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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Oct 26. 2021

개남 開南

제2부 1894 갑오년 5장 교룡산성 출정의 밤

   

“한양을 함락한 왜놈들은 전라도를 칠 것이오. 조선을 징검다리 삼아 명을 정복하려던 왜놈들이 임진왜란에 진 이유가 호남을 점령해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을 패인으로 꼽고 정유년에 전라도를 도륙하지 않았소. 청나라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왜놈들이 전라도를 공격하지 않겠소. 부산진에 주둔한 왜놈 군사가 순천성 광양성 진주성을 칠 것입니다. 곧 섬진강을 타고 남원성에 들이닥치고 운봉을 넘어오고 금산에서 이치 고개를 넘어오면 전주성이 함락될 터 전라도가 정유년처럼 불바다가 될 거 아니겠소? 그러니 호남의 목구멍 섬진강과 운봉 금산에 우선 병력을 주둔시켜야 합니다.”

“섬진강은 김인배가 대접주가 순천성 광양성에 집강소 설치를 마쳤으나 섬진강 건너 하동성 진주성에 집강소를 설치할 것이오. 나주와 운봉은 아전과 유림들이 군사를 세워 막고 있으니 접전을 피할 수 없소. 집강소 설치가 마무리되어야 한마음으로 일본과 맞설 수 있소이다.”

“집강소 설치를 끝내고 국난을 널리 알리고 방비책을 간구하는 민회를 열도록 합시다.”  

   

긴 회의가 끝났다. 김개남 대접주가 결정 사항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일본이 대병을 파견하여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 하니 조금이라도 나라 걱정을 하는 사람은 궁중의 일을 물을 겨를조차 없다. 일본군이 장차 남하할 것이다. 우리가 일어나 일본 군대를 막는다. 진주와 광양은 호남의 남문이고 금산 운봉은 동문 청주성은 북문 나주성은 서문이니 이곳에 일본의 기습공격을 대비해 우선 군사를 배치한다. 오늘 밤 교룡산성에서 출정식을 한다.”

"경상도 집강소 설치를 위해 남원대도소에서 염찰사를 보내 먼저 고을의 폐정을 샅샅이 조사하고 일본에 맞설 방비를 한다. 한양에 사람을 보내 자세한 내용을 탐지한다. 이상이오.”

박수소리가 터졌다.   

   

내일 아침 당장 인두는 한양으로 출발해야 했다. 인두는 마구간에 들러 먼길을 달려야 할 말의 갈기를 쓰다듬는데 싸늘하게 외치던 태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놈이 무엇을 바라고 내게 그런 흰소리를 하는지 내 알바 아니나,”

“내 어머니는 네놈들 동 학비도들을 피하고자 했을 뿐이다. 황건적처럼 미쳐 날뛰고 양반을 욕보이는 불학무식 모리배들이 판치는 이런 세상에 사람이라면 어찌 살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그렇게 소리치던 누이는 왜놈이 한양을 함락했다는 말에 새파랗게 질려 코를 붙들고 오라버니를 부르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정유년에 만명의 백성이 죽고 죽은 자도 산 자도 코가 없었다는 남원에서 왜놈이 쳐들어왔다는 말보다 더 공포스러운 말이 또 있겠는가. 인두에 지져지던 순간의 그 끔찍한 꿈으로 한밤중에 가위눌리고 깨어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몸이 상하는 그 공포는 몸이 먼저 아는 공포였다.

 

인두는 마구간을 건사하는 동몽에게 내일 먼길을 갈 테니 말에게 먹일 콩을 삶으라 일렀다. 그리고 말의 털을 손으로 빗겼다. 흥양 말 목장에 노비 인두는 마구간에서 자고 말의 여물을 나누어먹고 자랐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말의 눈만 보아도 말의 상태를 알았다. 말은 천국에 간 엄마였고 얼굴을 모르는 아버지였다. 때리지도 놀리지도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주는 동무는 보드라운 털도 살도 따뜻했다. 언젠가 말을 타고 회문산 참나무골 요셉을 찾아가야지. 말을 타고 큰 돌에 할머니가 새겨진 고개를 넘어 누이를 찾아가야지. 어린 인두는 마구간 구석 짚단 속에서 잠들 때마다 얼른 키도 크고 힘도 센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태리를 보러 간 마당에서 약쑥 내음이 났다.

날이 더운데 불을 피워 송하 도사가 약을 달이고 있었다. 댓돌에 신이 한 켤레 더 보였다.

이라든가. 옥에서 데려다 놨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다행이다 싶었다.

“인두 대장 걱정 말게. 겁을 먹어서 그런 거지. 식겁. 곧 정신을 차릴 걸세.”

“내일 새벽 한양에 댕겨와야 합니다.”

“걱정 말고 다녀와. 내가 할애비처럼 잘 돌봄세.”

인두가 미소를 지었다. 송하 도사라면 마음이 놓였다. 마루에서 눈을 들면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 하늘 매미 소리만 요란하다.

      

여섯 살부터 한시를 잊은 적 없던 누이였다. 감이 익을 무렵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며칠째 젖을 먹지 못한 아기는 갈수록 우는 소리가 작아졌다. 감나무 아래 떨어진 홍시를 주어가 입술에 대주는 것이 인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엄마가 죽어요. 의원을 불러주세요. 치맛자락을 붙들고 매달리는 인두를 운봉댁은 지네 보듯 떼어냈다. 아기도 죽어요. 인두는 다시 울면서 치맛자락을 붙들었다. 입술에 지네가 붙은 듯 흉터가 선명했기에 사람들은 너나없이 인두라고 불렀고 종의 이름이 되었다. 저녁밥으로 시래깃국에 보리밥 한 덩이를 가져온 계집종이 갓난 애기를 안고 갔다. 싸개 사이로 아주 작은 발바닥이 보였다. 그 발바닥이 인두가 본 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요한 천주님이 지켜주실 게야.”

그날 밤 어머니는 검은 나무구슬을 꿴 묵주를 인두의 손에 쥐어주었다.

“동생을 데리고 회문산 참나무골 요셉 아저씨를 찾아가거라. 세실리아의 아들이라고 말해라. 회문산 참나무골 요셉.”

“어머니 함께 가요, 어머니”

“엄마는 천국에서 천주님 곁에서 우리 요안이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어머니 나도 천국에 따라갈래요.”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주님이 부르셔야 천국에 갈 수 있단다. 요안 누구를 찾아가야 한다고?”

인두는 고개를 흔들며 울었다. 어머니가 인두를 팔에 눕혔다. 손가락이 인두의 입술 흉터를 더듬었다. 인두를 꼭 껴안았다. 회문산 참나무골 요셉을 찾아가라. 세실리아가 엄마라고 말해라.

높은 감나무에 달린 그 홍시를 내일 꼭 따다가 엄마에게 주겠다고 잠이 든 인두가 추워서 일어났을 때 엄마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회문산 참나무골 요셉. 그 말만 남았다. 인두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엄마 곁에 울면서 앉아있었다. 덕석에 둘둘 말려 머슴 지게에 얹혀간 어머니는 산기슭에 묻혔다. 이제 겨우 만났는데 개남장 곁에서 작은 초가집을 얻어 누이와 살고 싶었던 꿈은 어찌 될 것인가.   

  

“형님. 여기 계실 줄 알았어라.”

봉득이었다.

“왜? 무슨 일이?”

“형님은 내일 한양으로 지는 운봉으로 떠나야 해서 그전에 얼굴이라도 볼까 허고....”

“싱겁기는...,, 곧 교룡산성 출정식 함께 가야 하면서.... ”

봉득이는 두리번거리며 태리가 누워있는 방문을 두리번거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쩐대요? 괜찮은 거지라?”

인두는 아까 품에 넘어진 태리를 어쩌지 못해 껴안고 있던 봉득이 모습이 떠올라 웃고 말았다. 말 위에서 춤을 추고 총을 쏘는 재주가 남달라 동몽군들이 대장이라 따르는 봉득이지만 태리를 다시 보러 온 것은 춘향이 집 담 넘은 이몽룡과 다를 바 없는 청춘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내일 출전하는 봉득이가 태리의 외할아버지 박봉양이 지키고 있는 운봉에 집강소를 설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인두는 봉득이와 함께 방에 들어 잠든 태리의 얼굴을 잠깐 보았다. 지난밤 옥에서 모기에게 물린 자국이 얼굴 곳곳에 붉었다.     

   

교룡산성은 남원 북문 밖 교룡산에 있었다.

6월 그믐밤은 달빛이 없을 터였다. 저녁이 아주 검어지기 전에 개남장을 선두로 접주들과 동몽군들은 일제히 동학군 진지 교룡산성을 향해 북문을 나섰다. 북문 밖을 나서자 남원성 만 명의 코 없는 백성을 함께 묻었다는 만인묘가 동산처럼 봉긋했다. 일행은 그 앞에 멈췄다. 개남장이 큰 절을 두 번 올리는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일행은 다시 교룡산 가파른 산길을 소리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시호시호 이 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지시호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장삼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넌즛 들어

호호망망 넓은 천지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노래 한 곡조를 시호 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 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여 있네

만고 명장 어데 있나 장부당전 무장사라

좋을씨고 좋을씨고 이내 신명 좋을씨고

    

교룡산성이 가까워지자 수운의 칼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산에 메아리쳤다.

교룡산성 성벽은 출정을 앞두고 온통 횃불로 일렁이고 있었다. 인두는 수천의 목소리가 하나 된 장엄한 칼노래와 환하게 일렁이는 수천 개 횃불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인두뿐 아니라 개남장을 비롯한 산길을 오르는 수백 동학 도인 심장은 교룡산성의 수천 동학군과 오심즉여심의 하나 됨으로 뜨겁게 용솟음쳤다. 동학을 창도한 수운 선생이 30여 년 전 바로 이 교룡산성 은적암에서 칼 노래를 지어 칼 춤을 추고 동경대전, 용담유사, 논학문을 지어 동학을 완성했다 하지 않는가. 외적을 막기 위해 백제시대에 쌓은 교룡산성은 조선 건국의 출발지이기도 했다. 운봉에 진을 치고 남원에 왜국을 세우려 했던 왜구 대장 아리발도가 최후를 마친 곳이었다. 개성에서 삼도 도순찰사에 임명된 이성계는 고려군을 이끌고 남원에 도착한 후 교룡산성에서 군대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선국사 보제루에서 큰 북을 울리고 운봉으로 출전했다. 대장 아리발도를 화살로 쓰러뜨리고 황산대첩을 대승으로 이끌면서 왜구를 몰아낸 이성계는 삼남 백성의 영웅이 되었고 조선 건국의 초석이 다져졌다. 다시 쳐들어온 왜구에 경복궁이 함락되었지만 남쪽에 남은 우리가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노라 결의에 찬 노랫소리는 개벽의 새나라를 세우겠노라는 뜨거운 꿈과 함께 남원 읍성을 휘돌아 마주 보이는 지리산 천왕봉까지 메아리치고 있었다.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날아오를 듯한 뜨거운 심장으로 인두는 교룡산성 홍예문을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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