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인터뷰 3. 유아영어강사 우정은을 만나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조용한 실행력
<음전하다>는 단어가 사람으로 현신한다면 꼭 그녀를 닮았으리라. 얌체운전자에게도 좀처럼 경적을 울리지 않는 그녀는 자신의 아이 앞에서도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다. 단정한 외모와 차분한 말씨, 나긋나긋한 태도를 보면 자칫 그녀를 '만만한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지켜본 바 그녀는 결코 맹탕도 아니요, 호구는 더더욱 아니다. 오래 참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 누구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 때문에 언제나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우정은 씨의 내일이 기대되는 이유다.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2년차 유아영어강사 우정은입니다. 일곱 살, 네 살 남매를 키우고 있어요.
유아영어강사라고 하니까 얼른 감이 오지 않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유치원/어린이집에 출강하여 유아들을 대상으로 영어수업을 진행합니다. 단, 영어유치원의 경우에는 영어를 전담하는 원어민 선생님이 따로 계셔서 저 같은 출강강사들은 바이링구얼 선생님* 역할을 맡게 돼요.
*바이링구얼(bilingual) 선생님 : 이중언어 선생님.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씀으로써 원어민 선생님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유아" 그리고 "영어", 제게는 둘 다 쉽지 않은 키워드인데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어요?
예전부터 아이들을 좋아했어요. 애들은 응석을 부려도 심통을 부려도 그때뿐이잖아요. 수업준비가 힘들다가도 마냥 좋아서 매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정신적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에요.
영어도 학교 다닐 때 좋아했던 과목이에요.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했고, 결혼 전엔 외국인을 응대하는 서비스 직군에서 일했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쭉 테솔*에 관심이 있었고요. 남편 찬스로 주말에 아이들을 맡겨두고 숙명여대 테솔 입시설명회를 찾았다가 선배들과의 만남을 갖게 됐어요. 저는 단순히 제 아이들의 연령에 맞춰서 PL(유아영어)을 이수하려고 생각했는데 PL반 선배님이 뜻밖의 정보를 주셨어요. 어린 아이를 둔 엄마들은 PL을 이수하는 편이 취업에 훨씬 도움이 된다더라고요. 일단 유치원/어린이집 강사 구인이 많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무엇보다 아이들 등하원시간과 제 출퇴근시간이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때부터 테솔은 잠시 미뤄두고 구직을 시작했어요. 구직사이트에 올라오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구인글을 유심히 살펴봤죠.
* 테솔(TESOL) :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방법(교수법)을 배운다.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단기과정은 6개월 내외로 이수가 가능하다. PL(유아영어) - YL(초등영어) - SMU(중고/입시영어) 세 단계로 나뉜다.
구직사이트를 통해 바로 유치원에 취업이 되신 건가요?
아니요. 면접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취업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학기 중에는 강사 구인도 드문 데다가 저는 경력도 없는 초짜였으니 학기 중간에 채용되는 게 쉽지 않았죠. 11월~12월쯤 되니 출강업체에서 신입강사를 모집하는 공고가 속속 올라오더라고요. 지원한 모든 회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고 그 중 면접 볼 때 가장 마음이 편했던 곳을 선택했어요.
업체에 소속되면 바로 강사일을 시작할 수 있나요?
1~2월은 교육을 받으면서 교구도 만들고 수업시연도 해요. 업체가 가지고 있는 양질의 노하우와 교구들을 전수받는 기간이죠. 두 달간의 교육이 끝나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일수와 시간을 정하고 출강하게 돼요.
수업일수와 시간은 업체가 정해주나요, 강사의 재량인가요? 평균적인 근무시간도 궁금해요.
업체마다 다르지만 제가 소속된 업체를 기준으로 말씀드릴게요. 일 2-4시간, 주 2~5일 사이에 내가 원하는 근무시간과 출강일수를 업체에 말하면 그에 맞춰 1년치 스케줄표가 나와요. 예를 들어 하루에 2시간씩 주 2일 출강하게 되면 주 4시간, 월 16시간 근무가 되는 거구요, 하루에 4시간씩 주 5일을 꽉 채워 일하면 주 20시간, 월 80시간 근무가 되겠죠. 보통은 하루에 2-3시간 근무가 일반적이에요.
영어강사직은 시간당 페이가 쎄다고 들었어요. 혹시 구체적인 금액을 여쭤봐도 될까요?
업체마다, 연차마다 다르지만 시간당 3만~4만 5천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상세한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업체는 뭘로 이문을 남기나요? 강사에게 교육비나 중개수수료를 받나요?
아니요, 강사가 업체에게 지급하는 비용은 없어요. 업체는 교재를 팔아서 돈을 벌어요. 제가 출강나가는 원에 업체가 취급하는 교재가 들어가거든요. 업체는 교재를 팔고, 저는 강의를 팔고, 수입은 각자 챙기죠.
업체와 강사 모두 윈윈이네요! 근무지는 어떤 방식으로 배정되나요?
여러 방식 중에 택할 수 있는데요.
월수-A유치원 / 화목-B유치원 / 금-C유치원, 이런 방식도 가능하고요.
또는 하루 중에도 근무지를 쪼개서 1교시는 A유치원에서, 2교시는 B유치원에서, 3교시는 C유치원에서 이런 식으로 배정받을 수도 있어요.
웬만하면 하루 한 군데에서 쭉 수업하는 게 편하지 않나요? 매 수업마다 다른 원으로 이동하려면 정신도 없고 더 지칠 것 같은데요.
저도 처음에는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쭉 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같은 유치원에서 1일 3타임을 뛰어보기도 했는데요, 막상 해보니까 생각지 못한 단점이 있더라고요. 한 곳에서 세 타임을 뛰게 되면 쉬는 시간 없이 바로바로 수업에 들어가게 돼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매 시간 새롭지만 저는 계속 똑같은 수업을 반복하잖아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높은 텐션으로 세 시간을 내리 달리는 게 쉽지 않아요. “헬로 에브리원~~~” 하고 들어갈 때는 모르는데 끝나면 녹초가 되죠.
차라리 여러 곳을 이동하면서 수업하는 게 숨 돌릴 틈을 주더라고요. 보통 이동시간을 30분으로 계산해서 수업을 배정하는데 자차로 10분이면 들어갈 수 있는 근방의 유치원을 배정해주거든요. 남는 시간에 휴식도 취하고 장소가 바뀌니 새로운 기분으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동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장단이 있군요. 지금은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요?
코로나로 인한 교육부 지침으로 대부분의 유치원들이 영어수업을 중단하면서 출강강사들은 일이 많이 줄었어요. 그래서 올해부터는 고정으로 근무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영어유치원에서 담임선생님으로 근무하게 되었어요. 담임선생님 업무 외에 영어미술과 뮤지컬영어같은 영어수업을 진행하게 되고요, 원어민 선생님이 수업하시는 모습도 참관할 수 있어서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근무시간도 9시 30분부터 4시까지라 아이들 등하원시간이랑 딱 맞고요.
어쩜 시간대가 아이엄마에게 딱이네요. 이렇게 딱 맞는 일자리를 어떻게 찾으셨어요?
숙명여대 테솔사이트에 잡보드가 있어요. 일종의 영어교육종사자 구인구직 게시판인데요, 2021년 테솔 OT일정을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잡보드에 고정직 파트타임 선생님을 구하는 구인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더니 연락이 왔더라고요. 면접 후에 합격통보를 받았어요.
새로운 일자리에 테솔까지 소화하려면 올 한해 정신없이 바쁘시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네, 좀 더 알찬 수업을 꾸리고 싶어서 올 3월부터 숙명여대에서 테솔을 수강하게 됐습니다. 제가 이번에 들어가는 수업은 가장 초급 단계인 유아영어, 소위 놀이영어(PL)예요. 대상 연령이 낮아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유용한 수업입니다. PL을 이수하고 나면 또 다음 단계, 또 그 다음 단계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아이의 연령에 맞춰 같이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테솔입학방법과 자격요건은 어떻게 되나요?
서류전형 - 시험 - 면접을 거쳐 입학하게 되는데 영문과 또는 영어교육과 출신, 영어강사, 현직교사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과할 때 유리해요. 아무래도 테솔을 이수하려는 동기가 확실하니까요. 토익성적이 800점 이상이면 시험도 면제받을 수 있고요. 특별히 자격요건은 없어요. 원어민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축하드려요. 새로운 시작에 첫 발을 디디셨네요. 다시 유아영어강사 이야기로 돌아와서요, 엄마로 이 일을 할 때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엄마로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죠. 허락되는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선택폭도 좁고요. 일을 시작하고 나서 초반에는 다음날 수업준비를 하는 게 긴장도 많이 되고 집안일에도 애들한테도 많이 소홀했어요. 세 달 정도는 힘들었죠.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더라고요.
고충 뒤에는 고충을 상쇄하는 장점이 나와줘야죠. 엄마로서 유아영어강사 일을 할 때 좋은 점은요?
일단 근무지가 유치원이다 보니 내 아이도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예요. 엄마가 직접 아이의 영어교육을 책임질 수 있어 영어교육비가 절감된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집에서 아이들에게 수업할 때처럼 연극도 해주고 게임도 해주고 영어책도 읽어주면 너무너무 좋아해요.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면요?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아이들은 자기를 보육하고 가르쳐주는 사람을 되게 따르잖아요. 일이 적응되고 나서부터는 확실히 아이들에게서 받는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체력소모가 심한 일이라고 했지만 내 에너지를 다 쓰고만 오는 것은 아니에요. 제 작은 손짓에도 환호하고 열광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충만해져요. 뽀로로나 시크릿쥬쥬가 된 기분이죠. 어디서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겠어요.
유아영어강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현업종사자로서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아이엄마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영어를 아주 잘 하지 않아도 돼요. 출강업체에서 신입강사를 뽑을 때는 특별한 자격요건을 두지 않거든요. 다만 최종적으로 강사를 채용하는 유치원에서는 강사의 경력을 중요시해요. 본인의 경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영어독서지도사, 방과후 영어교사자격증을 취득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도 이번에 온라인수업을 통해 두 개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업체에 소속되어 있으면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할 수 있도록 강사의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준다는 점이 든든해요.
또 유아 대상의 수업이다보니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교구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요, 자르고 붙이고 꾸미고 만들기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아! 무엇보다 아이를 좋아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비 유아영어강사, 예비 워킹맘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육아를 시작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기껏 나를 위한 시간을 정해놔도 집안일과 육아에 쫓기다 보면 결국 아내나 엄마로서의 역할에만 치우치게 되고, 꼭 해야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꾸만 늘어지고요. 주부로서도 엄마로서도 나 자신으로서도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시작하면서 모든 역할에 더 충실해졌어요. 일을 하는 동안은 집안일을 완전히 잊어버려요. 대신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요. 집안일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하게 되고, 먹는 것도 더 잘 챙겨먹고, 일터에서 아이들에게서 받은 사랑 덕분에 집에 와서 내 아이들과도 더 잘 놀아주게 되고요.
내 일을 하는 내 시간. 내가 벌어들인 내 돈. 내가 공부해서 습득한 내 전문분야. 내 것을 하나하나 되찾을 때마다 자유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일을 하면서 비로소 자유로워졌어요. 많은 분들이 이 자유를 함께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본 인터뷰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에 따라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 4화 예고 : 요가강사 C를 만나다 (3월 12일 발행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