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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일까?

그녀는 안티페미니스트 일까?

by 언젠가

내가 근무하는 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날 때가 되면 나는 아이들에게 여행 전 성교육을 한다. 교육계획서에 의거, 체험학습 전 안전교육은 의무이고 그 안전교육안에 성교육이 반드시 포함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에 우리 어린이들에게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말하면서 특히 낯선 여행지에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꼭 본인이 화장실을 간다고 교사에게 알리고 반드시 두 명 이상 짝지어서 이용하라고 당부한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솔하는 여성 교사들에게도 당부한다.

공중시설 화장실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 사회에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내가 아는 여성들이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나는 피가 얼어붙는 거 같다. 그런데 이건 학생들만의 일이 아니다.


나는 자기 가족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상가 같은 일상적 공간의 화장실에서 몰래카메라를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한 주부를 알고 있다. 그녀는 그곳을 자신의 9살 딸도 이용했다는 사실이 가장 소름 끼쳤다고 했다.

그녀는 그때 분노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재발을 막고 싶어 했다. 앞으로 자신의 9살, 3살짜리 딸이 살아갈 세상은 외출했다가 화장실을 이용하러 급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녀의 바람은 조용히 신속하게 묻혔다.

입주민위원회에 건의했는데 아파트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이, 그래서 아파트 가격을 방어하는 것이 가장 큰 명제인 이곳의 입주민 위원회에서 이 문제는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이 나서였다.

내 학생들이, 내 이웃의 딸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나를 보고 웃으며 너는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한 사람이 있다. 아파트 값 방어를 위해서 이 문제는 조용히 덮는 게 가장 좋겠다는 의견을 낸 여성이다. 나를 보고 웃으며 네가 페미니스트라서 이 문제에 비분강개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페미니스트야? 이건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하고 그녀에게 반문했다. 그녀는 한때 나와 친밀히 교류하던 사람이다. 같은 또래의 아들을 키우고 아이의 사교육이나 수학 선행 수업 같은 고민을 함께 하던 엄마.


그녀의 성교육은 그런데 나와 묘하게 어긋났다. 우리는 둘 다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였지만 그녀는 아들을 키울 때 아들에게 여자 조심을 시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던 사람이다. 내가 내 아들들에게 피임의 책무성을 가르치는 게 파트너의 성적 결정권을 존중하고 임신의 가능성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핵심이라면 그녀는 어떤 여우 같은 년이 내 아들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 아들 힘들게 공부시켜서 의대 보내놓았더니 아무것도 없는 여자애가 임신공격을 해서 뒷목 잡고 쓰러진 부부를 알고 있다. 그러니 아들에게는 반드시 피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녀의 배우자는 사회적으로 훌륭한 위치에 있고 우리 지역사회에 중요한 구성원이었는데 그녀는 그것보다 중요한 건 남편이 자신에게 백화점 VIP를 유지하게 해 주고 자신의 아들들을 비싼 사교육 시장의 주요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와 결정적으로 멀어진 건 술자리나 차모임에서 이야기를 할 때 어떤 여성 연예인을 비평하면서부터였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세상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낙으로 사는데 주로 연예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여성 최근 작품에서 연기를 잘하더라, 어떤 명품을 협찬받았더라 등 그 여성 연예인에 대한 평가를 그녀는 "그럼 뭐 해 이혼녀잖아" 라며 단정 지었다. 그 여성 연예인의 연기자로서의 프로필과 업적, 연예인으로서의 상품성은 그녀가 이혼을 한 경험으로 인해 묻혀버렸다.


그녀에게 이혼녀는 하자 있는 사람. 그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고 본인이 선망하고 좋아하는 명품 엠버서더로 활동할 만큼 상품성이 뛰어난 연예인이라도 이혼을 한 여성은 평가절하의 대상.


내 마음속 깊이에서 그녀를 손절하고 난 다음 나는 생각해 봤다. 그녀는 안티 페미니스트일까?


아니다. 나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녀를 안티 페미니스트라고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아들에게 콘돔을 쓰라고 가르칠 때 상대 여성을 위해 쓰라고 하든, 너를 위해서 쓰라고 하든 그 결과는 어차피 같다. 우리의 일상 주거 공간에 포함되는 화장실이 안전하길 바라서 그곳이 불법카메라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점검하자는 제안은 그곳을 사용하는 여성을 위해서이든 아파트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서이든 어쨌든 그 결과가 같다면 그 제안의 의도는 상관없다.


남편에게 존중받는 방식이 명품백을 선물 받는 것이라 여기든 내가 하는 일과 나 자신 그대로에 대한 존경이라 여기든 아무튼 부인으로서 남편에게 존중받는다고 느낀다면 그래서 여성으로의 자신의 가치가 지켜지는 것이라 여기면 그 결과는 같다 생각한다.


능력 있는 남성과 결혼한 것이 자신의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인 사람에게 이혼이란 있을 수 없는 이벤트 이므로 그 이벤트를 실행한 다른 여성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여기는건 그녀의 자유다. 그렇지만 이혼이란 생의 어떤 시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이고 그 이벤트를 실행하더라도 이후의 삶을 잘 꾸려가면 되기에 그 선택을 한 사람이 존중 받아야 한다 여기는 것은 내 자유다.

어차피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은 어쨌든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타인과 손 잡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녀도 나도 서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살아가며 마주치는 여성들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우리 사회를 함께 구성해 가는 구성원이다. 성실하게 납세하고 자녀를 교육한다. 아마도 그녀도 나도 두 아들들을 건강하게 잘 키워 군대에 보내 국방의 의무를 지게 할 것이다. 아까워서 눈물을 흘릴지언정 내 자식이 의무를 다하는 남성으로 성장한 사실에 기뻐하면서. 우리는 지역사회 공동체 안에서 모범적인 부모, 충실한 이웃의 역할을 한다.


시간이 좀 흐르고 어느 일정한 시점이 되면 나는 그녀와 다시 편하게 교류할 생각이다. 그녀가 우리 이웃 공동체 안에서 주도적으로 이끄는 차모임이나 술자리, 정기적인 계모임에도 다시 참여할 생각이다. 어쨌든 그녀와 나는 손을 잡고 몰카에서 상가 화장실도 지켜내야 하고 늦은 밤 까지 아파트 놀이터 컴컴하고 후미진 구석에서 놀고 있는 청춘들을 단속해 달라고 관리실에 민원도 넣어야 한다. 그건 우리의 책무이니까. 뭐시 중한건데? 우리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세상을 주고 싶은건 그녀나 나나 아마 같은 마음일것이다. 방식이 다르더라도 지향점이 다르더라도 상관없다.

중요한건 나와 내 이웃의 아들 딸들, 우리의 자녀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란 희망. 그걸 위해서라면 그 어떤 주의를 가지고 그 어떤 주장을 하든 결국 우리는 힘을 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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