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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안 한 변명

등기부등본

by 언젠가

결혼 이후 20년간의 삶의 기억에서 몇 가지 뇌리에 박힌 기억들이 있는데 대부분 긍정적인 정서보다 부정적인 정서의 기억이다. 나는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아서 키우고 있고 당연히 이혼이 귀결일 것 같은 순간들을 지나왔다. 결혼이라는 이 계약을 파기하지 않고 있지만 늘 회의적이다.


결혼생활 동안 부정적인 기억이 뇌리에 남는 이유는 그 사건 그 기억들이 시댁과 남편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해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는 사실 접어야 옳다.


하지만 어떤 계약이든 계약이나 약정은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최대의 미덕이라고 알고 살아왔던 사람은 계약을 파기하고 유지해 오던 관계를 접는다는 사실 자체에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내가 먼저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라도 꾸역꾸역 지속해 왔다.



2018년 7월 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옷방에서 남편의 겨울 코트를 드라이 맞기기 위해 정리하던 중 코트 주머니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제3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은 서류를 발견한 지 딱 6개월 만에 나는 배우자 간 부담부 증여의 형식으로 우리 집 등기명의를 내 이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신용이 없던 남편이 집 한 칸 있는 걸로 제3 금융권 3곳에서 고리의 이자로 이리저리 땡겨쓴 대출금들을 하나로 모아서 내 직장의 신용으로 국민은행 아파트 담보 대출 생활안정 자금 2프로대 후반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 6개월 동안 남편은 회피의 달인답게 자신이 만들어놓은 엉망진창 상황에서 그저 피해서 손 놓고 있었고 시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동안 자산이 많다고 떵떵거리며 며느리에게 복종을 요구했던 시어머니도 나도 모르는 일이라며 회피하셨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저질러 놓은 상황들은 모른척하지만 며느리에게 명절노동의 도리는 강요하며 명절 노동을 거부하자 급기야 이혼하고 꺼지라는 막말을 퍼부었다.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나는 정말 시모의 말처럼 이혼하고 꺼졌어야 한다.

속으로는 백번도 더 무능하고 천지 분간 못하는 남편을 시모에게 돌려주고 꺼지고 싶었지만 내가 그 당시 당장 이혼을 하면 이미 빈껍질만 남은 수습 못할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고 이미 자기가 저질러 놓은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니 뜻대로 니 분부대로 하겠다며 생의 의지 마저 꺾여버린 사람과 이혼을 하면 아이들 부양에 대한 그 어떤 협의도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데 아직 돌봄이 필요한 둘째를 양육해 줄 대안을 구할 수 없다는 게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나는 그 지옥 속에 남기로 했다. 시모와 관계를 완전히 차단하고, 천지 분간 못하는 남편을 일으키고, 껍질만 남은 아파트라도 내 앞으로 돌려서 어떠냐 남들도 집 한 채 앉고 몇억씩 하는 대출금 40년간 분할 상환하는데 나도 평생 짊어지고 가면 되지 하고 단단히 결심했다. 그런 단단한 결심을 하는 데에는 친정엄마의 도움이 컸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 같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나에게 부담부증여를 알려주고 함께 법무사 사무실에 가주고 등기부 등본을 국민 은행에 넣을 때까지, 그리고 그 당시 남편이 진 빛이 총 3억 8천만 원이었는데 당시의 주택가격과 내 직장의 등급으로는 2억 6천만 원까지만 대출이 실행된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나머지 일억 이천만 원을 빌려주셔서 내 아파트를 건져준 것도 친정엄마였다.


물론 그런 일을 실행할 때 엄마는 계속 우셨다. 엄마는 그 큰 금액을 나에게 빌려주시며 이 금액을 빌려주는 대신 지금 너를 이혼시키고 애들 두고 너만 올라오라고 하고 싶다고 하셨지만 당신의 자식이 애들을 두고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애들이 아빠나 내 시댁 쪽 사람들과는 절대로 행복하고 올바르게 커 나갈 수 도 없다는 사실을 아셨다.


인생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 선택이 다 행복한 귀결을 맺지는 않는다. 남편을 선택하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타지로 이사를 결심하며 전업주부로 삶을 살아가려 한 것. 그 삶이 결국은 시어머니의 꼭두각시가 되는 삶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대단하다고 큰소리를 치며 남을 지배하고 조종하려는 사람일수록 사실은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 이제는 안다.


그때 내가 선택한 건 그냥 그 지옥 같은 상황을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고 이겨낸 것이다. 이혼이 선택지라면 그때, 시모 본인의 인생도 마음대로 안 흘러가면서 자기 자식들까지 주무르려다 그 또한 뜻대로 안 되는 회한을 폭발하듯 가장 약한 자라 여기던 며느리에게 흘려버리며 나에게 꺼지라고 폭언을 퍼부었을때 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선택은 하지 않았다. 나역시 분에 못이겨 이혼을 해버렸다면 그뒤에 아무런 합의나 계획없이 단절된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 아이들이 걱정이였다. 무엇보다 엉망이 된 현실 상황에 대한 수습은 커녕 나 역시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분노가 잠식했지만 분노에 잠식되어 버리지 않게 애썼다.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고 이겨내려 애썼다.


남편은 그 뒤로 시댁에 발길을 끊은 나에게 그 어떠한 요구도 하지 못했고, 명절에는 아이들만 왕래했으며 나는 그 뒤의 인생은 대출을 갚느라 최선을 다해나갔다. 그리고 2019년 2020년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집값이 치솟았다. 허무하게 날릴 집을 구했을 뿐만 그 아파트가 세배가까이 상승했고 자신을 버리지도 않고 가정을 지킨 부인에게 남편은 고맙다는 표현은 하고 산다. 그러나 나는 사실 그가 변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 이후에도 사는 동안 그와 나는 치열하게 다퉜고 대부분은 그가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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