집중의 문제는 평소에도 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나도 어린 자녀들을 두고 서울에 병원까지 올라가서 다른 소견이든 뭐든 받아볼 엄두도 못 냈고 내가 부재할 경우 남편이 아이들을 케어해 줄 상황도 안되고 여유도 안되어서 서울행을 망설였다. 그리고 지금 의정 갈등으로 대학병원들의 수술인력도 부족하다는 것도 알기에 겁이 났다.
그런데 나는 세침 검사 조직을 찾으러 갔을 때부터 내 치료 여정이 어긋났다 느꼈다.
의료대란 속에서도 서울의 3차 병원에 외래예약을 겨우하고 서울 병원에서 가져 오라고 한 내 병리조직 슬라이드 원본을 찾으러 첫 진단받은 지방의 병원에 가니 내 조직 원본이 이 병원에 없단 소리를 들었다. 검사한 내 조직원본을 찾으려면 검사한 그 병원이 아닌 병리검사를 위탁해 놓은 다른 병원으로 다시 찾으러 가라는 안내를 들었을 때 일이 매우 귀찮게 흘러간다 여겨졌다. 그걸 찾기 위해 또 연가를 쓰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처음 가는 동네에 구글지도를 보며 생전 처음 가는 동네에 처음 보는 그 병리의원을 방문해서 슬라이드를 찾아야 했던 번거로움.
그런데 그렇게 겨우 내 조직을 찾아서 서울 병원에 외래진료를 받기 위해 들고 갔더니
내 조직 검사 슬라이드 원본에 바코드와 결과 등록이 안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병리조직 결과를 확인할수없으니 다시 처음 세침검사한 지방 병원에 연락해서 바코드 등록을 요청하라는 소리를 듣고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아니 사람 몸에서 조직을 때내서 암이라는
진단을 내렸으면 그 근거가 되는 병리
슬라이드 원본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것 아닌가?무슨 동네 어린이 실험실에서도 이렇게 허술하게 검체관리 하지는 않겠네? 요즘엔 동네 문방구에 물건들도 바코드를 넣는데 암조직 검체에 아무런 식별코드가 없다니? 코드 없는 내 검체원본을 정말 다시보니 이름석자만 적혀있었다. 순간 이게 내검체가 맞는지 혹시라도 보관과정에 뒤바뀜 같은 오류가 생긴건 아닌지 그로인해 오진을 받은거면 어쩌지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암은 진단받은 순간부터 수술후 관리 5년 생존후 완치 판정까지 아주 긴 여정이 시작된다. 그 길이 꽃길일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 다른 소모적인
문제를 겪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서울의 큰 의료원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갑상선 암의 진단 기술이 발달하고 갑상선 질환의 환자 케이스가 많아지며 이 질환을 다루는 전문병원도 많아졌다. 어쩌면 쉬운 암이니 기관 진입 문턱도 낮도 예약도 빨리되는 지역 기관을 방문하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내 생각을 처음부터 뒤집었던 조직검사 슬라이드 사건.
생이 생각대로 되지 않고 선택의
결과가 뜻밖이였던 경험이 많은 사람이 가진 유일한 장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이 고비를 넘기면, 이 터널을 지나면 또 좋아진다는 긍정값이 디폴트된다는것.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정은 꽃길이다. 하며 또 마음을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