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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는 맛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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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필 Oct 27. 2020

원효대사 밥피자

모든 것은 아침먹기 나름이라

아이들을 외가에 보냈다.


아이들 없이 맞는 첫날.

저절로 눈이 떠졌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고요한 공기, 창문에 어른거리는 밝은 햇살.

빛을 인식하는 순간 머릿속이 맑아진다.

나의 의지로 눈을 뜨는 아침은 이렇게나 상쾌하다.




보통은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성화에도 버티고 버티다가 '이런 것도 애미인가'라는 자괴감에 마지못해 일어나는, 우중충한 아침을 맞이한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오늘은 뭘 해먹여야 하지? 아이들 등교까지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 조리시간이 20분을 넘기지 않으면서도 근기가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몇 가지 레파토리를 머릿속에서 돌려보다가 아이들에게 결정권을 (떠)넘긴다.


"뭐 먹고 싶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프렌치토스트!"
"엄마 나는 누룽지!"

각기 다른 것을 외치는 형과 아우.


엄마 몰래 저지레를 할 때는 죽이 척척 맞는 녀석들이 아침메뉴를 두고선 왜 항상 의견이 갈리는지 모를 일이다. 형아가 프렌치토스트를 외치면 동생은 간장계란밥을, 동생이 핫케이크를 원하면 형아는 주먹밥을 갈망한다. 어쩜 이렇게 매번 국적까지 다른 요리를 원하는지. 자칫 한 녀석의 편을 들었다가는 때 아닌 <형제의 난>이 시작된다. 이래서 사람들은 한낱 식사메뉴를 두고도 거창하게 '통일'이라는 표현을 쓰는 모양이다. 평화롭게 이 아침의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밥피자 어때?"

거부할 수 없는 메뉴를 제시하자 두 녀석 모두 다급하게 콜을 외친다.

"좋아!"

"엄마, 나도!"


극적타결 후엔 거칠 것이 없다. 전날 먹고 남은 찬밥을 솥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양푼에 담는다. 집에 있는 각종 밑재료를 다져넣는다. 이왕이면 햄이나 소시지 같은 육가공품이 조금은 들어가주는 편이 유초딩 입맛저격에 수월하겠지만 사실 밥피자엔 무엇을 넣어도 좋다. 양파, 당근, 대파, 호박, 우엉 무엇이 됐든간에 밥피자라는 이름 아래 친선대사 계란의 손을 잡고 대화합을 이룬다. 찬밥과 다진 채소에 날계란을 넉넉하게 세 개 정도 깨넣고 휘적휘적 섞어준다. 


달군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후라이팬 가득 반죽을 넓게 퍼뜨린다.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두께를 잘 조절해야 나중에 뒤집을 때 처참하게 부서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 부서지는 순간 <밥피자>가 아니게 되므로 각별히 주의할 것! 한 면이 충분히 익으면 조심스럽게 뒤집개로 뒤집어 나머지 한면도 노릇하게 구워낸다. 접시에 담아 8등분 한 뒤 케첩을 두바퀴 두르면 평화로운 오늘의 아침메뉴, 밥피자 완성이다.


이름이 거창해서 밥피자지, 사실은 집집마다 흔히들 해먹는 '계란밥전'을 크게 부쳐낸 것에 불과하다. 찬밥활용에 제격인 계란밥전은 그동안 우리집에서 그다지 잘 팔리는 메뉴가 아니었다. 어느 날, 아이들이 보던 만화에 <밥피자>라는 음식이 등장했고, 만화 속의 <밥피자>를 해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여덟 조각으로 자른 '거대 계란밥전'을 당당하게 내놓은 것이 우리집 <밥피자>의 시초이다.


"엄마, 이게 뭐야?"

정체불명의 신메뉴가 밥피자로 격상될지, 거대계란밥전으로 전락할지는 오롯이 나의 연기에 달려있었다.

"밥피자아!"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끝을 가늘고 길게 끌어올리는 것이 포인트.

"밥피자?"

의심어린 눈초리로 재차 확인하는 아이들 앞에서 쐐기를 박았다.

"그래 밥피자!"

"우와 밥피자!"

와락 밥상 앞으로 달려드는 두 아들. 밥피자. 성공적.


이름만 다를 뿐 실상은 같은 요리임에도 불구하고 <밥피자>라고 불러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로 와서 <효자메뉴>가 되었다. 만화 속 <밥피자>와는 때깔부터 다르며 무엇보다 그동안 엄마가 해주었던 '계란밥전'과 똑같은 맛인데도, 단지 밥피자라고 불리운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을 일인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을 일인가 보다.


먼 옛날 원효대사도 같은 해골물을 앞에 두고서 마음가짐 하나로 청량감과 구역감을 오가지 않았던가. 같은 이치로 이것이 밥피자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 맛이 격상되는 일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마음먹기란 얼마나 중요한가.




아이들을 외가에 보냈다.

내일은 아침밥 걱정없이 늘어지게 자야지. 밤늦게까지 글을 쓰다 새벽 두시에 행복하게 자리에 누웠다. 나는 내일 열시까지 자도, 정오까지 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야호!


.

.

.


...야호. 아이들 없이 맞는 첫날.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개운하다. 적어도 여덟시간은 잔 것 같은 개운함이다. 그런데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도통 오전 열 시의 그것만치 쨍하지 않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 다시 잠을 청해본다. 묵직한 이불로 눌러놓아도 가벼운 마음이 둥실 떠오른다. 일어나서 해야할 일이 없어지니 몸이 이불 속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허탈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제껏 아침마다 나를 혼곤하게 한 것은 몸의 피로감이었을까, 마음의 부담감이었을까.

세상사 마음먹기 나름이라고들 한다.

일체유심조.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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