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머니6. 할머니 구출 작전

by 김카잇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할머니가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한 말이 있다. TV도 없는 거실에 혼자 누워서 또는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할머니는 아빠가 큰 방에서 TV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마다 우리를 손짓으로 불렀다. 그리고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느그 아빠가 맨날 욕하고 때린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할머니를 때린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그러는지는 몰랐다. 이전에 그런 것도 당연히 문제이지만, 나이가 들어 힘도 없고 정신도 없는 지금의 할머니를 때리는 건 더 큰 문제였다. 할머니의 고자질이 잦아지자 형이 용기 내어 아빠에게 물었다. 요즘도 할머니 때리냐고. 아빠는 부인했다. 치매 걸린 할마시가 거짓말을 한다고, 옛날 일을 요즘 일처럼 얘기한다고 도리어 화를 냈다. 아빠 말보다 치매 걸린 할머니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하면 요양원에 보내라고. 그러면 아빠는 더 편하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요양원 이곳저곳을 검색해 보고 아빠에게 얘기를 꺼내면, 그래도 어떻게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냐고, 힘들어도 아빠가 끝까지 책임져보겠다고 말을 바꿨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요양원으로 입금되는 게 싫은 거면서.


아빠가 어떤 생각으로 할머니를 보살피려 하는 것이든 상관없이 형과 나는 할머니와 아빠를 떨어트려놓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할머니를 씻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였다. 할머니가 속옷에 오줌을 쌌던 날이었다. 냄새가 난다며 화를 내더니 할머니를 질질 끌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 좁은 화장실에서 힘없이 축 늘어진 할머니를 정말 거칠게 씻겼다. 씻기는 내내 오줌을 쌌다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말이다. 적은 나이도 아닌 아들 혼자서 치매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늙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실수한 것이 그렇게 화가 날 일인가 싶었다. 아빠는 할머니를 보살필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여러 요양원과 인권단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빠가 화낼 것이 분명했지만 할머니를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해야 했다. 놀라운 것은 할머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인권단체에 전화했더니, 이미 이웃들의 신고가 많이 들어와서 아빠와 할머니를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도 아빠가 욕하고 때린다는 할머니 말은 진짜였던 것이다. 이번만큼은 정말 할머니를 지옥에서 구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이때가 아빠와 전쟁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그동안은 작은 다툼 정도였을 뿐, 아빠와의 절연을 각오하고 치밀하게 덤빌 준비를 한 적은 없었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 나에게 정말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할머니가 받아온 고통을 생각하면 그깟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형, 인권단체 담당자와 할머니 구출 작전을 준비하던 때,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우리의 작전은 중단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브런치 (13).png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9화할머니5. 그대 나를 잊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