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쓰면 다 해결됩니다
ADHD예요. 약 쓰면 열에 아홉은 좋아져요.
그 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 이어진 선생님의 말로 미루어 짐작할 뿐.
"내 아이가 ADHD라고 하니까 놀랐어요? 막 절망적이고 그래요?"
그제야 표정을 바로잡고 의연한 척 입을 뗐다.
"아니요.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어요."
"밖에서는 충동적이어도 엄마와 있을 때는 안정적이라는 걸 보면, 엄마가 아이를 잘 파악하고 대처해 온 것 같아요. 계속 지금처럼 하면서, 나중에 학교 들어가거든 얘기가 나올 거예요. 늦어도 5월엔 학교에서 연락이 올거야. 그때 병원 가서 약을 쓰면 돼요. 그럼 다 좋아져요."
이렇게 확실하고 공허한 진단이 있을까. 덮어두었던 불안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왔을 때 지금까지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시간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허무했다.
ADHD로 의심된다는 전문가의 판정을 받았을 때 아이는 일곱살이었다. 세살 적부터 나는 아이가 버거웠다. 아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덩어리를 먹이고 씻기고 입혀가며 가르친다는 것은, 그렇게 하나의 인간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원래 이렇게 고된 것이리라. 다들 이렇게 중노동을 해가며 아이를 키우겠거니. 나는 나의 고생을 고생스럽게 여기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가끔 누군가 나를 보고 힘들겠다고, 농도 짙은 위로의 눈빛을 보내도 그저 아기엄마에게 하는 흔한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신발 신는 사이에 혼자 순식간에 사라져 이미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린다든지, 우리 아이가 놀이에 끼기만 하면 자꾸 분란이 생긴다든지, 기분이 상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거칠게 덤벼든다든지, 가만히 있는 아기를 밀어서 울린다든지, 차가 오는데도 전혀 망설이지 않고 차 앞으로 몸을 날린다든지, 어항만 보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손을 집어넣는다든지....이런 일들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다섯살까지도 계속 반복되었다. 단순히 타고난 성향이 폭력적이고 충동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뭔가 아이에게 채워지지 않는 듯한, 무언가 결핍에서 비롯된 듯한 여러 모습들이 보였다.
아이가 네 살 적에 잠깐 친가에 맡겨진 적이 있다. 당시, 신생아였던 아이의 동생과 내가 연이어 수두에 걸리는 바람에 한달만에야 아이를 다시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할머니 손을 잡고 집에 들어온 아이는 나를 보고도 웃지를 않았다. 달려나가 아이를 끌어안았지만 어색하게 안겨있을 뿐, 마주 안아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아이는 말수가 없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할머니가 가방을 꾸려 현관으로 향하자 아이는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하라야, 어디 가?"
"아가, 할머니 따라가게?"
아이는 신발을 신다 말고 어른들의 얼굴을 휘휘 둘러보다가 입을 열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 이제 여기서 살아도 돼?"
아. 아이는 한달 내내 엄마가 자신을 할아버지할머니댁에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체념 속에 아주 작은 기대가 실려있던 그 목소리. 그 눈동자.
아직 아이의 동생을 임신중이던, 세 살 때의 일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조산기가 있었고 그 때문에 친정엄마가 세 시간 거리를 오가며 살림과 육아를 도와주셨다. 거의 누워지내다시피 하는 딸 옆에 아이를 두고 내려가기가 못내 마음이 쓰였던지 하루는 할머니 따라 시골에 가지 않겠느냐고 아이를 살살 꾀었다. 아이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할머니를 따라 두 밤만 자고 오겠노라며 집을 나섰다. 다음 날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야 오늘 올라갈란다."
"왜? 애기가 나를 찾아?"
"찾기는. 찾으면야 내가 달래감서 데리고 있지. 밤에 잠을 잘라고 누웠는데, 애기가 요로고 가슴에 두 손을 올리고 누워가지고, 할머니 잠이 안 와요, 하잖냐. 엄마가 보고싶어서 눈이 쌔름쌔름한디 엄마 소리 한번을 안 한다. 가슴이 아파서 안 되겠다. 애기가 울지는 않는데 웃지도 않어야. 뭔 이런 애기가 있다냐."
아이라고 해서 어른의 사정을 까맣게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왜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는 고작 세 살의 아이었을 뿐인데.
내 아이가 ADHD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허무함은 꼭 절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사실을 확인받았을 뿐, 새삼스레 하늘이 무너질 것도 없었다. 내가 가슴이 아팠던 것은 5분도 안되는 시간에 엄마의 진술만으로 ADHD아동으로 분류되는 그 간단함과 "약을 쓰면 해결된다. 이 이상 부모가 할 일은 없다."는 선생님의 말이었다. 전문가로서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아이를 위해 쏟았던 시간과 노력들이 모두 헛수고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약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여태 아이를 힘들게 해 왔던 걸까. 한동안 그런 생각들로 무기력해졌다.
ADHD라는 단어가 아이와 나,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버리고 난 후 한동안은 허무감과 무기력감에 힘들었다.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우리집을 잠식해갈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까짓, ADHD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맞든 아니든, 알든 모르든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은 같았다.
달라질 건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이 아이의 엄마고, 지금껏 해 온 엄마의 일을 계속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