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강한 자존심은 거짓말을 만들어냈다. 가짜 자부심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자식들 모두 대기업에서 일한다는 거짓말이 있다. 아빠 친구들을 만나면 “니 삼성 댕긴다매?” 하는 질문을 받는다. 정말 당황스럽다. 그런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 다그치면 “그 정도 거짓말은 괜찮다.” 한다. 이 사회가 거짓말 없이 유지될 수 없다지만, 괜찮은 거짓말이 있을까.
어떤 거짓말은 정말 괜찮지 않은 거짓말이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가 할머니도 홧김에 큰아버지 댁으로 보냈던 적이 있다. 집에서 밥을 차려줄 사람이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 끼니를 식당에서 사 먹어야했다. 문제는 아빠가 돈이 없었다. 한창 잘 먹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 한 번 하면 몇 만원이 드는데, 매 끼니를 그러기엔 그 어떤 부모님이라도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빠의 방법은 이랬다.
식당 하나를 골라, 며칠 동안 그 식당만 간다. 몇 번 가고 나면 사장님께 말도 걸며 친해진다. 친분이 쌓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외상을 시작한다. 지갑을 두고 왔다, 급하게 돈 쓸 데가 있어 현금이 없다, 월급날 한꺼번에 드리겠다 등등. 외상값이 제법 커지고, 사장님께서 독촉을 하기 시작하면 그 식당에 더 이상 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식당에서 위 과정을 반복한다, 외상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사장님들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신다면 나중에 한 번씩 찾아가려 한다. 아빠가 했던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다.
아빠의 거짓말이 향하는 곳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빠는 늘 약속을 어겼다. 급식비 내일 줄게. 수학여행은 꼭 보내줄게. 졸업앨범 살 돈 줄게. 약속은 아빠가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이었다. 어떤 건 할머니가 어디선가 빌린 돈으로 해결하고, 어떤 건 학교에서 지원을 해줬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은 담임선생님께서 구매해주셨다. 아버지로서 정말 해주고 싶었지만 여건이 안 되었던 거라 믿고 싶었지만, 그 믿음마저 깨진 날이 있었다.
나의 고등학교, 동생의 중학교 입학식 전날이었다. 입학식 한 달 전부터 아빠는 “내일은 꼭 교복 사러 가자.” 하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입학식 전날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또 할머니가 나서야 했다. 어디선가 돈을 빌려오셨다. 그래도 학교는 다닐 수 있겠구나 안심했다. 잠깐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니 동생이 울고 있었다. 아빠가 교복 살 돈을 가지고 나갔다는 것이다. 나도 눈물이 났지만 이를 악 물고 참았다. 우리를 번갈아 보던 할머니는 그 굽은 허리를 이끌고 다시 한 번 돈을 구하러 나가셨다. 결국 교복은 샀지만, 그 날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자식들 교복 살 돈으로 노름을 하러간 사람을 아버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어느새 일흔을 앞두고 있는 아빠는 지금도 거짓말을 한다. 주로 과거에 대한 부정이다. 아빠가 우리 가족에게 했던 못난 행동들을 이야기하면, “내가 언제?” 한다. 거짓말인지, 정말 잊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거짓말이라도, 잊어버린 거라도 서운하다. 우리는 그냥 미안하다는 말, 남은 생에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면 되는데. 적반하장으로 우리가 자식 노릇을 못하고 있다며 큰 소리를 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아빠에 대한 우리의 원망은 아니 땐 굴뚝에 난 연기 같은 것이 아니다. 거짓말로 덮을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니 이 글들도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