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4
아, 나, 뭐 이렇게 사냐?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르지만, 인생 꼬이는 것도 다 그럴 만해서 그럴 터, 살아내다보면 답이 보일지도. p.24
아침부터 "씩씩하게 잘 다녀오라"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첫 출근을 했다. 이번엔 여의도 직장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대리님, 과장님, 선배, 팀장님 같은 것들을 지나 차장님이 되었다. 직급 같은 것이 없는 적도 많았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일을 하면서 먹고는 살아왔다. 나는 일을 안 하고 살 수만 있다면 최고라고 생각하며 대충 해온 편인데 - 아무래도 이번 생에 그건 힘들 것 같고 - 정말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낼모레 마흔인데도 회사에 처음 가는 애처럼 아빠한테 응원을 받고 있자니 몹시 쑥스럽고 민망하기도 해서 같이 크게 웃어버렸다.
알라딘에서 책 제목만 봤을 때는 아니 요즘 같은 때에 그런 말을 위로랍시고 하느냐고 오히려 더 화가 날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나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겠지. 무슨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헛소리냐며... -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황인숙 선생님의 산문집이잖아? 그렇담 무조건 장바구니에 넣어야지.
모두가 힘든 나날이라서, 불안하고 근심 걱정 가득한 세상이라서,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더 예민하게 되고 조심스럽다. 서로에게 위로 같은 것을 바라기도 힘겨운 기분. 그런데도 황인숙 선생님의 글 곳곳에서 위로를 받는다. 고양이들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잘 모르는 이웃들에게조차도 한없이 따뜻한 저 말 한마디가, 다정하기만 한 그 마음이, 사라질지언정 파괴할 수는 없을 소중하고 아름다운 영혼이. 그녀의 말과 마음과 영혼과 삶은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쁘고 깔끔하고 세련되고 잘 정돈된 종류의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주 멀다. 그런데도. 아니, 그래서. 그래도.
그래도 좋은 일이 아주 없는 건 아니잖아? 당장 생각나는 건 없다만……. 만사를 잊고 자야지. 내일 깨서 생각해야지. 잠이 보약이다.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친구들이여, 만사를 잊고 주무세요. 부디 좋은 꿈을 꾸세요.
좋은 꿈만 꾸면 좋겠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 꿈도 골라 꿀 수 없다. 그저 아주 나쁜 꿈을 안 꾸면 다행이라 생각하는 게 이롭다. 그런데 또 어떤 꿈이든 꿈을 꾸는 건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한다. 악몽이나 흉몽도 그렇게 꿈으로 꾸어야 머리와 가슴에 맺히고 뭉친 것이 풀린다고 한다. 번번한 악몽 때문에 잠들기가 무서운 사람에게 힘이 될 말이다. p.24.
모두들. 부디,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