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이야기

신도시 땅이 주는 힘

by 언젠가

"네 아빠 땅이 이리 넓은데, 네가 왜 그렇게 애쓰면서 아등바등 하니? 네가 왜 자금을 조달하고 세입자 제때 못 구할 걱정하고 세금을 뚜드려 맞을 걸 걱정하며 사냐? 너 안 그래도 된다. 그만 애쓰고 맘 편히 살아라 예뻤던 내 딸이 너무 시들어 가는 거 이젠 보기 싫다"


어느 날 엄마가 놀라운 고백을 하기 전까지 나는 아빠 땅의 존재를 몰랐다. 아빠 소유의 농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그건 정말 사막의 신기루라 여겼다. 왜냐면 나는 땅을 가진 사람은 자산가라 생각했는데 우리는 자산가처럼 살지 않았다. 아빠가 자산가라는 걸 인정하기엔 아빠 엄마는 내가 아는 자산가의 모습과 달랐다.



친정 부모님은 몇 해 전 그 구역이 모두 개발을 위해 철거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사하기 전까지 겨울이면 보일러가 동파하고 여름이면 비가 세는 곳에서 거주하셨다.


엄마는 결혼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삼 남매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셨고 보통 직장인들이 정년퇴직하는 나이를 훌쩍 넘기고 나서야 일을 손에서 내려놓으셨다. 아빠는 아직도 안 쓰는 불이 켜져 있는 걸 못 보시고 한여름에도 선풍기 앞에서 가만있으면 안 덥다며 에어컨 트는 걸 꺼리신다.



엄마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건 내가 영끌까지 해가며 힘들게 이주택자가 되었다는 걸 제일 먼저 엄마에게 알렸을 때였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소비하며 쓸 줄 아는 남편과 시부모를 만나서 친정과 먼 도시로 이사 갔다. 결혼을 하며 친정을 떠날 땐 시댁이 부자라서 나도 부자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시부모님은 자녀들에게 참고 노력하기를 가르치기보다는 참지 말고 살아라. 즐기면서 살아라, 쓰면서 살아라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잘하면 내가 알아서 너희들 잘 먹고 잘살게 해 줄게 나한테만 잘해라 하고 호방하게 큰소리 치실줄 아는 분이셨다. 몸소 그 삶을 실천하셔서 많은 걸 이루셨지만 전부 소비하고 소진하셨다.


결혼해서 애들을 키우며 살다가 내 남편이 나모르게 2,3 금융권에서 마구잡이로 아파트를 잡혀 고리의 돈을 빌려 쓰고 원금에 감당하지 못할 이자들이 늘어나 집이 넘어갈 판이되서야 그 사실을 알아냈다. 남편은 그 당시 시부모의 부를 믿고 그렇게 집을 잡혀 돈을 빼 쓰는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 당시 시부모님은 둘째네에게 건물 하나를 팔아 증여해주셨기에 남편은 자기에게도 그런 혜택이 돌아올 줄 믿고 있었고, 부인 모르게 아파트에서 대출을 끌어다 써도 또 부인 모르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고백했다.

정말 그당시 우리 시부모님은 내 기준에서 볼 땐 저레도 되나 싶을 정도로 소비하고 사셨기에 나 역시 그분들이 굉장한 자산가일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동안 떵떵거리던 시부모님은 모른 척하며 도움을 거절하시고 오히려 남편이 그렇게 하도록 네가 부추긴 거 아니냐며 내 탓을 했다.

그때 껍데기만 남은 아파트를 팔고 대출을 제하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전세나 월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 얼마 남지 않는 돈을 갈라서 이혼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나에게 부부간 부담부 증여의 선택지를 알려준 건 엄마였다. 경단녀였던 나를 다시 일하게 해서 그 대출이 가득 있는 집을 증여받아 내 명의로 하자 내 직장신용등급으로는 1 금융권의 2프로 초반으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었다. 이자가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정리되자 다시 숨을 고르고 살아가며 그 집을 지켜냈다.



딸의 부동산을 지켜주려는 엄마의 노력 덕분인지 우리 동네 최대 대장주였던 그 아파트는 부동산 상승기 때 어마어마하게 상승했다. 그때 그 집을 못 지켰다면 나는 화병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상심했을 걸 생각하면 너무 미안해서 나는 또 악착같이 살아냈다. 엄마는 내가 부잣집에 시집가서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할 당시 엄마의 오랜 친구인 H 이모는 의사 사위를 얻었는데 H 이모에게 의사 사위란 단순히 딸의 남편이 아닌 평생을 열심히 쫀쫀히 살아온 자기 인생에 대한 보답이자, 구원자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엄마를 만날 때마다 사위 자랑을 했었다. 엄마는 그 이모만 만나고 들어오면 상심하셨고 나에게 그 화를 풀어냈다. 나는, 엄마 우리 시부모님들은 자산가야. 그 도시에서 제일 부자시래. 그러니 내가 그 집 딸보다 부잣집에 시집가서 의사사위 부럽지 않게 잘 살게요 하고 엄마를 위로했었다.


그리고 결혼해서 엄마를 떠났다. 사실 결혼하자마자 결혼 전까지 내가 스스로 이뤄냈던 것보다 더 대단한 걸 가질 수 있다고 여기고 내 결정이 아닌 시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시댁이 있는 도시로 이사해서 시부모님이 이룬 걸 물려받으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며느리를 내 아들의 부인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시부모가 얼마나 되겠냐 하며 나를 속이고 타협했다. 돈으로 며느리를 부리려고 하는 시어머니를 적당히 맞춰드리며 어머님이 사주시는 멋진 코트나 얻어 입고 살아가자 하고 포기하며 살아갔다. 그러다 내 남편은 부모님이 시키는 데로 만 살아서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고 아들을 이리저리 쥐고 흔들었던 시부모님도 알고 보니 아무 힘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순간, 나는 그럼 어쩌겠냐 내가 힘을 내야지 하고 힘을 냈다.

그리고 부동산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부동산을 공부했다. 돈이 생기면 어떻게든 모아서 갭 투자를 하려고 이리저리 노력했다. 몇 년 뒤에는 전세를 끼긴 했지만 작은 아파트 등기를 하나 더 칠 수 있었기에 그토록 바라던 이주택자가 되었다. 내 아파트가 넘어갈 뻔 한 기억이 너무 무서워서 나는 부동산에 더더욱 집착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제일 먼저 이사실을 알려주고

"그동안 실망시켜서 미안해. 그런데 나도 이렇게 노력해서 또 무너지지 않고 이뤄냈다? 장하지? "

하며 엄마에게 그동안 보였던 면구한 모습을 좀 씻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엄마는 그래 애썼다, 장하다는 반응보다는 또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내놓았던 것이다.


"너는 이제 그렇게 까지 동동거리며 애쓰지 않아도 된다 너에겐 네 아빠의 땅이 있단다 니 작은 아파트 하나 더 지키려고 세금이며 세입자 구하는 거며 신경 쓰느라 늙지마라 "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말은 그 어떤 구원이 되었다. 그곳에 땅이 있다고? 오랜 시간 퇴적되어 온 비옥한 퇴적지에 벼를 키워내는 땅이 어딘지 모르지만 존재하고 있고, 사실은 주변이 전부 신도시로 개발되는 바람에 꽤 가치가 있는 땅이 되었다고? 나는 언니한테 엄마와의 통화 내용을 알렸다. 언니는 아빠에게 땅이 많은 거 알고 있었어? 우리 아빠 진짜 부자였어? 하고 물어봤다. 언니에게 들을 대답은 더욱더 내 이마를 탁 치게 했다.


"아빠는 대지의 주인공처럼 땅을 사랑해. 아빠에게 땅은 팔아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 믿음이야. 엄마랑 아빠가 그리고 우리 삼 형제가 살아온 걸 돌아봐.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얼마나 억척같이 노력했는지. 자식 낳고 살아보니 쉽지 않았지만 그 힘든 순간마다, 넘어지고 좌절하는 순간마다 그 땅의 존재만으로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니. 아빠에게 땅은 그런 거야. 엄마도 그걸 알고. 그래서 가치가 오른다고 함부로 팔아서 현금화해서 좀 편안히 살고 싶고 자식들도 나눠주잔 소리 못하시잖아"


김포는 시골이었는데 신도시로 확장되었다. 아빠와 어울리던 원주민 지인들은 그 과정에서 택지가 개발지로 수용돼서 자산가가 되셨다. 아빠의 땅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발되지 않고 그냥 그곳에서 조용히 쌀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김포가 서울로 편입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일찌감치 개발지로 땅을 내놨던 원주민들은 아이고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아마도, 김포가 서울로 편입되든 제주도로 편입되든 그 사실은 김포 부모님께는 별다른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다. 김포 부모님들은 그 땅에다 스타필드를 짓겠다고 해도 그게 뭔지 몰라도 우리에겐 별로 필요가 없으니 내놓지 않겠다고 하실 거다. 이 사실은 돌아보니 우리 삼 형제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 시댁의 경우를 보니 자리잡지 못하고 부모의 자산에만 기대게 키워진 자식들은 노후의 가장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우리 동서는 끊임없이 건물을 물려달라고 시어머니에게 기댔다. 건물을 받자 그걸 아름다운 것들과 바꿔 다 써버리고는 그다음엔 시아버지의 땅을 달라고 졸랐었다. 돈을 스스로 벌어보지 않아 그 버는 어려움과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이 부모의 돈을 쉽게 쓰기 시작하면 건물이고 땅이고 남아나지 않는다는 걸 목격했다.


내 형제들은 다행히 다들 알아서 일어나 자기 노후 정도는 챙길 수 있을 만큼은 된다. 아빠의 땅을 엿 바꿔 먹을 만큼 어리석지도 않고 무엇보다 엿이 먹고 싶으면 그 정도는 살 수 있을 만큼 자리 잡았다. 정용진이 와서 아빠의 땅을 스타필드와 바꿔줄게 한다면 음, 생각해 볼게요. 왜냐하면 저희에게 땅이란 부동산이 아닌 대지 그 자체거든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 테라의 붉은 흙을 움켜쥐듯, 움켜쥐고는 펄벅의 대지의 주인공이 "우리들은 땅을 파먹고 살아왔어 그리고 또다시 땅속으로 돌아가야 해 너희들도 땅만 가지면 살 수 있어. 누구라도 땅만은 빼앗을 수 없어" 외치듯이 외칠 것이다.


그러므로 언니 말이 맞다. 서울 시민 되는것은 중요하지 않다. 토템처럼 신념처럼 그저 그게 거기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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