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보편화 되기 전부터 나는 그것을 당했었다. 다행인건 지배적인 시부모에게 대항하며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삶을 살아가려고 내 힘을 키우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을 오래 당하면 시야가 좁하지고 판단이 사라지며 무력화 되버린다고 하는데, 그런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건 많은 양의 책을 읽고 내 감정이 어떤지를 늘 살피며 글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아파보니까 정말 힘들고 아프고 절망하는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있고 마음 속 깊이 공감하고 보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능력치는 내 직업에서 정말 중요한 능력이다.
내가 자라나며 나에게 누군가가 너를 지배하려 할때, 그것이 부모나 시부모라도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 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없었다.
나는 살아오며 어른들 말에 순종해야 하고 다수가 있을때 다수의 평화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 배워왔다. 따라서 예전의 나는 시월드 속에서 내가 희생해서 일을하고 참는 선택을 하면 모두가 평화롭고 분란없이 행복해 지고 모두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여겼었다.
지금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특히 여고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너의 행복이다 라고 진심으로 말해 줄 수 있다. 결혼을 통해 더 행복해지고 풍요로워지고 내가 더 성장 할 수 있다면 결혼을 해야 하지만 결혼으로 인해 나를 바꿔야 하고 내가 변해야 하고 내가 참아야 한다면 하지마라.
직장대신 결혼을 선택하는건 최악의 선택이고 그건 도피도 아니고 구원도 아니다. 나를 구원하고 나를 바꿀 존재는 오직 나 자신이다 라고 말 할 수 있다.
나를 바꾸고 나를 구원하려고 내가 했던 노력들은 사실 꽤 쓸모가 있다. 어떤 순간에도 내 자신을 1등으로 두는 선택을 할것. 타인의 감정보다 내 감정을 먼저 생각 할 것. 가족이라도 나에게 일방적인 희생이나 노동을 강요한다면 그 가족과 인연을 끊을것. 내가 나를 구원해야 하니 내가 똑똑해 지고 늘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록 항상 책을 읽고 사방에서 지혜를 구하고 현명한 사람과 좋은 인연을 구축할 것. 친정과 먼 타지에서 육아를 할때는 믿을 수 있을 만한 도움을 받을 인력이 많이 필요하니 현명하고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구축하되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영역에서는 먼저 남을 돕고 손내밀어 주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자질과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할것.
지금의 나는 코로나 시절 갑자기 원격 수업으로 진행되서 아이가 등원을 못하게 되도 기꺼이 둘째를 돌봐주러 와줄 친밀하고 믿음직한 친구들이 생겨났다.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건 내 진심을 다해 그들에게 다가 가서 내 마음 그대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때는 또 역시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수 있다. 지켜내려고 노력했던 내집을 지킬 수 있었고 이제는 나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라도 끊어낼 자신이 있다.
이 모든것이 내가 가장 믿어야 하고 기대야 하는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본 경험으로 뼈속까지 아파본 경험치를 통해 얻은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 먹어 봐야 하는 사람인데 그나마 다행인건 한번 똥을 경험하고 난 이후부터는 그나마 다시는 어리석은 선택은 안하게 된다는 것이다.
딱봐서는 모르고 직접경험을 해봐야 아는 사람이지만 아파보니 그래도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보인다는 것이다.그래서 아픈경험이라도 안해 본 것보다는 경험치를 쌓은 것으로 만족한다. 절망의 순간들도 많았지만 순간 순간 나는 나를 놓지 않고 희망의 쪽으로 밀어내는 힘이 있다. 산다는건 늘 나를 희망의 쪽으로 밀어내는 과정이다.
내 남편을 선택해서 내 남편과 결혼하며 생겨난 부수적인 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그 갈등속에서 늘 회피하고 도망치던 남편이 결국엔 원인이기에 그를 버리고 이혼하는게 정답 같아 보일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세상 살아내기 힘들고 애들을 키워내기 힘든데 나도 지혜롭고 다 큰 성인 남성, 즉 어른과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내 어깨를 누르는 이 짐들을 멀리 볼 수 있는 사람과 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스위첸 광고를 보면서 아이를 키우며 한집에서 살아나가는 건 티격 태격 할 때도 있지만 서로가 동지가 되서 아주 사소한 무게도 같이 들고 사소한 기쁨도 같이 누리는건데 나는 그런 일상을 살지 못하는 구나 하고 현타가 와서 슬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괜찮다. 이제는 정말 괜찮다. 다 큰 성인 남성이 없어도 된다. 나 혼자 다 해낼 수 있다. 내 인생인데 왜 짐을 나눠야 하고 어른에게 기대야 하나? 나는 이미 완성된 어른이다.
내 남편은 사실 내가 지난 모든 일들을 겪고 많은 것들을 이뤄내고 지켜낸 순간순간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회피하고 눈치보다 지금은 내가 지시하는 일들만 수행하는 일상을 산다.
예를 들면, 오늘 몇시까지 분리수거해놔, 오늘 둘째 영어학원 보강있는 날이라 보강 챙겨서 픽업해야해 라든가 간단한 지시는 수행하지만 그와 긴 계획은 짜지 못한다.
내가 일을 하다 어려움을 겪을때 술한잔 나누며 울분을 토로할 사람이 남편이 아니다. 그 사실이 슬프지만 홀가분 하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 그에게 사는 이야기를 시도하면 결국엔 누군가가 기분이 상해서 싸움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내 인생에서 끊어내지 않는건 그런 모든 것들이 이제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슬픔을 혼자 극복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토로할 만큼 큰 화가 쌓이는 일도 없다. 둘째가 많이 커서 육아에 쏟는 에너지가 줄어들어서 이제는 아빠가 꼭 필요한 순간도 없다. 사실 남편이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고 살아가는데 에너지를 쓸일이 점점 줄어든다.
결국 남편과의 관계는 나는 혼자서도 괜찮지만 이젠 니가 있으나 없으나 내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 이상 너를 끊어내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일상이 안정되고 많은것을 구축하고 나니 내가 만들어 놓은 성을 당신이 부숴버리지만 않는다면 이 성안에서 쫒아내 버리지는 않겠다. 결심하게되었다.
이혼을 안한 변명은 사실 이제는 이혼이 필요없게 되었다는 대답으로 대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