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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Sieben Stunden

1. 당신이 잠든 사이

by 언젠가

문득

불현듯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반추할 틈도 없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 일의 끝도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나에게 왔다. 그 신비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끝을 경험해 본 사람은 끝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조차 생각나지 않을 만큼 이 감정은

느닷없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마치 원래 내 것인 것처럼 느껴져서 알 수 없는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을 들게 하였다.


독일과 한국의 시차는 일곱 시간.

내가 잠든 사이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그는 오후의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잠든 나에게 긴 카톡을 남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며 그의 마음이 담긴 연서를 읽고 잠이 든 그에게 답장을 한다.

그럼 일곱 시간 뒤, 그는 일어나서 내가 전하는 말을 텍스트로 받아들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일상의 고독함과 고됨,

사람에 대한 실망과 환멸,

자존감의 위축을 경험하던 시간을 지나,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을 줘버리게 되었다.





시작합니다. 타인의 우주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여정. 그 두렵고 놀랍고 신비한 과정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글로 타인의 생각과 일상을 들여다보다 보면 문득 외로움이 사라지고 사람 사는 것이 다 똑같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의 글을 읽고 나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그의 글을 읽고 그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함께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이에 시차는 일곱 시간. 한국과 독일의 물리적인 거리는 8575km.

내가 자는 동안 그는 생활을 하고 그가 자는 동안 나는 일상을 꾸리며 기다립니다.

시간도 공간도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순간 함께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 교류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각자 생의 경험을 통해 많은 걸 얻었고 많은 걸 잃었습니다.

인생이 쉽지 않지만 괴로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지요.

그리고 각자 책임지고 지켜야 할 자식이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시차와 거리를 사이에 두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로 옆에 서로가 닿아 있는 것처럼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눈빛을 응시합니다.

삶이란 것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지?

나는 내가 싱글 가장이 될 줄 몰랐고 글로 소통하며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내 삶에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반쯤 살아온 것 같은데 앞으로 더 살아볼 일입니다. 앞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이 펼쳐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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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