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입학까지 반년, D-180
다섯살 후반부터 여섯살을 거쳐 일곱살로 넘어갈 때까지 차츰 안정되어가는 모습으로 희망을 주던 아이는 일곱살 후반에 갑자기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산만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목소리가 크고 행동이 과격해서 주목을 받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유치원의 모든 일과와 규칙을 통째로 거부하려 들었다.
수업 중에 유치원탐험을 하겠다며 단짝친구와 몰래 교실을 빠져나가 옥상까지 올라가지를 않나, 하원시간에 혼자 유치원마당에 숨어 유치원을 발칵 뒤집어놓지를 않나, 위험천만한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유치원에서는 관리소홀에 대해 미안함을 표했지만 나야말로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잖아도 격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에게 내 아이가 1.5배는 더 보태고 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날은 집으로 전화주세요. 제가 늘 집에 있으니 언제든 하원시킬 수 있어요."
이런 나의 제안이 지나친 배려였을까? 이때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유치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님, 오늘은 야외수업인데 하라가 오전 내내 너무 산만해서요..."
"어머님, 가을소풍이 야외라 하라가 아무래도 불안해서요..."
"어머님, 하라가 오늘 유독 행동이 크네요..."
내가 상시로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선생님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주기를 바랐던 건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까지 각오한 것은 아니었다. 내리 사흘을 등원한 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을 때, 나는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일이라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유치원과 나는 결국 반목하게 될 것이다. 유치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선생님은 아쉬워하면서도 강력하게 우리를 붙잡지는 않으셨다. 그 마음을 이해했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를 주시하느라 힘들었을 선생님에게 그간의 노고에 대해 감사드렸다. 서로에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렇게 시원할 수가. 아침에 두 아이 동시에 챙기느라 닦달할 필요도, 유치원에서 전화가 걸려올까봐 마음을 졸일 이유도 없어졌다. 학교 입학까지는 반년이 남아있었다. 모두가 회사로, 학교로, 기관으로, 심지어 아이의 동생마저도 유치원으로 간 그 시간에 나와 아이에게는 불편한 자유, 무거운 자유가 주어졌다.
계절은 막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미세먼지 앱에는 매일같이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래도 나갔다. 아이와 나의 일상에 빨간 불이 들어왔는데 우리는 마스크를 써야할지, 공기청정기를 사야할지, 그냥 창문을 꽉 닫고 있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갔다.
강변을 달렸다. 나는 달리고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그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찬바람을 맞으며 달리고 있으면 얼마 안 가 땀이 나고 숨이 찼다. 아이와 나는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지만 지금 여기에 살아서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쉰다. 우리는 살아있다, 그러니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매일 아침 달렸다.
배낭을 매고 산에 올랐다. 배낭에는 초코바, 물, 미술도구들을 챙겨넣었다. 등산 중에 만나는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나를 따라 꾸벅 인사를 했다. 소리가 작아도 나무라지 않았다.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그렇게 함으로써 처음 보는 사람과도 교감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되었다. 산에서 내려올 땐 쓰레기는 물론이고, 물감을 씻었던 물, 아이가 그림을 그린 돌까지도 모두 챙겨서 가지고 내려왔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줄도 모르고 불편을 주는 아이에게 조금도 나쁜 것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운전연수를 받다가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냥 중앙선을 가로질러서 건너편 주유소로 들어가면 안 되는거냐고. 남들은 그리 하던데 왜 굳이 뺑뺑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느냐고 물어봤을 때 남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아직 운전이 미숙해서 잘못을 해놓고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잖아. 그럴 땐 딱 정석대로만 하는거야. 좋은 것만 배워야지."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이 딱 그랬다. 가르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아이에게 적어도 도덕적인 결함만큼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거의 매일같이 도서관에 갔다. 유치원에서처럼 많은 경험을 시켜줄 수 없는 내게, 도서관은 언제든 어디로든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또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있는 연습을 하기에 도서관은 최적의 장소였다. 도서관에서 아이는 나름 목소리와 행동을 조절하려 애썼다. 6개월간 우리가 거기서 소리 죽여 읽은 책들이 족히 오백권은 될 것이다. 아이가 어떤 책을 들고오든 나는 제한하지 않았다. 공룡책을 너무 많이 들고 온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소리를 죽여가며 실감나는 공룡연기에 몰입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로 떠난 시간, 아이와 둘이서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바쁘고 즐거웠다.
아무 문제도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건 우리에게 있을 수가 없으니까.
아이는 유치원을 그만두었지만 아이의 동생은 여전히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동생의 등하원길에 동행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동네엄마들과 아이친구들은 두 눈이 똥그래졌다.
"하라 이제 유치원 안 가요? 동생은 가는데 하라는 왜 안 가요?"
하루는 아이의 동생을 데리러 갔다가 하원차량을 타려고 유치원 신발장에서 대기중이던 아이의 같은 반 친구들과 딱 마주쳤다. 아이를 보자마자 친구들은 반가움과 호기심으로 일제히 말을 걸어왔다.
"하라 이제 유치원 안 다녀요? 왜요?"
"하라야, 너 이제 유치원 안 다녀? 언제 다시 나와?"
"나 오늘 유치원에서 하라 동생 봤는데!"
쏟아지는 관심이 쑥쓰러웠던지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는 답했다.
"나 이제 못 다녀. 내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깜짝 놀란 나는 얼른 아이의 말을 정정했다.
"아줌마가 하라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학교 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같이 놀기로 했어. 내년에 학교에서 만나자."
유치원을 그만둘 때 나는 아이에게 학교가기 전에 엄마와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아이는 크게 끄덕이며 좋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아이는 자신이 문제를 일으켜 유치원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치원을 그만두던 당시의 분위기에서 어떤 낌새를 감지했던가 보다. 아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는다는 걸, 아이를 대할 때는 말의 내용 뿐 아니라 표정과 말투 또한 잘 다듬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유치원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이에게, 여전히 유치원에서 잘 지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 마냥 반가웠을 리 없다. 아이의 동생은 차량을 이용해서 등하원하기로 했다. 집 앞에서 차로 오고가니 아이가 떠나온 유치원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상기할 필요도, 다른 사람들에게 매일 똑같은 질문과 답을 반복할 일도 없었다.
일상을 뿌리째 흔들 것 같았던 변화가 서서히 일상으로 자리잡아갔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