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젠가 Mar 16. 2024

암진단을 받고 요가를 얻었다.

요가를 하면 들숨에 고요와 안심을 얻고 날숨에 스트레스가 나간다.

최근 두 달 사이에 내가 겪었던 일은 기존에 내가 살아냈던 질서를 파괴해 버렸다.


홈 스위트 홈을 꾸린다는 자부심은 나만의 허상이었나 보다.

나에겐 자식은 있지만 가정이란 울타리를 함께 지어낼 파트너인 배우자는 없다.

그 깨달음은 참으로 아팠다.

내가 기혼자가 아니라면 어차피 인생 혼자야! 도움은 필요 없어! 하는 자각은 나를 성장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행히도 나는 기혼자이고 남편에게 얻는 사랑과 위안을 바라는 사람이고 가정이란 울타리를 혼자 만들고 꾸리기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남편의 실패와 부재는 나를 괴롭게 했다.

자식을 키우며 함께 꾸려나가야 하는 일상에 기여를 하지 않는 것,

부인인 나라는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내주지 않는 것,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자꾸 기대려 하는 사람이라는 것.

남편에게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에너지, 위안이 없다는 사실들은 그동안 수 없이 나를 좌절시켰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는

부인이 암이라는데 걱정과 위로는커녕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늘 그래왔듯이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태도로 모른 척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니 사실 그동안 보였던 것보다 더욱더 냉정하게 외면했다.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으며 소통을 거부하고 당신은 죽든지 살든지 내 일이 아니니 알아서 하라는 태도. 어쩌면 회피, 어쩌면 외면.

결혼해서 살며 무언가를 한 단계 이루게 되는 순간, 생의 모든 과업들 , 자식의 교육, 이사, 내 집 마련, 대출 같은 큰 일뿐이 아니라 공과금, 카드값 지출 청소나 정리, 휴가나 외식 같은 소소한 일상도 모두 내가 알아서 하고 그는 늘 한발 빼고 외면했다. 껍데기 같은 남편이지만 그래도 남편이란 존재가 있으니 위기의 순간에는 내 옆에 있어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사라졌다.


그것은 암 선고보다 더 많이 나를 후벼 팠다.




이건 내가, 한 사람과의 믿을 수 있는 애착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참 큰 사람이라 그 욕구가 좌절돼서 상처받는 것인가 보다. 원래 그는 그런 사람이니 그를 원망하느라 여기서 더 이상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을 느끼지는 말자 하고 다짐하며 나를 다잡고 다잡았다.


하지만,


왜?

나는 이렇게 예쁘고 멋진데?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아름다운 외모가 있고 좋은 직업이 있고

좋은 성품과 상냥한 마음씨를 지녔는데?

결혼 후 남편과 시댁에게 그만큼 충성하고 의리를 지켜왔고 남편과 시댁의 뜻대로 모든 걸 버리고 이곳에 정착해서, 그들이 약속했던 그 모든 것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내 힘과 노력으로 이만큼 이뤄냈는데?

그러면서도 나의 아이들을 건강하고 다정하게 잘 키워냈는데?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내가 뭐를 잘못했길래 내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하는 억울함은 나를 찔러댔다.


나는 분명 더 나은 대접을 받고 더 나은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인데 왜 내가 이런 불행과 좌절을 느껴야 하는 건지 지긋지긋하고 끝없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모르는 사람, 기혼자가 돼서는 안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그 사실을 매 순간 자각했지만 , 지난 20년을, 그래도 한 번은 참자 그래도 한 번은 또 참아내 보자 하며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일 뿐, 굳이 잘못이라면 미련 많고 포기를 못한 내 탓이다.



게다가 이런 나를 지켜보고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준 친정 엄마에게 또 나는 실패자의 모습을 보이며 불효한다는 비 합리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어버렸다. 사실은 그건 엄마의 탓이 크다.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배우자에 대한 의리와 충성도 없고, 가정에 대한 기여도 없고, 타고난 상냥한 성품도 없고, 매력적인 외모도 없고, 본인의 능력도 없는 것 같은 수많은 남의 딸들은 남편 잘 만나 편안히 사랑받고 사는 거 같아 보이는데?  왜 내 딸은 저렇게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내나? 내 딸이 뭐가 부족해서 저런 취급을 받느냐는 논리로 위로인지 한탄인지 모를 것들을 나에게 쏟아내고 마지막엔 늘 네가 복이 없어서 그렇다.

남자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는데

하며 팔자론을 펼쳤다. 다른 건 꾹 참고 들어도 , 내 자식들 , 내가 지난 날들 동안 상처받은 내 심장과 바꿔 키워낸 내 자식들까지 엄마의 그놈의  팔자론과 박복론의 단골 멘트로 등장하자 그것은 또 다른 화살이 돼서 내 심장에 박혔다.

"엄마, 엄마가 딸을 똑똑하게 잘 키워주셔서 그래도 내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낯선 곳에서 자식 건사하며 살 수 있었던 거야. 우리 가정이 풍비박산 날 뻔한 수많은 위기에서도 내가 복이 많아서 가정을 지켜낸 거야. 내가 왜 복이 없어? 나한텐 엄마 아빠가 있고 내 애들이 있고 좋은 직장이 있고 다 있는데? 고작 남자 때문에 엄마 딸이 박복해질 만큼 그렇게 엄마 딸 약하지 않다오"

엄마를 위로한답시고 반격했으나 그 말에는 별로 힘이 없었다. 그래서 친정이 늘 그리웠지만 친정행이 점점 귀찮고 불편해졌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삶이 있고 인생이 있는데, 각자 다른 행복 각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란 존재와 그의 역할이 생의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신념으로 뭉쳐서 애써 살아내고 있는 딸의 용기를 돌아보기보다는 팔자를 들먹이는 엄마, 애써 살아내는 딸에게 애쓴다는 말대신 남편의 도움 없이 사는 게 박복하단 말을 하는 엄마.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상처 주는 사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그런 가르침과 생각들과 삶의 방식 때문에

내 선택들이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도 감히 그 불행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못 냈던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각의 끝에는 일견, 결혼을 안 하면 몰라도 했다면 안정적이고 올바른 인격과 성인으로서 자기 생은 끌어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배우자를 만나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삶이 가장 중요하단걸 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그런 성숙한 인격을 가진 성인 남녀로 생을 꾸리며 상대에게 사랑받고 상대를 사랑하길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게 엄마가 주장하는 결혼한 여자의 복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이혼하는 건 인생의 실패라 여기고 두려워하는 엄마지만 막상 또 딸이 사위의 수많은 실패, 무성의함과 무관심들을 이겨내고 거칠고 드센 시부모의 시집살이를 견뎌내는 삶을 살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걸 보고

화가 나고 속상했을 것이다. 결국 또 가장 괴로울 나에게 그 화를 투사하지 못해 그저 그 모든 것이 내가 남편 복이 없어 그런 것이라는 주장을 하며 팔자 탓을 하는 엄마를 보면 슬프고 힘들었다.  

그런데 내 자식이 커 갈수록 느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아이들이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복이란 것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팔자도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내 아이들은 비록 본인이 선택한 결혼이라도 그것이 불행하다면 벗어날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약속과 계약은 무조건 따르고 지켜야 한다는 엄마인 나의 사고방식과 신념처럼 의미 없고 바보 같은 신념을 지키느라 자신에게 가장필요하고 유의미한 선택을 할 용기를 내지 못하며 나처럼 참아내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너무 괴롭고 무서울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의미 있고 사랑하는

타인에게 가장 영향을 받고 그 사람의 생각과 신념을 따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가장 상처받기도 하고 가장

크게 위로받는다. 그렇게 치면 남편에게 상처받은 건 어쩌면 그를 너무 사랑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초기에는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인 시부모의 신념에 따라 살았다.

지금 내 인생의 가장 큰 위기의 순간 그의 위로와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다. 사실 결혼 이후 내 인생의 위기는

대부분 그로 인해 생겨났고 그 모든 순간에 그는 나를 위로하고 챙기기보다는 외면하고 도망을 쳤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래도 그가 밉고 원망스러워도 참아낼 에너가 있었다.


이번에 외면 당한순간 나는 더 이상의 그 모든 기대를

접고 드디어 포기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게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 탈출할 기회, 새로워질 기회

인생전체를 리모델링할 기회라는 생각이 강렬히 들어왔다. 남편, 아빠의 존재가 그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해 부인과 애들이 얼마나 더 애쓰며 살아내고 일상을 힘들게 이어가는지 알아채고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외면하고 손 놓고 그대로 그저 얹혀가면 된다는 사람에게 더이상 에너지를 뺏길수 없단 자각.



그리고 내가 그동안 그토록 애쓰면서 지키려 했던 것들은 내 힘으로 내 의지로는 안 되는 것이었음을 받아들였다. 하여 나는 나의 건강과 평안에만 에너지를 쓰면 된다는 인생의 명징한 진리를 자각하게 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 나는 평화로워졌다. 이상하게도 암 이란 것을 안 순간 혼란했던 마음속이 정리가 되고 미뤄왔던 결심들이 현실화되면서 마치 아주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주 중요한 최소의 것들에만 집중하자고 결심했을 때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식, 내 건강을 위한 운동과 영양.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요가에 다시 집중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여전히 어렵다. 그런데

안 되는 아사나들을 대할 때 뻣뻣한 내 몸을 탓하기보다는 이번엔 그냥 받아들였다.

원래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저 아사나를 내 몸이 흉내만 내며 겉으로만 따라 한다기보다는 집중해서 그냥 받아들이자는 결심. 남들이 다 해내도 나는 못해낼 수 있다. 그건 그냥 그런 것이다 하고 받아들였다. 이젠

더 이상 다른 수련자의 동작을 곁눈질로 바라보지 않았다. 나의 몸과 마음의 흐름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50분의 수련이 끝나고 사바아사나로 휴식을 취할 때면 매번 내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밑도 끝도 없는 눈물에 나도 어리둥절한 시간들. 갑자기 이렇게 눈물이 나온다고? 싶게 울었다.

그 감정들은 분출이었고 위로였다. 그리고 혼란과 두려움 외로움에서 나를 건져내는 통로였다.


나를 구원할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흔들리고 내가 외로움에 빠져 나를 측은히 여기 면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다.


나만 힘들어, 나만 없어, 혹은 내 불행은 당신 때문이야 하는 태도도 구원이 되지 않는다.


그냥 나는 또 담담히 받아들인다.

직시한다.

그리고 그것을 크게 부풀리거나 과장해서 두려워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직면하되 거리를 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망과 미움도 점점 버린다. 물건을 비워내듯이 감정도 비워낸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지 못한다는 원망

위로받고 싶은 순간 위로받지 못한다는 원망은 더 이상원망이 되지 않는다.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상대에게는 아무런 바람도 없고 아쉬움과 미움도 사라진다.

그리고 드디어 그 관계에서 비로소 해방되고 자유로워진다.  나는 복이 없는가?

내 남편과 살아온 20년 동안, 자식을 낳고 키우는 순간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다. 기혼의

삶을 사는 복을 충분히 누렸다.


지배적인 시어머니와 지배에 익숙한 힘없는 아들인 남편 사이에서 한국의 며느리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경험들을 했지만 그 사이의 삶과 일상에서 좋은 경험과 추억도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지배를 겪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서 아무런 배경도 연고도 없는 지방에서 결국엔 시모가 제시한 길이 아닌 내 힘으로 걸어내는 나만의 길을 찾아냈다.

자식들이 커가는 기쁨, 내 아이의 성취를 보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도 했다. 아이의 사춘기를 겪고 극복해 나가며 또 나 역시도 커져갔다. 남편이 날릴뻔한 아파트를 지켰고 그 과정에서 재테크와 부동산의 중요성을 알고 꾸준히 경제공부를 해서 자식들을 안정적인 주거 환경에서 공부시킬 수 있을 만큼 능력과 지식을 쌓았다. 남편의 고용불안을 지켜보며 나라도 안정적인 직장이 절실하다 여겨 애들을 키우며 피나는 도전 끝에 선별시험에도 합격했다.


아,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뤄낸 것 내가 성장한 것을 돌아보면, 더 이상

"남편이 위로가 안되고, 도움이 안 되여 암에 걸렸는데 남편이 외면해요"

이건 웃기지도 않을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출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수술할 병원을 알아보고

병가를 내기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내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다독이며 일상을 살아내는 순간순간에도,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지만 틈이 나는 데로 요가원을 찾는다.


따뜻한 분위기가 나를 감싸고

조용한 음악과 향기는 나를 위로한다.

들숨에 평안을 얻고

날숨에 스트레스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동작과 동작이 연결될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흘려내며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나는 괜찮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세계가 완전히 변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점점 마음은 가벼워지고 어쩌면 해방감까지 느껴진다.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울타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 침입할 수도 있지만 새로움을 받아들일 기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구독자님들

인사드립니다! 답답하고 고구마 같은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남편 때문에 울던 지질한 과거는 전생이라 여기고 묻어버리겠습니다!!!

갑상선 암은 순한 암이라는 위로를 남발했던 과거의 나 놈의 입을 탁 치고 싶게 저는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가를 내고 , 수술계획, 운동과 식이 계획을 짰습니다.  당분간은 그걸 실천하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성형 수술이 아닌 암 수술이지만, 수술 후에는 ,

보여줄게 완전히 달라진 나! 보여줄게 훨씬 더 예뻐진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