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 담보 담보
10년 전 아파트를 샀을 때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는 사억이었다. 지금은 그 세배쯤 아파트가 올랐다. 부동산의 상승기 직전에 우리는 이 아파트를 팔게 될뻔했는데 그때 팔았으면 아마도 억울해서 화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당시에 출산에 임박해서 계약을 남편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당시 전세자금을 빼고 우리의 적금을 보태고 시모가 조금 도와주신다고 해서 감사하기로 했다. 그동안 어머님이 경상도 어른답게 며느리에게 가감 없이 말하던 것이나 소리를 지르며 호통치던 것들을 다 묻어두기로 했다.
집도 생기고 뱃속의 아기는 건강하고 출산하고 새집에서 이 아기를 키우며 행복할 생각만 하다 보니 그동안 왜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무색할 만큼 모든 게 좋았다.
큰애 두 돌 때 어렵게 재취업해서 우는 큰애를 어린이집에 던지고 출근해서 울며 엄마를 찾는 아이를 찾아 퇴근하면서 살아내 그래도 내 힘으로 내 집도 마련했구나 하는 뿌듯함에 이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둘째는 좀 내손으로 육아해 볼까 하는 욕심도 생겼다. 결혼후 칠 년간 맞벌이하며 집 사는데 보탰으니 나도 육아동지 엄마들과 브런치도 하고 엄마가 제일 늦었어하며 울며 뛰쳐나오는 아이 달래며 집에 와서 또 밥하고 설거지하고 내일을 준비하느라 지쳐잠드는 일상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결심이 무색하게 둘째가 두 돌도 되기 전에 우는 둘째 역시 어린이집에 던지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나 모르게 우리 아파트에 제3 금융권 세 곳에 담보를 걸려있고 그 이자를 상환을 못해서 집이 경매로 넘어가야 하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가장 큰 트라우마가 있는데 6년 전 이맘때 남편의 겨울 코트를 드라이 맞기느라 코트 안에 들어있던 담보대출 서류를 꺼내본 것과,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이해 안 가서 남편에게 전화해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따져 묻자 그 길로 남편이 퇴근을 안 하고 집을 나가 잠적한 그날 밤 일이었다.
남편은,,,, 인생의 모든 순간마다 최악의 선택을 한다. 회피. 중요한 결정은 어머님이 해주는 데로 따랐으며 결혼 이후 부인이 그 어머님의 결정에 순순히 따르지 못해 갈등이 생기자 갈등의 중재자가 아닌 회피를 선택했다. 어머님과 내가 갈등할 때 남편은 한 번도 그 누구의 편도 든 적이 없다. 나를 지켜주지도 않았고 그저 방관했다. 그리고 나 모르게 뒤로 일을 벌이다 그 일을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커진 순간에 그가 선택한 건 도망이었다.
남편이 잠적하자 나는 이 사실을 시부모에게 알렸다. 왜냐면 내 남편의 보스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시모는 어찌 된 사연인지 알 것 같아서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서다.
"어머님 아범이 집을 나가서 연락이 안 되요" 로 시작해서 우리 집이 우리 집이 나닌 2,3 금융권이 나눠 가진 집이 돼버렸다는 사실, 이거 상환 못하면 집이 경매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렸다 왜 이런 건지 혹시 아시냐 혹시 가게가 어려워서 그런 거냐.
시부모도 믿지 못했다. 시부모는 나를 공격했다. 한두 푼도 아닌 아파트 매매금액의 80프로 가까운 돈을 3 금융권에서 끌어다 썼을 때는 아들 혼자 벌인 일이 아니라 여겼다. 분명 그 자금이 나에게 흘러들었을 거라 나를 공격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친정언니를 통해 친정 엄마가 알게 되었는데 엄마는 그동안 내가 살아오고 갈등했던 그 모든 것이 짐작이 가고 사위 놈이 대충 파악이 가는지라 내 결심에 따라 도와주시겠다 했다. 이혼하고 새 출발 하겠다 해도 안 말릴 거고 이 갈등을 수습하고 믿고 살아보겠다 하면 수습하는 걸 최대한 돕겠다 했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에 비해 늘 약하고 조용했다. 상견례 때 우리 부모님께 시부가 큰소리치며 내가 그래도 U시에서는 방귀 쫌 뀌는 사람인데 귀한 딸 보내주면 돈걱정 없이 쓰며 살게 해 주겠다고 했을 때 아연실색하시며 이 결혼 말리고 싶다 했지만 결국엔 내 뜻 데로 해주셨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제일 침착하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나는 하루하루 말라가는 사이 아직 어린 아기 살고 있는 집이 넘어가 길거리에 나 앉게 될지도 모르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손 놓고 도망가 있고 시모는 모른 척 나는 모른다 하고 있을 때 엄마가 제안을 했다. 우리 아파트를 부담부 증여로 해서 대출까지 다 네가 떠 앉고 명의를 받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