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지금도 술만 마시면 변한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나를 찾아와 해코지하겠다고 협박한다. 혼자 서울까지 오지도 못할 거면서. 술에서 깨면 잊은 건지, 잊은 척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전화를 건다. 지금은 늙고 힘없는 아빠의 화도, 욕도, 협박도 무섭지 않지만, 어릴 때는 달랐다.
하굣길, 집 도착까지 300m 전. 슈퍼 앞을 지날 때쯤이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린다. 분노에 찬 그 목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집에 들어서는 골목 옆 교회 건물 앞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와장창 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집으로 간다. 엎어진 밥상.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에 앉아있는 할머니.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아빠.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 동생. 잦은 이사로 배경만 바뀔 뿐, 학창 시절 내내 반복되는 장면이었다. 우리 가족이 찜질방에서 지냈을 때만 빼고.
아빠가 그럴 때마다 나는 자리를 피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있거나, 집에서 나와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혼자서 생각했다. 대체 무엇이 아빠를 그렇게까지 분노하게 만들고, 폭력까지 휘두르게 만드는 걸까. 처음에는 엄마였다가, 나중에는 할머니였다가. 지금은 우리를 향해 있는 욕설과 손찌검으로 아빠는 무엇을 해소하거나 얻어내고 싶은 걸까. 세상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만 가족 앞에서만 유독 돌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0년 넘게 아빠 아들로 살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아빠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마저 포기했다. 형이 군대를 다녀왔을 때, 내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할머니를 구박했다. “그만 좀 해라! 좀!” 형은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어디 아빠한테 소리를 치냐면서 온몸이 벌게진 채로 형을 나무랐다. 평생을 참아온 형은 그날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빠는 분이 도저히 풀리지 않는지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꺼내왔다. 형은 칼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 부엌에서 거실로 나오는 길을 막았고, 아빠는 문에 부딪혀 멈칫했다.
그러고 어떻게 됐는지 기억은 안 난다. 생각했던 것만큼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식칼에 백 번이고 찔린 것처럼 마음을 다쳤다. 흰색 메리야스에 트렁크 팬티. 손에 식칼을 꼭 쥐고 형을 향해 걸어오던 그 남자가 그 누구도 아닌 우리 ‘아빠’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너무나 힘들었다. 나에게 아빠란 더 이상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해할 수 있고 그래서 맞서 싸워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가출을 했다가 잡혀온 동생을 혼낸다고 집어든 다리미판을 발로 밟아 부서뜨린 날도, 할머니를 괴롭히는 아빠에게 소리치고 뺨을 맞고 아빠를 밀어 넘어트린 날도, 지금 가면 너희 학교 찾아가서 온갖 망신을 줄 거라면서, 내 다리를 꼭 잡고 놓아주지 않던 아빠를 뿌리치고 기숙사로 돌아왔던 그날도 아주 작은 죄책감만 들었을 뿐, 아빠와 맞서 싸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