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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7. 마지막 시간

by 김카잇

“태형아, 지금 대구로 좀 올라와야겠다. 할머니 쓰러지셨다...” 부랴부랴 준비해서 형과 함께 대구로 올라갔다. 형은 운전에 집중했고, 나는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이었다.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자 병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빠도 충격이 있는지 얼이 빠진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잠깐 산책 간다고 나가서는 갑자기 쓰러지셨다 했다. 그래도 할머니 표정이 평온해 보여서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검사 결과지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매우 무거웠다. 우리 가족을 불러 모아 어렵게 입을 뗐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라. 드라마에서나 듣던 말을 직접 듣게 될지는 몰랐는데. 이 말은 정말 가슴 미어지는 말이었구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온몸이 성한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많이 아프고 힘드셨을 텐데 말씀을 안 하시던가요...” 처음 모시고 온 병원인데... 온몸이 망가질 때까지 아프다는 말씀 한 번 없었던 할머니가 미웠고, 병원 모시고 가보자는 말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빠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가 미웠다.


의사 선생님의 다음 말은 더 잔인했다. “치료로 삶을 좀 연장할 수는 있습니다. 근데 병실에 누워만 계실 거고, 비용도 적지는 않을 겁니다. 치료를 할까요, 어떡할까요...” 할머니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선택을 우리가 해야 한다니. 그러나 우리 가족이 가진 돈과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선택지는 애초에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죽음을 선택했다.


할머니를 아빠에게서 떨어트려놓기 위해 소통하고 있었던 인권단체에 전화를 했다. “할머니께서 곧 돌아가실 것 같아서요. 잠깐이지만 감사했습니다.” 오랫동안 연락을 받지 않던 동생에게도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어떤 메시지도 읽지 않던 동생이 메시지를 읽었다. 처음에는 아빠와 마주하기 싫어 오지 않겠다는 동생이었지만, 할머니께는 그러면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그날 밤 대구로 올라와서 할머니를 찾아뵀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주무시다 잠깐씩 깨어나셨다. 잠깐 깨어나면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씀을 하셨다. “현아... 느그 아빠 이불 챙기라이...” 현이는 우리 아빠 이름이었다. 치매 기운 때문인지 자꾸 아빠나 큰아버지만 찾았다. 형은 미뤄왔던 일을 하기로 했다. 아직 너무 어려서 데려오기 힘들었던 조카를 할머니께 보여드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조카가 머무르는 동안 눈 한 번 뜨지 못하셨다. 형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갈 때까지 할머니가 눈 한 번 떠주시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조카 손과 할머니 손을 잠깐 부비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점점 눈을 뜨는 주기가 길어지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힘겹게 눈을 뜨시곤 말씀하셨다. "태형아." 며칠 전까지 내 이름을 모르시던 할머니께서 내 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나는 오열을 하면서 할머니께 하고 싶던 말을 했다. 할머니 없었으면 우리 삼 남매 이렇게 못 컸을 거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울지 마라, 와 우노?" 하시고 다시 눈을 감으셨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까지도, 본인보다 우는 손주를 더 걱정하셨던 우리 할머니. 나는 그날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녀가 영원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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