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머니 노력 덕분에 힘든 학창 시절을 잘 보냈다. 그리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듣고 “아이고, 장하다!” 하시며 기뻐하던 할머니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부산에 있는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대학 신입생들처럼 신나는 새내기 시절을 보냈다.
내가 집을 벗어나 신나게 노는 동안, 동생과 할머니는 여전히 지옥에 있었다. 오빠들이 출가하고 그 누구도 본인을 지켜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동생은 틈만 나면 가출을 시도했다. 잡혀오면 또 가출하고. 다음에는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친구들에게 거짓말도 시키며 숨어 사는 법을 터득해 갔다. 그러나 살면서 쓸 수 있는 온 힘을 자식손주들 먹여 살리는 데 써버린 할머니는 아빠에게서 벗어날 힘도 의지도 없었다. 할머니와 큰아버지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노리고 대구 집으로 눌러앉아버린 아빠. 큰아버지까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악마와 단둘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더 빨리 늙어가는 것 같았다. 주름은 깊어졌고, 허리는 더 고꾸라졌고, 팔다리는 말라갔고, 움직임은 굼떠졌다. 내가 군대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할머니의 세월은 배로 흘러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걸 보고도 슈퍼맨 같던 우리 할머니니까 우리 곁에 영원하실 줄 알았다. 내가 좋은 직장을 가지고 호강시켜 드릴 수 있을 때까지 버텨주실 줄 알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바쁘던 해. 설날 아니면 추석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날을 살면서 가장 슬픈 날로 기억한다. 아빠는 보여줄 게 있다며 나를 불렀다. 아빠는 나를 가리키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엄마요. 야 누고?”
“알지, 우리 손주.”
“그래, 손주인데 야 이름이 뭐냐고.”
“...”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잊어버리셨다. 치매였다. 치매 증상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할머니가 내 이름을 잊어버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눈물이 났다.
“할머니... 태형이요...”
“그래, 태형이... 알지...”
할머니 손을 잡고 엉엉 울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잊힌다는 것. 그건 정말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슬픈 것이었다.
나는 취미로 노래를 하고 있다. 그날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났을 때, 나는 공연에서 이 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이라는 곡을 부르게 되었는데 가사 한 구절이 꼭 치매 걸린 우리 할머니가 하는 말 같았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 합니다
나는 그 가사를 내가 할머니께 전하고 싶은 말로 개사해서 불렀다.
그대 나를 잊어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