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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Nov 15. 2021

개남 開南

제2부 1894 갑오년 7장  무너지는 세상 

접주 회의를 마친 김개남은 객사를 나와 서너 명 접주들과 대도소가 설치된 장청으로 향했다.

경복궁 함락 소식이 남원성에 도착하고 숨 가쁜 사흘이 지났다.

“백성은 눈에 보이는 힘이 없으면 믿지 않는다. 힘이 보이면 저절로 그 아래 모여 하나가 된다. 힘이 있어야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 새 세상을 열 수 있다.”

교룡산 은적암에서 천제를 지내고 횃불을 들고 출정식을 하는 동학군에게 김개남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왜국의 경복궁 함락 위기앞에서 나라를 지키기위해서는 왜구의 길목을 틀어막아야했다.  왜구와 맞서 싸우기위해 산성을 정비하고 군대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했다. 천왕봉에 아침해가 솟구치는 새벽, 수천 군사를 이끌고 김인배는 순천성을 향해, 최경선은 나주성을 향해, 김봉득은 운봉성으로 출발했다. 가장 먼저 김봉득이 말을 타고 바람처럼 운봉성을 함락 집강소를 설치했다. 구례에서 구례현감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하룻밤 유숙한 김인배군은 총을 든 군사 수천이 온다는 소리에 이서와 관리들이 다 도망쳐버린 순천성에 무혈입성했다. 김인배가 이끄는 동학군 속에는 머리가 비상한 최달곤도 있었다. 

“호랑이 잡는 최고의 산포수 8천 명을 거느린 김개남 동학군이 집강소 설치를 위해 경상도로 진군해온다 소문을 쫙 퍼트리고 다니면 백성들은 환호하고 고을 수령들은 무서바서 벌벌 떨낍니더. 때로는 소문이 천만 군사가 못할 일을 해내니께요. 전투는 기세 싸움에서 판가름나는기지요. 사면초가 무너질게 뻔합니다. 내가 그리해보겠심더.” 

하동 사람 최달곤은 남원대도소 암행어사로 섬진강을 건너 경상도의 관리들 악행과 악질 토호의 만행을 낱낱이 조사해 영호 대접주 김인배의 영남 입성을 사전 준비를 해나가기로 했다. 

“나주성은 예로부터 왜놈들도 함락하기 어려운 철옹성인데 그동안 탐학을 저지르던 전라도 양반들이 죄다 나주성으로 도망가서 숨어있으니 쉽게 열리기 어려울 걸세.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네.”

김개남의 말에 나주성 공격을 위해 출정하던 최경선은 시원하게 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성밖에 오중문 접주가 집강소 설치를 끝냈으니 성안의 부사와 양반들은 독 안의 쥐 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주 오중문 접주와 힘을 다해 나주성에도 동학 대도소를 설치해보겠습니다.”  

친동생이나 마찬가지로 가까운 접주 최경선은 김개남과 같은 태인 사람으로 어렸을 적부터 친분이 두터웠는데 사돈 집안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 첫아들이 태어나자 이제 전장에 나가도 이제 아무 걱정 없다고 기뻐하던 최경선은 기개가 넘칠뿐더러 무술과 침술에도 능해 지난봄 백산봉기에서 영솔장을 맡았던 터라 나주성 공격에 가장 적임자였다. 

성문을  열지 않는 나주성의 민종렬 부사는 전 남원부사였다. 민종렬과 친분이 두텁던 남원의 사족들은 김개남이 입성한 남원성에서 나주성으로 가마와 말을 타고 꽁지 빠지게 피난을 갔다. 영산강 주변 드넓은 토지의 주인으로 백성의 고혈을 빨던 악명 높은 나주의 토호들과 사대부 집안임을 내세우며 유세를 부리던 유림들까지 철옹성이라 이름난 나주성에 모여들어 또아리를 틀고 민종렬과 생사를 같이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민종렬은 전주성에서 화약을 맺고 돌아온 동학군을 30명도 넘게 사살한 죄가 있어 동학도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았기에 죽기 살기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부호들은 큰돈을 걸고 사방에서 총을 쏘는 포수를 나주성 안으로 모으고 있었다. 나주성이 호락호락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김개남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호남에 남은 마지막 성이 나주성이었다.

말을 타고 한양으로 떠나는 인두에게 금산 청풍 회덕 연산 진산 청주 등 한양 가는 길목의 접주들에게도 집강소 설치 소식 와 경복궁 함락 풍도의 청군 폭격 소식을 알리고 7월 대보름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남원에서 모인다는 통문을 전하도록 했다.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되려는가. 인두가 어서 한양에서 돌아와 갑갑한 속이 시원해졌으면 싶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운 칼날 위에 선 듯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김개남은  단전에 힘을 주고 걸었다.  

   

‘호랑이 상이구나.’

박봉양은 첫눈에 김개남에게 압도당했다. 호랑이를 만난 토끼처럼 옴쭉달싹 못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박봉양에게 김개남이 먼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놀란 박봉양도 벌떡 일어나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박접장, 황내문 접주에게 입도를 하셨다 들었습니다. 이제 같은 도인이 되셨으니 한 형제나 마찬가지, 보국안민 광제창생의 길에 함께 합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접주님.”

박봉양은  목소리뿐 아니라 손도 떨려 두 손을 꼭 쥐었다.

“왜놈들이 경복궁을 함락하여 주인 노릇을 하고 있음은 들으셨을 줄 압니다. 저들이 이제 조선을 삼키려 할 것인즉 우리들이 방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입니다. 운봉은 태조 임금의 황산전투가 있었던 곳 적장 아리발도의 피가 아직도 바위에 붉게 남아있는 곳이니 박접장도 왜놈이라면 치가 떨리실 겝니다.”

균전어사 김창석의 아흔아홉 칸 집이 불타고 전운어사 조필영이 발가벗겨져 돼지우리에 던져지고 전라감사 김문현, 안핵사 이용태, 고부군수 조병갑 등이 갑오 오적이라 징치를 당하고 귀양 간 소식을 들은 박봉양은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군이 경복궁을 함락하고 동학군이 남원성과 전라도 56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했으니 목숨을 부지하는 일도 바람 앞의 촛불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다행히 동학군은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으로 삼고 생명을 귀하게 여겨 살상은 아니한다는 말에 목숨은 부지하겠거니 할 뿐이었다. 

“남원의 탐관과 아전 토호들이 죄다 도망가서 기와집들이 텅텅 비고 패악을 행한 자들은 감히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들판 농막에서 식은 감자를 깨물며 덜덜 떨고 있답니다.”

교룡산성 아래 남원 천민 접을 이끌고 있는 화산당 접주가 박봉양을 노려보며 말했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힘없고 천한 놈들에게는 개벽 세상, 억누르고 있던 자들에게는 제가 가진 기둥과 서까래가 머리 위에서 무너지는 무서운 세상이었다.

“우리 동학에서는 보국안민 못지않게 유무 상자가 중요합니다.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고 사는 거지요. 무자년 대흉에 동학도인들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의 목숨을 수천을 구한걸 박 접장님도 들었지라? 고래등집 천석꾼이 백성 구제하다 자기 식구 구제는 못했다는 말 들어보셨지라?”

박봉양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화산당 접주 이문경의 말에 장수 황내문접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예. 우리 접에 입도를 하셨으니 교룡산성에서 훈련 중인 군사들이 먹을 식량을 운봉에서 조달해오겠습니다. 우리 박 접장님은 전라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만석꾼 대부 호시니 우리 진영에 큰 힘이 되실겝니다.”

접주들 사이에 이물질처럼 앉아서 박봉양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남원대도소에 재산을 받치고 집강소가 설치된 운봉을 떠나 깊은 산으로 피접 하기로 약조를 하고서야 박봉양은 딸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진멸권귀 권세있고 부귀한 무리들을 멸하고

축멸왜이 왜적과 양이들을 구축하여 없이하며

재세안민 백성을 구원하고 백성을 편안케 한다 

     

무리지어 오가는 동몽군들 노랫소리가 우렁찼다.

박봉양은 딸 운봉댁을 나귀에 태우고 종놈에게 나귀 고삐를 잡혀 성문을 나섰다.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니 그 본의가 단연코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백성들을 도탄 중에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기 위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몰아내고자 한다.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받는 민중들과 방백 수령 밑에 굴욕 받는 아전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다.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를 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격문들이 사방에 붙어있었다. 언문을 아는 꼬맹이가 동무들 앞에서 글자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읽었다. 박봉양은 아이들의 소리에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쓰개치마를 뒤집어쓴 딸이 나귀 등에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하늘 아래 하나뿐인 딸을 붙잡혀두고 내쫓기는 그 심정이 오죽하랴. 한양 양반 가문이라고 천금 같은 땅문서 가마에 함께 태워 시집보냈더니 아전 딸이라 멸시만 받다가 아들 하나 못 낳고 소박뎅이로 팔자가 시들어버린 불쌍한 딸이었다. 아기 낳다 죽은 종년 딸을 거둬 친딸로 애지중지 키워 혼처를 알아보는 판국에 불한당 같은 오래비 놈이 나타나 빼앗아 가버렸으니 집에 가자마자 대성통곡 앓아누울 게 틀림없었다. 

“울지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하지 않더냐. 성안에는 도적들이 들개떼처럼 모이고 강가에는 비류들이 쥐떼처럼 와글거리는데 전라감사는 벙어리 정사를 하고 남원성 부사는 도망치고 없구나. 아, 국법은 기강을 잃고 천륜은 땅에 떨어졌도다. 비도의 노략질이 왜구보다 더하구나."

박봉양이 혼잣말로 한탄하며 터벅터벅 땡볕 아래를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세찬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뿌연 흙먼지를 비껴 서서 보니 옷차림이 전라감영 군사마가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서 전라감사가 비도들이 무리 지어있는 남원성에 군사마까지 보내나 왜군이 전라도로 쳐들어온 거 아닌가 박봉양은 심장이 벌렁거렸다. 말은 곧장 성문 안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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