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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Apr 08. 2024

나의 갑상선암 치료기

사실은 대장 내시경 받으러 온 건데요


최근 몇개월간 속이 쓰리고 더부룩해서 위 대장 내시경을 받고 싶어서 건강검진을 하러 갔다.  

건강검진을 신청하러 동네 의원에 갔더니 몇 가지 비급여 항목 검사들을 선택으로 끼워 넣어야 한다고 해서 약간 고민하다 신청을 했다. 검진 전문 병원은 내시경말고도 비급여 검사로 수익을 내야 하기에 상담 할때 적극 권장하길래 갑상선과 간 초음파 복부초음파를 보기로 했다.

 생애주기에 해당되지 않는 검사들은 항목당 3~5만 원 정도의 금액이 발생하고 내시경 수면 마취료에 병원에서 권유하는 몇 개 항목을 넣으면 보통 30~50만 원 정도의 금액이 예상된다. 보통은 채용된 회사에서 이런 비급여 검사들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내가 속한 교육청에서는 교육청에서 일괄적으로 얼마의 포인트로 맞춤형 건강 검사비를 지원해 준다.

채용된 기관에서 일정 부분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금액에 대한 부담은 만만치 않다. 소속기관에서 이런 지원이 없다면 더욱더 건강검진을 멀리하게 된다. 경제적 부담, 시간에 대한 부담, 그리고 무엇보다 대장 준비의 고통스러움 때문이다.  나도  바쁘단 핑계로 늘 미루다가 이번에 아주 큰맘 먹고 건강검진을 받았다.


 대장내시경을 받으러 갔다 생각지도 못한 갑상선 암을 조기 발견한 나로서는 이제 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실시하는 국가사업인 건강검진을 적극 추천하는 건강검진 전도사가 되었다.

나는 사실 증상도 없었고 내가 암환자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검사를 해보고 알았다. 그리고 확실한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치료계획을 잡고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엄청난 과정을 겪었다. 아마도 내 인생이 이 건강검진 이전과 이후로 바뀌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의심이 된다면 근래 들어서 피곤했었다. 근데 근래에 감정적인 동요와 인생의 큰 결정과 변화를 겪느라 그랬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추웠다. 그런데 겨울에는 당연히 추운 것이라 여겼다.


혹시라도 주변에 추위와 무기력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대수롭게 넘기지 말길 바란다. 우리나라 암 진단율 1위가 갑상선 암이고 30~40대 여성 환자가 유병율이 가장 높다. 수요가 많기에 전문 병원도 많고 수술과 치료 후 예후가 가장 좋기도 하다. 그러니 몸의 소리를 무시하고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보다 우연히라도 알게 된 후 자신의 몸이 내는 소리들을 들어주고 혹시라도 이상이 있으면 치료하고 고쳐 써가며 몸을 살살 달래고 끌어가는 게, 그러기 위해  몸과 마음의 변화들을 늘 살피고 챙기며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져도 그 또한 받아들이고 그 과정을 견뎌내고 이겨내며 지나가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이 평화롭게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렇다면 좋겠지만 산다는 것은 근심걱정이 생기고 몸이 소진되는 일 아니겠는가. 나에게는 해당 안 되는 희박하고 막연한 가능성에서 나에게 별일이 안 일어나길 바라는 것보다 나는 차라리 그래도 조기에 빠르게 알아낸 것이 다행이다 여겨졌다.  동네 의원에 대장 내시경을 받으러 갔다가 의원에서 끼워 팔기한 갑상선 검사에서 갑상선에 큰 결절이 있으니 빨리 상급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으라는 소견을 들은 나는 내가 겪는 불행에 분노해야 할지,  아무 생각 없이 받은 검사에서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 신께서 어쩌면 멀리 크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리시는 건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을 불현듯 느끼고 감사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물론 하느님은 때로는 그 구원의 방식이 인간이 이해하기엔 너무 차갑고 무심하게 느껴질만큼 어렵게 구원을 주신다. 그 상황만 놓고 보면 신이 나를 또 시험에 들게 하시는 건가 하고 그 상황에만 매몰되어서 엉엉 울며 신을 원망 한다. 그렇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때의 그 시험이, 그때의 그 눈물이 양분되어 나는 또 나아가고 인생의 고비들을 굽이굽이를 넘는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의 고비들을 굽이굽이 넘어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어떤 자신감과 평화가 찾아오면 아, 그것이 나를 구원해 주는 방법이었구나를 자각한다.

이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살며 어렴풋이 느낀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생을 잘 통과하고 있고 내 삶을 살아내는 과정으로 내 인생을 스스로 구원한다는 자각은 어쩌면 신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이다.


이상이 있다는 걸 알고 세침검사를 하고 병가를 내고 서울로 닥터 쇼핑을 하고 수술 병원을 결정하고 외래 진료를 받고 수술 전 검사를 하고 수술날을 잡고. 암을 아웃팅 하고 또 친정 부모님과 한바탕 눈물의 시간을 보내고, 이시간 동안 또 수많은 갈등과 선택의 과정을 거치고 나자,치료 방향이 정해져서 이제 수술만 기다리면 된다.


마음의 여유를 되찾은 어느 날 나는 백화점에 가서 아주 예쁜 빨간 구두를 샀다. 이 신발은 이제 나를 좋은 곳으로만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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