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여성주의자는 아니었다.
올해도 이제 한 장의 달력만 남겨놓고 있다. 일 년이란 시간은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많은 일을 겪고 나니 그 시간이 참 길었다.
올 초에 나는 암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요양병원에 있는 동안 들 어놓았던 보험회사에서 진단자금을 지급해 줬는데 그 돈으로 뭘 할까 고민을 하다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변호사를 샀다.
육 개월 후에는 법적 관계가 마무리되었다.
복직하고 일상에 돌아왔다.
출근을 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도록, 상실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큰 아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입시준비를 하고 자기 일상을 찾아나가느라, 작은 아이는 아빠는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여전히 그런가 보다 하는 눈치로 아빠의 부재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소송 기간 동안 나는 내 몸도 돌보고 아이들도 돌보고 예측가능한 미래의 리스크에 대응하느라 아주 바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혼인 생활을 지속하는 것보다 그만두는 것이 미래의 리스크가 더 적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자 그동안의 불안감이 싹 사라졌다.
외롭고 막막한 기분은 사실 혼자일 때보다 언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몰라 전전 긍긍하게 하며 나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배우자와 시댁이 곁에 있을 때 더 컸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일상에서 사회에서 그 알 수 없는 어떤 불공평함이나 현실에서 아주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것들, 우리 사회의 오래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불합리한 사고와 판단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다.
겪어봐야 이해한다. 유년시절, 남성은 권위적인 것이고 가부장제도는 질서라고 여기라고 교육받았다. 그래서 여자는 시집을 잘 가야 한다. 남자를 만나 보호받으며 살면 편안한 삶이라 여기는 교육을 받아왔다. 나는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이지 선택이라 여기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시집오면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시부모님의 강요와 압박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나보다 무능한 남편이 경제적인 실패를 반복해도, 네까짓 게 잘나면 얼마나 잘났냐 내 아들 무시하지 말고 살라며 며느리에게 폭언을 일삼는 시모의 가스라이팅에도 그래, 맞지, 한 번은 두 번은 세 번은 실패할 수 있지 남편 기 살려주고 남편의 경제적인 실패를 수습해 주는 것도 어쩌면 부인의 도리일 것이야 아무튼 우리 애들의 아빠니까. 저 존재가 무너지면 아이들도 무너질 것이야 하며 기를 쓰고 살아냈다.
아무런 권위도 힘도 없지만 남성이라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가부장적인 사고와 복종적인 삶을 강요하던 사람들은 사실 나에게 해준 것도 없고 내 삶을 보호해 주지도 않는다는 것을 중년이 돼서야 알았다. 내 어린 시절 중년이었던 여성들이 나에게 남자가 권위고 권위에 기대라고 가르침을 주었다. 고분고분해야 잘 사는 거라고 알려줬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녀들에게 가장 배신감을 느낀다. 본인들도 살아보며 깨달았을 지혜를 왜 다음세대의 여성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보수적인 직장문화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직장 내에서도 사실 나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란 남성, 높은 연령, 고위직 같은 직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존경하고 저절로 감복해서 따르는 사람은 여성이고 훌륭한 인격과 식견을 가졌으며 타인을 수용할 줄 알고 그 어떤 의견도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고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분이 가진 권위는 나이나 성별이나 자리가 주는 권위가 아닌 스스로 노력해서 갖춰진 특별한 능력이었다. 그 특별함에 누구나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고 싶어지는 권위였다.
돌아보니 그땐 몰랐지만 돌아보니 나만 몰랐을 뿐 나는 그냥 내 존재 자체가 주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내가 고유한 힘이 있으니 너 자신을 믿고 살면 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약한 존재이니 기대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누군가가 나를 보호해주지 않아도 되었지만 내 윗세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 너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혼자 설려는 발버둥은 너무나 힘든 것이다. 그러니 편히 누군가에게 (남자에게 ) 기대서 살아라 하고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가스라이팅 한 것에 넘어가서 나는 아주 약하고 힘없는 존재이니 도움이 안 되더라도 남편이 시댁이 있어야만 한다고 여기고 살았다. 권위에 복종하는 건 당연한 것이니 부당하더라도 조직사회에서는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선택들이 후회될 만큼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힘이 있었다.
내가 정말 힘들게 어렵게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고통받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을 모든 여성들에게 말하고 싶다.
생의 어느 지점에 있든. 기혼이든 미혼이든 유자녀이든 무자녀이든 젊든 늙든. 당신들의 존재 자체로 그대로 혼자 설 수 있다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의 삶을 일으킬 힘이 있고 생의 풍파를 뚫을 힘이 있다. 만약 그 당연한 사실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여 약하게 만들고 겪어야 하는 생의 풍파를 이겨내지 않고 그냥 회피하고 도망치는 선택을 하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가장 멀리 하고 경계하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