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의 나이는 어느새 일흔을 앞두고 있고, 나는 삼십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과거 자신이 자식들에게 했던 만행에 대한 기억은 뭉개버리고, 자식 셋을 혼자서 키워냈는데 자식들이 아버지 대우를 안 해준다며 늘 화가 가득한 아빠. 과거가 어떻든 지난 일이고, 늙고 힘없는 아버지를 보살피는 건 당연한 자식의 도리일 텐데 아빠에게 받은 건 아무것도 없다며 불효가 일상, 효도는 아주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나. 우리는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세월이 흘러도 서로의 입장을 모른다. 아빠는 삼십 중반이면 돈 모아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살 나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아빠도 그랬다. 그러나 나는 아직 아버지는커녕 남편도 되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아빠 마음을 좀 알까 싶지만 결혼, 출산 같은 단어만 생각해도 막막하다. 처음에는 시대가 변했고, 요즘은 다들 결혼을 늦게 한다는 말로 아빠를 설득했지만, 몇 년째 이어지는 잔소리에 내 생각도, 말도 날카로워졌다. “아빠가 있는데 언제 돈 모으고, 언제 결혼을 하냐고!” 아빠가 우리한테 숨겨왔던 100만 원가량의 빚을 갚아준 뒤였다. 이제 학자금 대출을 갚고 돈을 좀 모아볼까 하는데 아빠의 과거를 수습하기 위해 또 돈을 써야 했다.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아빠와의 인연을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을 덜 하는 건 원망하는 마음이 줄었기 때문은 아니다. 내 생각에는 연민의 마음이 더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날 우러러봤던 키도 크고 건장한 아버지의 뒷모습은 이제 없고, 거북목, 굽어가는 허리, 삐쩍 마른 몸, 손에 들린 지팡이, 아프다는 푸념. 그런 것들만 남아있다.
할머니가 약에 너무 의존한다고 약을 못 먹게 막던 아빠는 지금 하루에 약을 열몇 알씩 먹으며 산다.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며 특별히 아픈 게 아니니 병원에는 안 가도 된다고 하던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병원비를 좀 보내 달라 한다. 아빠가 원망스럽기는 해도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 하기에 시간을 내서 병원도 모시고 가고 병원비를 보내드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를 처음 병원에 모시고 간 날, 의사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던 그때의 분노가 떠오른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처럼 아빠를 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형은 아빠가 오래 살 것 같다며 무섭다 한다. 아빠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 한다. 나는 잘 모르겠다. 아빠가 하루하루 더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기분이 들까. 아빠의 영정사진 앞에서, 염을 하고 누워있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아빠에 대한 글을 쓰면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이 좀 정리될 줄 알았는데, 아빠의 시간이 멈추고, 내 시간이 멈추는 날이 와도 어쩌면 완벽히 정리할 수 없는 마음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