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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2. 공무원 출신

공무원 출신

by 김카잇

“태형아, 공무원 시험 한 번 준비해 보면 어떻노?” 취업을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아빠는 공무원 시험 얘기를 수도 없이 꺼냈다. 그 와중에 9급은 안 된다, 7급 시험을 보라고 했다. 아빠는 아직도 내 공부머리가 좋다는 착각을 하고 있나 보다. 9급은 아깝다 생각하는 걸 보면. 근데 나는 9급이고, 7급이고, 5급이고 공무원이 될 생각은 죽어도 없다.


초등학생 시절, 내 장래희망은 공무원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면 판검사. 내가 정한 장래희망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주는 가정환경조사서에는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희망을 적는 란이 있었는데, 아빠는 내 생각도 묻지 않고 두 칸 다 ‘판검사’라고 적었다. 아빠가 정한 장래희망이었지만, 아빠만 좋다면 판검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나는 죽어도 공무원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생 때, 집이 많이 힘들어졌을 때였다. 마산에서도 촌구석인 덕동이라는 동네에 살던 때였다. 그때 아빠가 정말 돈이 없나 의심이 들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빠가 택시를 타려할 때였다. 우리 용돈 줄 돈은 없다면서, 택시를 애용하는 아빠의 경제관념은 동생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빠에게 “아빠, 그냥 버스 타자!” 할 때가 많았으니까. 그때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택시를 타기 싫은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당시 택시 시외 할증 요금제가 막 도입되었는데, 많은 택시 기사님들이 덕동 입구에서 시외할증 버튼을 누르셨다. 우리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덕동은 시외가 아니며, 당연히 시외할증대상지역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사님이 반박이라도 하면, 대화는 실랑이가 되었다. 아빠는 손님으로서 정당한 지적을 한 거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돈도 없다면서 택시를 타고, 몇 백 원 더 나오는 할증요금 때문에 기사님과 싸우는 아빠가 못마땅했다. “제가 공무원이라서 잘 아는데...”라는 말이 나오면. 내가 나서서 아빠를 말렸다. 아마 그때부터 공무원이 싫어졌던 것 같다.


사실 월급도 수당도 따박따박 나와. 공무원 연금으로 노후 걱정도 덜해. 공무원은 분명 좋은 직업이다. 그러나 퇴직금과 공무원 연금을 빚 갚는데 다 써버린 아빠에게, 오랜 공무원 생활 끝에 남은 거라곤 없었다. 경험, 지식, 자존심 따위만 남았을까. 아빠는 퇴직 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때 아빠는 50대 초중반,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해야했고, 학업과 병행하며 번 돈을 아빠에게도 보내줘야 했다. 너무 버거워서 용돈이나 벌게 경비 일이라도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아빠는 공무원을 했던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고 했다. 공무원이 뭐길래.


그렇게 자식들의 용돈으로만 살아가던 아빠는 몇 년 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오랜 공무원 생활 덕분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빠. 그런 아빠가 공무원의 모든 장점을 끌어 모아 나열하며 공무원 시험을 쳐보라 해도 아빠의 말에 어떤 설득력이 있을까. 나는 다시 태어나도 공무원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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