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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안 한 변명

마지막 변명

by 언젠가

이제는 내 괴로움의 원인도 알고 결과도 겪어봤다. 생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던 시절 그 현실에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 상담심리 대학원 문을 두드리며 심리학의 기본 개념들을 공부했을 때 아들러의 심리학 입문을 읽었었다.

그때 경험하고 알게 된 현실 직면의 중요성과 경험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공감한다. 과거의 특정한 경험이 미래 인생을 위한 기초라고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의미는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 상황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기 쉬운 불완전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 불완전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지 불완전한 상황에서 잘못되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그것도 미래를 위한 기초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아들러가 말하는 직면이라는 것도 따라서 지금의 상황, 지금의 나, 지금의 처지와 기분과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직면하고 인정해야 앞으로 내가 변화하거나 상황이나 처지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나에게는 이 심리학의 이론들이 구원 같았다. 과거의 이상하고 복잡한 시부모와 자녀들의 역동에서 내가 원가족으로 선택한 남편은 벗어날 생각도 의지도 없었고, 나머지 시댁 자녀들도 거기서 벗어날 의지도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 세상에서 이상하다고 외치고 시모와의 관계를 벗어나려 하는 내가 그들은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직면할 줄 몰랐을지도 모르고 직면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생존이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모에서 벗어나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그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자식들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했던 시모가 오히려 노후를 자녀에게 의탁해야 할 만큼 급격히 약해지고 준비가 안된 상황에 놓이자 문제의 핵심이 뭔지 깨닫게 되었다.


남편과 결혼 이후 나는 이제 까지 자식의 인생을 쥐고 흔드려고 하는 시부모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나가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늘 누군가가 시키는 데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던 남편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결국 원인을 알게 되어서 현실을 직면했지만 누군가가 시키는 데로 삶을 살아가려고만 한다는 이유로 내 인생에서 남편을 도려내기엔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하고 많은 것을 일궈낸 사이가 돼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의 인생에 나는 제2의 시모가 돼야 하는 것일까? 그는 지시하는 데로 수행하는 게 더 편한 사람, 시키는 데로 사는 게 더 좋은 사람이기에 시모가 그러했듯이 모든 걸 지시하고 정해주고 내가 하라는 데로 해 하고 살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와 살면서 일일이 지시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방법을 제공하는 삶을 사는 게 힘들었다. 애 둘을 키우며 시부모에게 벗어나서 내 인생 하나 제대로 일으키기도 힘들다. 그가 어지러 놓은 상황들을 정리하기에도 에너지가 달리는데 , 누군가의 뒤에 서서 그의 눈치를 보는 게 편한 사람인 남편을 갑자기 망망대해로 떠밀어 스스로 돛을 올려서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보라고 격려 할 힘까지는 없었다.


육아와 가사와 일을 병행하며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의 등을 떠미는데도 커다란 에너지가 든다. 그런데 바람과 맞서 아예 방향을 틀어서 남편의 돛까지 펼쳐주기엔 나는 이제 힘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노력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해야 가능한 것이지 그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그에게도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하고 그 스스로가 하루라도 빨리 본인의 생은 본인이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것이니 누군가의 뒤에 붙어서 저절로 그냥 살아가게 되는게 아니라는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와 살아가며 더하기 빼기의 리스트를 정리했다.

빼기부터 해 보자면 , 그는 시모가 나를 공격할 때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를 믿고 직장과 친정과 멀어져 먼 타향까지 이사를 결심한 부인의 입장에선 인적 자원은 남편하나뿐이고 그 외 모든 사람이 시댁식구인 범주의 현실에서 부인부터 챙겨야 하는데 시모의 뒤에 서버렸다.


그리고 시모를 옹호하며 네가 시모 마음에 들어야 내가 시모에게 사업을 물려받을 수 있으니 내조라 여기고 내 엄마에게 잘하라며 압박했다. 시모를 보스로 모시며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막상 시모가 생각보다 빨리 사업을 물려주지 않자,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사업자 등록을 두 번을 내고 두 번 폐업 등록을 하고 시모의 연줄이나 도움 없이 새로운 직장에 취업했으나 이년만에 퇴사했다. 할 만큼 많은 시도를 했으나 막상 성공한 것이 없다. 그사이에 경제적인 어려움들은 부인과 시모와 장모가 노력해서 해결해 줬다.


취미 부자라고 할 만큼 많은 것들에 흥미가 있어서 많은 취미용품들을 사들이지만 막상 꾸준히 하는 것도 없고 운동을 하라고 하면 내가 시간이 어딨냐며 회피를 한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는 너무 많은 실패로 열등감이 쌓여버려서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라도 다른 이웃들의 이야기를 하면 비교를 한다고 화를 내버린다. 책을 주제로 대화로 나누기엔 그는 독서를 안 한다. 그와 나누는 말은 자녀들의 스케줄과 가사의 나눔 같은 간단한 것들에 한정돼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며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거나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사소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동반자가 필요하다. 생의 중장기 계획들을 세우며 함께 실현해 나갈 파트너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내 남편과는 그런 것들을 하나도 이룰 수 없다.


더하기 해보자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를 흐린 눈으로 바라봐준다면,

그는 주도적이고 센 엄마밑에서 약한 아들로 자라나 스스로 무언가를 해봐야 하는 시기, 깨지고 실패하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시기를 그냥 부모가 시키고 지시하는 삶으로 보내버렸다. 그리고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늙고 한풀 꺾여 애들 학원비를 벌어야 할 만큼의 에너지만 남아버렸다.

또 더하기를 해보자면 연애시절 그는 다정하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시대 같은 때에 한량으로 태어났으면 자기 인생을 아주 재밌고 충만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여러 가지 기교나 재주가 많다.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루고 요리도 수준급이다. 스스로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잘 살피고 분위기도 꽤 이끌어갈 줄 알아서 주변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리고 아이들도 이런 유쾌한 아빠의 모습을 좋아하고 잘 따른다.


화가 나고 억울하고 그와 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잘못이 아닌 것으로 내가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살아가는 게 물 한 모금 없이 작렬하는 태양아래의 모래사막에 내던져진 느낌이 들었을 때가 있다. 외롭고 슬프고 아파서 잠 못 들 때 그때 왜 내가 이런 고통을 겪지 싶었다. 나는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내 남편과 결혼한 것뿐이 없는데, 시모의 자식이자 내 남편이자 애들의 아빠인 그가 사막 한가운데서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그는 태평하게 코를 골면서 자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기가 막혀서 뒤통수를 때려서 깨우기도 했다. (물론 그는 아무리 때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꼴을 보기 싫어서 그와 수면 분리를 선언했다.) 이혼을 해야 하나 싶었던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을 지내고 보니 그와 이혼한다고 해도 문제 자체는 해결되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시집살이라는 사막, 무능하고 회피하는 남편을 견뎌내야 하는 사막을 건너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사막은 그와 결혼해서 건너게 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부터 그냥 그것이 내 인생이었던 것이다.

그냥 사막을 건너야 하는 게 내 인생의 숙제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던 이제는 그 뜨거운 곳들을 지나왔다. 지금의 나는 많은 것을 가졌다. 나를 괴롭히던 시부모는 이제는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할 에너지가 남지 않은 노인이 되셨다. 회피하던 남편은 나보다 먼저 그걸 알아차리고 내 뒤에 붙어버렸다. 아등바등해서 넘어갈 뻔한 집한칸 건져냈고 자식들이 잘 크고 있다.

남편과 결혼해서 시부모와 남편덕에 살려고 했던 계획자체가 아주 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스스로 살아야 하기에 애들을 키우며 기간제로 일하며 힘들게 힘들게 사수 끝에 그래도 어찌어찌 선별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어떤 인생이든지 쉬운 것 없고 어떤 사람이든지 내편은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내가 울어본 경험이 있어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손 내밀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속아 본 경험이 있어서 진짜 믿을 수 있는 아주 귀중한 몇 안 되는 귀인은 붙잡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어떤 상황에든지 남에게 기댄다는 생각 자체를 버렸다.


이 진리를 일단 남편에게 적용하자 그와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가 있든 없든 내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되자 인생이 충만하고 만족스러워졌다. 그리고 그와 헤어질까 말까 그를 내 인생에서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그 시간조차 아까워졌다.

내 생의 모든 순간순간들은 나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며 써도 모자라다. 그 범주안에는 내가 낳고 키운 자식의 안녕과 복지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시모가 낳은 자식의 안녕과 복지까지는 이젠 신경 써야 할 요소가 아니게 돼버렸다. 그랬더니 자유롭고 행복하고 충만하다. 이제부터의 내 진짜 생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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