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 마음 읽어주기(1)

먹는 욕구 채워주기

by 날필

내 아이가 별나든 아니든 모든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은 뭘까. 공감과 이해, 육아서에서 흔히 말하는 <마음 읽어주기>가 아닐까. 내게 가장 중요한 엄마의 임무를 고르라면 망설임없이 <마음 읽어주기>를 꼽을 것이다. 아이가 다섯살이 되었을 때에야 이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후회하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왜 진작 알지 못했던가 가슴을 치다가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가 다섯살이 되도록 나는 아이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나의 최대임무 역시 엄선한 식재료로 세 끼 밥과 간식까지 살뜰하게 챙겨먹이는 것이라고 믿었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날엔 스스로에게 짜증이 치밀었다. 그리고 그 짜증은 내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로 갔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가 고스란히 나의 감정에 노출되었다. 아이를 위해 밥을 짓는다면서 거기서 기인한 스트레스가 향하는 대상도 아이라니. 이 아이러니.


외식은 물론이고 슈퍼에서 과자를 사 먹인다는 걸 상상조차 못하던 나에게 하루는 지인이 말했다.

"애들은 먹는 게 낙이야. 그 중에서도 군것질이 8할이고. 네가 음식을 가려먹이는 게 어쩌면 아이한테는 결핍일 수 있어. 어른도 음식을 꼭 영양으로 먹는 건 아니잖아."

아...생각해보면 어릴 적 사진 속의 나는 주로 과자를 들고 있었다. 빼빼로, 마이구미, 닭다리, 포테토스틱 같은 과자를 봉지째 들고 세상을 다 가진 양 웃고 있다. 과자를 들고 있을 때 비로소 저런 웃음이 나오니 자연스럽게 사진에 담겼던 것일 게다. 미안해졌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는 아이로부터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빼앗은 걸까?


다섯살이었던 아이를 데리고 당장 슈퍼에 갔다. 마음껏 골라보라고 말을 해줘도 마음껏 골라봤어야 마음껏 고를 줄을 알지.

"마음껏 골라봐."

"그게 뭔데.

"너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고르라고"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딱 이런 느낌이었다.


아이는 쭈뼛거리며 그나마 한두번 사준 적이 있는 초콜릿을 집었다. 눈은 시종일관 마이쭈를 향해 있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쓴웃음이 나왔지만 아무 말 없이 초콜릿을 계산했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슈퍼에서 먹고 싶은 걸 사먹자고 약속했다. 언젠가는 진짜 먹고 싶은 걸 제 손으로 당당하게 집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간식상자를 만들어주었다. 식사 전후의 군것질에 대해서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굴었다. 게다가 모순된 반응을 보였다.

밥 먹기 전에 아이가 과자를 찾으면 한숨부터 내쉬었다.

"곧 밥 먹을 건데 과자는 무슨 과자야! 밥 먹고 먹어야지!"

의무적으로 꾸역꾸역 밥을 다 먹고 후련한 얼굴로 과자를 찾는 아이에게 나는 또 쏘아붙였다.

"밥을 조금 먹으니까 과자를 찾지! 과자 찾지 말고 밥을 많이 먹어!"

도대체 과자는 왜 사다놓은 것일까. 애 등원시키고, 애 재워놓고 엄마가 먹으려고 사다놓은 걸까.


<짠단짠단>이라는 말이 왜 있는가. <디저트배는 따로 있다>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렇다. 어른도 밥 먹고 나서 껄떡댄다. 그것도 밥보다 더 거하게 껄떡댄다. 애도 똑같다. 더하면 더했지. 아이 입장에서는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은 순간에 제맘대로 먹지 못하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간식상자에 들어있는 건 언제든지 먹어도 괜찮아. 그런데 밥 먹기 전에만 좀 참아줬으면 좋겠어. 너무 참기 힘들 땐 뜯어서 딱 두 개만 먹고 닫아놨다가 밥 다 먹고 나면 마저 먹자."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던 '식사 전 과자는 용납할 수 없다'는 오랜 신념 때문에 <딱 두개만>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말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애초에 아이가 과자를 두 개만 먹고 딱 멈춘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긴가. 원래 과자라는 것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 당기는 것 아니던가.


다음날 아침,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간식상자를 기웃거렸다. 그럼 그렇지, 아침준비를 하던 나는 어제의 결정을 조금 후회하며 하나마나한 말을 별 기대없이 던졌다.


"과자가 먹고 싶구나. 근데 이제 금방 밥 먹을 거니까 딱 두 개만 먹고 남은 과자는 밥 먹고 나서 먹으면 어때?"
"좋아!"


너무도 쉽게 수긍하는 아이. 과자 두 개를 받아들고 만족스럽게 돌아서는 아이. 아이는 그렇게 과자 두 개를 먹은 뒤 아침을 차려 줄 때까지 간식상자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아이였다는 걸 그때까지 왜 나는 몰랐을까. 어쩌면 그동안 말이 안 통해 답답했던 건 아이가 아니었을까.




그 후로 3년간 지속된 '마음 읽어주기'의 여정이 막을 올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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