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 말고 다른 것도 되고 싶어
"언니. 일이 하고 싶어요."
오전 열 시.
아이들을 보내놓고 가장 바빠지는, 혹은 가장 늘어지는 전업주부의 시간.
좋아하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
각각의 배우자와 열 살 가까이 차이가 지는 탓에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에 결혼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각각 첫째와 둘째를 낳아 서른이 채 되기 전에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10년을 아내로, 엄마로 살았다. 우리는 늘 서로의 나이를 아까워했다. 돌이킬 수 없는 20대를 결혼으로 소진한 것을 통탄했다. 그러니 우리는 잘 되어야만 한다. 나의 분신같은 그녀가 잘 되면 내 삶 또한 희망적일 것이며, 내가 잘 된다면 기꺼이 그녀의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일이 하고 싶다'고 말해온 것이다.
누군가는 '경단녀'라며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지만 우리에게는 단절될 경력도, 내세울 경험도 없다. 직장생활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지금 사회로 나가게 되면 우리는 사회초년생이라는 이름표를 받아듦과 동시에 아줌마와 애엄마라는 꼬리표를 감수해야 한다. 이 핸디캡을 무릅쓰고 나를 기용할만큼의 가치를, 고용주에게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한정적이다.
"일단 네가 일이 하고 싶다는 걸 주변에 알려. 그래야 일이 들어와."
"어디다 알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변엔 애기엄마들 뿐인데."
"네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어필해."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네가 좋아하는 일이 뭐야?"
"언니, 그걸 모르겠어요."
그녀는 대체로, 모르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딜 가야 일을 할 수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그녀. 이제 아이들이라면 징글징글하다면서 막연하게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을 생각해보기도 했을 정도로 그녀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녀가 모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 또한 몰랐다. 늘 글 쓰는 일을 동경해왔기에 시작이 쉬웠고,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아는 지인들은 종종 내게 일거리를 맡기곤 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글쓰기처럼 진입장벽이 낮지도 않을 뿐더러 모두가 나처럼 운이 좋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취미나 특기를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취향을 잊은 채 엄마로 사느라,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게 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그녀들이 있을까. 그녀들의 시작에 보탬이 되고 싶다. 그렇게 이 기획은 시작되었다.
빈약한 나의 인맥을 총동원해 각 분야의 워킹맘들을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나의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될 워킹맘들은 대부분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시작점이 '엄마'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어붙일 경력이 아예 없는 '무경력맘'이나, 이전의 경력이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어중간한 경단맘'들을 위해서는 엄마로 출발해 지금의 성과를 일궈낸 사람들의 사례가 절실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인 상태에서 일을 시작해 그림책 작가, 그래픽 디자이너, 유아영어 강사, 요가 강사, 공부방 선생님, 플리마켓 기획자, 디저트카페 대표, 1인출판사 대표, 전통매듭공예 강사, 웹툰 작가, 미술 강사, 작가 등 지금의 성과를 이루기까지 어떤 노력과 시간들이 필요했는지, 엄마로서 해당직업을 병행하기에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은 무엇인지, 궁금했던 부분들을 낱낱이 파헤치도록 하겠다.
시작은 엄마였으나 나중은 사회인이고 싶은 모든 엄마들을 위해, 워킹맘 인터뷰의 시작을 알린다.
1화 : 그림책작가 J를 만나다 (12월 4일 발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