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4. 아름답지 않은 사랑

by 김카잇

“아빠는 할만치 했다. 느그 엄마를 원망해라!” 아빠에 대한 원망을 쏟아낼 때면,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모든 나쁜 일들을 엄마의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아빠는 여러 힘든 여건 속에서도 혼자서, 최선을 다해 우리 삼 남매를 먹여 살렸다고 주장한다. 엄마는 새로운 남자도 만나는 거 같다면서, 아빠는 우리를 위해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서 늙어왔다고 한탄한다. 그럴 때마다 쏟아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꾹 참는다. 재혼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뿐 아빠는 여자 문제로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다.


불 꺼진 방. 사촌동생과 동생이 소곤소곤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야, 너희 엄마 왔다.” 사촌동생이 동생에게 말했다. 엄마가 왔다고? 살짝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울고 있는 성인 여자 목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큰아버지가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초등 저학년이었던 동생들과는 달리 고학년이었던 나는 거실에서 들리는 대화를 들으며, 울고 있는 여자가 우리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동생들에게 우리 엄마 아니니까 그만 자라고 말하고 나도 잠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여자는 우리 형 친구의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도 당연히 좋은 분이 있다면 만나도 된다. 그러나 형 친구의 부모님은 이혼하거나 떨어져 사는 사이가 아니었다. 형 친구 어머니와 아빠는 불륜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그 얘기를 해준 형의 표정은 매우 일그러져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친구를 다시 한번 마주한 것처럼.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또 다른 여자분과 가까이 지냈다. 동생은 아직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아줌마를 만날 때 아빠는 종종 동생을 데리고 나갔다. 아빠가 동생을 두고 일을 보러 가야 할 때 그 아줌마 집에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 아줌마한테도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내 동생보다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아줌마도 내 동생을 이뻐라 했고, 그 아이와도 또래라 친하게 지냈던 걸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동생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 아줌마 집은 노름하는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었고, 내 동생은 그런 곳에서 모르는 아저씨들과 아빠가 노름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아줌마 딸이 동생을 무시했고, 그 아줌마도 동생을 괴롭혔다는 것이다. 그 괴롭힘에는 신체적인 폭력도 있었다 했다. 그 아줌마와 아빠는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남자친구의 딸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런 일들이 내 동생에게 있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났다. 아빠는 동생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까? 안다면 동생이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을 이해 못 하지 않겠지. 모르니까 그러겠지.


엄마는 집을 나간 이유에 아빠의 바람기도 있었다고 했다. 아빠는 과연 집 나간 엄마를 원망할 자격이 있을까.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식들을 향해 소리칠 자격이 있을까. 젊은 날 뜨거웠던 아빠의 사랑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얼마나 검게 태웠는지 안다면, 아빠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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