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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6. 다락방에 숨어 사는 사람

by 김카잇

언젠가부터 우리 집은 형광등을 켜지 않았다. 가구나 가전제품에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TV를 켜는 것도 낮에만 가능했고, 음량도 들릴락 말락 하게끔 낮춰야 했다. 며칠에 한 번 꼴로 모르는 아저씨들이 찾아왔다. 문을 쾅쾅 두드리는 아저씨들. 어떤 날은 할머니가 나가 “우리 아들 없습니다.” 했고, 어떤 날은 내가 나가 “우리 아빠 안 계셔요.” 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할머니도 나도 동생도 집에 없는 척했다.


아저씨들이 찾아온 날, 아빠는 집에 있었다. 큰방 벽에 작은 나무문으로 들어가면 있는 다락방. 아빠는 거기 있었다.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리면, 다락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크고 무거운 나무 사다리도 함께 숨었다. 식사할 때가 되면,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고 작은 밥상을 다락방으로 넣어주셨다. 아빠는 화장실을 갈 때나 가끔 다락방에서 나왔다. 당당하면 안 되는 순간까지도 당당했던 아빠는 더 이상 없었다.


죽은 듯이 지내던 아빠가 당당함, 아니 뻔뻔함을 찾은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빚쟁이들과 마주했을 때였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아빠는 집에 찾아온 빚쟁이들과 마주쳤다. 아빠는 죽어도 돈이 없다며 빚쟁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드러누웠으며, 급기야 경찰을 불렀다. 경찰들이 찾아왔을 때 나는 다락방에라도 숨고 싶었다. 왜냐하면, 찾아온 경찰 중 한 명이 내가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 아이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 아저씨는 나를 몰랐겠지만, 그 여자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다정한 아빠였던 아저씨의 얼굴을 나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계속 소리를 지르는 우리 아빠와 차분히 상황을 정리하는 그 아저씨. 방문 뒤에 숨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버렸다.


성인이 된 후, 그 여자 아이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아빠와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피드글에는 ‘자랑스럽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글을 보는데 내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 때가 떠올랐다. 그 친구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였는데, 늘 밝고 당당한 친구였다. 그 친구가 아버지에 대해 한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태형아, 우리 아빠는 있다이가. 경제적으로는 빵점짜리 아빠였거든. 근데 그 외에 모든 것에서는 백 점짜리 아빠였다.”


나도 우리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싶지만, 모든 분야에서 빵점짜리라도 한 분야에서만큼은 백 점짜리였다며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이제 기대도 않는다. 아빠가 부끄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거짓말, 자존심, 뻔뻔함, 무능력, 바람기, 협박, 술주정, 그 많은 것들 중 하나라도 아버지로서 부족했다며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면 좋겠다. 내 마음속 다락방에 꽁꽁 숨겨둔 부끄러운 아빠를 자랑스럽게 세상에 꺼내 보이는 그 순간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아빠의 작은 용기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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