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요리 솜씨는 최고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 식당도 하셨다 들었다. 우리 엄마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요리를 배워놓지 못한 게 너무나도 후회된다 하셨다. 할머니의 음식을 먹고 자라온 나는 엄마가 왜 후회하시는지 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신 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그릇에 밥을 꾹꾹 눌러 담은 걸로 모자라 그릇 위까지 쌓아 올린 고봉밥을 두 그릇, 세 그릇 먹었던 나니까.
특별한 날이면 펄펄 끓여주신 빨간 쇠고기뭇국, 신문지 깔아놓고 손수 기름에 구워주신 김, 입맛이 없을 때마다 간장과 참기름 넣어 비벼주신 간장밥, 간장국수까지. 내 뱃살의 7할은 할머니의 사랑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그리운 건 명절이면 해주시던 ‘전조시’라는 닭요리이다. 간장에 조린 찜닭 같은 닭요리였는데, 형도, 동생도 전조시가 참 먹고 싶다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검색해 보는 건 그만큼 할머니의 요리가 그립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요리가 그리운 건 단지 맛있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집이 어려워도 손주들은 굶기지 않으려 했던 할머니의 마음 때문도 있다.
집이 어려워지고 나서 할머니는 손주들 먹일 것을 구하러 다니기 바빴다. 외상으로 얻어오기도 하고, 행사장이라 불리는 곳에 다니면서 이것저것 받아오기도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행사장은 한때 유행했던 ‘떴다방’이었다. 아빠는 동네 망신시킨다며 행사장에 절대 가지 말라 했다. 행사장 다녀온 걸 들킬 때마다 아빠의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그럼에도 계속 몰래 행사장을 다닌 이유는 손주들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고기볶음 같은 게 상에 올랐다. 그것도 행사장에서 얻어온 것인가 해서 아빠의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아빠가 그 음식을 보고도 별말이 없자, 우리는 조심스레 젓가락을 들었다. 동생은 고기를 유심히 보더니 털이 붙어있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한 입 베어 물더니 식감도 이상하다고 싫어했다. 형과 나는 그래도 매콤 달콤하고 고기 맛이 난다고 좋아했다. 그 고기는 돼지껍데기였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돼지껍데기는 파는 부위가 아니었던지, 동네 정육에서 공짜로 돼지껍데기를 나누어주셨다, 그걸 양념에 볶아서 반찬으로 올려주셨던 것이다.
지금은 손질 잘 된 껍데기 두 장 가격이 8천 원.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이걸 별미라고 생각하고, 돈을 주고 사 먹는 날이 올지. 하긴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다. 인심 좋은 사장님이 계시던 정육점도 사라졌고, 우리 할머니도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누군가에겐 훌륭한 술안주, 누군가에겐 훌륭한 미용식품일 돼지껍데기. 하지만 나에게 돼지껍데기는 손주들 고기반찬 한 번 먹이겠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짜 고기를 얻으러 굽은 허리로 오르막길을 다녔을 우리 할머니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