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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시간 Sieben Stunden

마지막 이야기. 행복을 향한 선택

by 언젠가

우리는 생의 순간순간마다 선택을 한다. 어떤 선택이 잘못되었는지 잘 되었는지는 그 순간에는 모른다.

아주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이 연속되는 것이 삶이지만 미리 결론까지 내다볼 수는 없다. 그냥 그 순간 그저 본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고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나를 위한 모든 결정과 선택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내는 결론을 내기 위해서 가장 연습해야 할 것은 인생의 그 어떤 결정이든 내 마음속 깊이 원하는 것, 그걸 내 것으로 만드는 선택을 하는 연습이다.

내 인생이지만 내 마음속 깊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 때가 대부분이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걸 교육받아 온 적은 없다. 우리가 받는 대부분의 교육의 목표는 개인화가 아닌 남들처럼 사는 사회의 근면한 시민을 양성하기 위함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원하는 일원이 되도록 교육되어 사회 속에서 교류하고 몫을 다하고 납세의 의무와 국방의 의무와 인구 재생산의 의무를 다하여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훌륭한 시민을 만드는 것에 목표가 있다.


나는 그런 선택들을 했다.

인구 재생산을 하며 교육과 납세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고 훌륭한 시민이 되어 이 사회를 지탱하는 일원이 되는 것에 감사했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고 불행했다.

의무를 다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나의 개념과는 다른 파트너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나는 가정이라는 틀을 위해 나를 갈아 넣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자랑이자 기쁨이라 여겼다. 성숙한 성인 둘이 만나 서로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내가 배워온 데로 때가 되면 가정을 이루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어른으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중요한 줄 알았다. 그게 올바른 성인이라고 믿었기에 나는 불행했지만 불행인지 모르고 살아왔었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늘 애썼고 늘 동동거렸고 늘 아팠었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나는 내 불행의 원인을 몰랐다.


나는 생의 어느 순간 이전의 생과 다른 생을 살기 위한 선택을 했다. 그것이 내 일상을 변하게 했다.

처음엔 괴로웠고 어느 순간엔 자유로웠다. 그리고 내가 나를 위한 용기를 냈다는 사실에 스스로에게 감사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에 나는 그를 만났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해냈다. 그러자 비로소

그를 알게 되었고 그를 선택하게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를 만나고 그를 깊게 알게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나를 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해서, 내가 내 행복을 위해 선택하기 시작해서 비로소 그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직관적으로 알았다. 그를 선택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나에게 그런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다. 내 인생에서 나의 행복과 욕구를 가장 우위에 두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알게 되고 가질 수 있게 된 지금을 생각하면 지난 시간들의 경험은 어쩌면 이런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식견과 지혜를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될 만큼 지금 이 시간들이 귀하고 행복하다.

그는 다 괜찮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 괜찮을 거야 다 잘될 거야. 그런데 정말 그의 말대로 되고있다.

젊지 않은 나이에 서로에게는 자녀도 있다. 생각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십대처럼 그 무엇도 걸릴것이 없는 사람들처럼 사랑하고 있다. 다 괜찮을 거야 다 잘될거야 라는 그의 주문에 가까운 확언 때문이다. 사랑해야 하는 순간에 사랑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때문일 것이다.



* 마지막 글입니다. 남녀의 사랑에 관해, 연애에 관해 글을 쓰는것은 참 두렵고 쑥스러운 일입니다. 너무나 개인적이지만 너무나 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중년에 돌싱의 연애라니요. 무겁고 복잡한 사정들이 얽혀있어 마냥 낭만적인 것이 될수 없지요. 하지만 사랑을 하는 것은 가장 아름답고 용기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자신의 인생과 상대의 인생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구요.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소중합니다. 저는 힘들때마다 데미안을 읽습니다. 운명은 외부 요인이 아닌 자신의 선택과 그 선택을 충실하게 이어간다면 바뀔 수 있다는 헤르만 헤세의 메시지에서 늘 큰 위로를 받습니다. 내가 선택한 이 운명. 부디 놓치지 않기를, 서로의 선택을 충실하게 이어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이 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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