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1894 갑오년 6장 운봉 박봉양의 입도
“태리야. 정신 채려라.”
누워있는 태리를 안고 운봉댁이 소리쳤다. 옥에서 사흘을 보낸 운봉댁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흰모시 저고리는 말끔한 빛과 날렵한 다림질의 흔적은 찾을 길 없이 후줄근해지고 남색 치마도 감옥 바닥의 가마니때기와 지푸라기 위에서 여지없이 꾸깃거렸다. 동백기름 머리카락도 윤기를 잃고 참빗질을 못해 어수선했다. 입술까지 모기와 빈대가 물어뜯었는지 얼굴도 상한 데다 살이 홀쭉하게 내렸다. 삼월이가 그 곁에서 훌쩍거렸다.
송하 도사가 약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이게 머시당가?”
“영부를 태운 청수요.”
사발에 담긴 물속에 검은 재가 떠다녔다. 운봉댁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걸 왜 가져왔는가?”
“광한루 아래 서 씨 약방에서 다녀갔소이다. 처녀가 식겁을 두 번이나 했으니 기가 흩어지고 맥이 약해졌다 하오. 간담도 놀라 정신이 제자리도 못 돌아오고 있으니 탕약 외에도 정성을 다해 주문을 외고 영부를 태운 청수를 하루 세 번 복용하라 하셨소.”
“식겁을 했다니 무슨 말인가?”
“긍게 마님, 왜놈들이 한양성을 점령해서 임금을 포로로 잡고 남쪽으로 쳐들어온다니 겁이 나서는 코를 쥐고 쓰러졌다 합니다요.”
“그보다 처녀가 더 놀란 것은 따로 있소이다. 오라버니에게 들은 어머니 사연도 혼비백산 할 일인데 왜놈이 쳐들어왔다는 소식까지 덮쳐 맥이 풀려버린 것이오.”
운봉댁은 머리를 저었다.
“허튼소리 말고 당장 용한 의원을 부르게. 돈은 얼마든지 낼 것이니.”
가락지를 빼서 송하 도사 앞으로 밀었다.
“돈으로 고칠 병이 아니오.”
송하 도사는 영부 태운 물을 다시 들었다.
“분이 네가 입에 떠 넣어 드려라.”
“아니 내 이름은 분이가 아니라 삼월이라고 몇 번이나 말혔는디 어찌 자꾸 분이라고 헌대요.”
삼월이가 톡 쏘았다.
“늙으면 옛날 것만 또록허고 새 것은 머리에 안 백히는 법이여. 청수 주문은 잘 기억허고 있지?”
“암만요. 열석자를 못 외우면 바보 천치.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그려. 정성이 젤로 중요헌 법.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으니.”
그리고는 운봉댁을 향해 말했다.
“온 가족이 입도를 하셨으니 주문을 외우기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오.”
삼월이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운봉댁에게 물었다.
“오매 마님 동학에 입도를 하셨단 말이여라?”
운봉댁은 입을 다물고 삼월이를 흘겨보았다.
“그래 어제 봉득이가 말을 타고 운봉성을 함락해서 집강소를 세웠다. 박문달은 지금 장청으로 개남장을 뵈러 갔다.”
“시상에 우리 나리마님도 동학에 입도를 혔다고라?”
운봉댁이 삼월이에게 손짓을 했다.
“삼월이 니는 그만 나불거리고 집으로 갈 채비를 혀라. 의원은 집에 가서 불러야겠다.”
“긍게 인자 우리는 모다 집으로 갈 수 있다 그말이여라우?”
“태리 처녀는 여기 남아있어야 한다. 개남장에게 인두두령이 그리 약조받았으니.”
“뭔, 뭔, 소리를. 우리 딸을 내가 데리고 간다는데-”
“딸이 아니지 않소. 친 오라버니가 누이를 건사하겠다는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가 무슨 수로 딸이라 하는 게요.”
송하 도사는 운봉댁을 향해 택도 없는 소리라는 듯 아퀴를 지었다. 운봉댁은 이불 밖으로 나온 태리의 손을 쥐고 송하 도사를 노려보았지만 송하 도사는 이내 방문을 열고 나갔다.
“불쌍한 것. 을매나 무서웠으면...”
운봉댁은 눈물을 닦았다. 여원치 고개를 넘을 때마다 태리는 큰 돌에 새겨진 가슴 잘린 주막 노파를 무서워했다. 왜구들이 와서 욕을 보이자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죽었다는 주막집 노파 이야기는 황산에서 죽은 왜장 아리발도 피가 지금도 붉게 남아있는 피바위와 함께 운봉 사람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다 보니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이야기였다. 운봉 사람들에게 왜구가 쳐들어온다는 말은 코가 베이고 가슴이 잘리고 집이 불타고 다 죽는단 말이었다. 운봉 댁은 태리의 손을 놓지 않고 방바닥이 꺼질세라 한숨을 내쉬었다.
옥안에 큰 소리가 난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아짐 둘 얼른 나오시오.”
소리친 옥졸 동몽이 서둘러 옥문을 열었다.
“얼른 가서 바느질을 해야 허오. 내일 아침까지 바느질을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오. 밤새워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오매 뭔 난리 났소?”
옷감을 도둑질해서 갇혀있던 두 여인은 좋아라 머리를 매만지고 주섬주섬 일어섰다.
“난리 난리 큰 난리요. 왜놈들이 쳐들어왔소. 한양은 이미 왜놈들 차지가 되고 한양 백성들이 피난을 하느라 동작 나루에서 배가 뒤집혀 한강의 물고기 밥이 된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소식이오.”
“아이고메. 뭔 소리여.”
“그러니 한시가 급 허니 왜놈들 막으려고 오늘 밤 동학군이 교룡산성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낼 아침에 출정을 헌다 이말이요. 옷감 몰래 훔치지 말고 얼른 가서 옷도 짓고 깃발도 꿰매고 허라는 명이요.”
두 여인은 나가고 운봉 댁만 홀로 남았다. 태리가 정신줄을 놓고 쓰러졌다고 삼월이가 불려 가더니 왜놈들까지 쳐들어왔단 말인가. 그렇게 바짝바짝 애를 태우며 이틀 밤을 보낸 운봉댁에게 아버지 박봉양이 오늘 아침에 나타났다.
“아버지.”
운봉왕 박봉양은 그 크고 검은 통영갓 대신 챙이 좁은 갓을 쓰고 비단옷 아닌 무명옷을 입고 옥관자도 없는 차림이었다. 하나뿐인 애꾸눈이 수심에 가득했다.
“곧 집으로 갈터이니 그리 알고 태리한테 가 있거라.”
그리고는 곧장 사라지고 동몽 옥졸이 문을 열어 운봉댁이 태리가 누워있는 별채로 데려다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태리를 데려갈 수 없다니 왜구가 쳐들어온 것만큼 눈앞이 캄캄했다.
삼월이는 숟가락으로 검댕이 물을 떠서 태리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러나 곧 물은 목을 넘기지 못하고 목으로 흘렀다.
“이리 내라. 내가 하마.”
운봉댁이 청수 그릇을 받아 들었다.
김봉득이 바람처럼 달려 운봉을 함락하고 박봉양이 무릎을 꿇어 항복했다는 소식에 남원성 동학도들은 춤을 출 듯 기뻤다. 충청도 경상도가 한집처럼 오갈 수 있는 고갯길이 트인 까닭이었다. 만 명이 아래에서 들이닥쳐도 천명이 위에서 지키면 끄떡없다는 운봉 성이 동학군 수중으로 들어왔다. 운봉 공격 대장 김봉득은 교룡산성에서 나와 장수로 향하는 장수 동학군 무리에 운봉 공격군을 합류시켰다. 남원 쪽으로 뚫린 여원치 고개와 방아치 고개에 포군을 세워 밤낮으로 지키고 있는 박봉양의 민보군은 등 뒤의 장수 쪽으로 들이닥친 동학군의 급습으로 읍성이 함락당했다.
허를 찔린 운봉 현감과 박봉양은 포승줄에 묶이고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운봉 백성들은 만세를 부르며 몰려나와 장수 접주 황내문 접주에게 입도했다. 왜구를 물리칠 군대는 동학군밖에 없다고 황토현에서 관군을 황룡강에서 경군을 물리치고 남원성에 무혈입성한 동학군이 왜구를 몰아내서 개벽 세상을 만든다고 밀물처럼 입도했다. 박봉양도 입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복궁이 함락되고 왕이 포로로 잡혀 조선이 망한 것도 모자라 금쪽같은 딸과 외손녀가 남원성 옥에 갇혀있는 형편이니 어느 쪽 하늘에 대고 절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입도한 박봉양은 황내문 접주에게 입도하고 운봉을 벗어났다. 부랴부랴 쌀 100 가마 어음을 남원 대도소에 바치고 장청에서 개남장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린 지가 꽤 되었는데도 객사에서 접주 회의를 마치고 올 것이라던 개남은 나타나지 않았다.
“박봉양 이놈은 환갑이 3년 남은 늙은이 인데도 첩이 여럿입니다. 호가 문달이라 박문달이라 하고 눈이 애꾸여서 일목이라고도 합니다. 대대로 운봉 아전 집안으로 글겅이질로 재산을 모아 삼남에서 소문난 재산가로 운봉을 차지하고 그 권세를 마음껏 누려온 자입니다.
3년 전 운봉에 온 암행어사 이면상이 문달에게 죄상을 협박하며 10만 냥의 뇌물을 요구했습니다. 암행어사도 한몫 단단히 잡아볼 요량이었죠. 10만 냥을 못 주겠다 5만 냥으로 하자고 했더니 어사가 체포해 한양으로 압송을 명했죠. 수레에 실려 잡혀가던 도중 딸 운봉댁이 포졸에게 뇌물을 주고 탈출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무당 진령군에게 뇌물을 바쳐 궁궐의 민 중전 혈족에게 연줄을 놓았지요.
박봉양은 곧바로 수레에 금을 싣고 한양 금송아지 대감 민영준에게 15만 냥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과거 합격증인 홍패와 정 7품 벼슬 주서직을 사들고 돌아왔습니다. 문과 과거 을과 7위로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했으니 아전을 하던 중인이 아니라 문반 양반이 된 것입니다. 이후로 문달은 날개가 달렸죠. 왕비가 가장 신임하는 오라버니 민영준과 연줄이 닿아있으니 운봉 현감이나 남원부사도 우습게 보는 자가 문달이 그 놈입니다.”
객사 접주 회의 말미에 장수 황내문 접주가 도소에 와있는 박봉양에 대해 설명했다. 남원 대도 소는 김개남이 입성한 후 각지의 접주와 접사들이 5일마다 장날이면 방문해 번갈아 객사에 묵으며 모든 일을 함께 의논하고 처리해 가기로 결정하고 접주 회의를 열었다.
“당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입도를 했다 하나 언제 등에 칼을 꽂을 줄 모르는 자입니다.”
“수심정기하여 새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개과천선 할 수 있도록 보살필 필요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왜놈들과 싸워야 할 판국이 코앞이니 조선 백성들은 어쨌든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봉양 그 자도 조선 백성 아니오. 왜놈과 싸울 때는 앞장을 설 수도 있소. ”
원평 대도소 김덕명 대접주가 진중하게 말했다. 경복궁 함락에 대응하기 위한 남원 대도소 통문을 받고 원평에서 말을 달려 화급하게 달려온 터였다. 하지만 노비 접주 김원석의 생각은 달랐다.
“재산이 있으니 혹여 문달을 의병장으로 세우자 헐까 봐 겁납니다요. 문달에게 당한 세월이 오죽이나 분하면 이자의 조상이 정유재란 때 일본군 첩자로 은덩이를 받고 남원성 입성을 도와주었다, 남원성 백성이 다 죽자 그 재산을 날마다 운봉으로 실어 날라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백성들이 악담을 퍼붓겠습니까. 저런 자는 곤장을 쳐서 사지육신을 작신 분질러 사람 취급을 못 받게 해부러야 합니다. 저런 놈의 죄를 벌하지 못하면 말로만 개복세상이지라우. 민심은 배를 뛰우기도 허지만 금새 엎어 불기도 허는 법이니 깊이 생각혀서 각단 지게 일을 처리했으면 하는디요. ”
황내문 접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접주 말이 딱 백성들 맘이요. 운봉 백성들은 박봉양을 죽이거나 귀양 보내 영영 운봉에 발을 못 딛게 해달라고 너나없이 간청하고 있습니다. 집을 불 지르겠다고 불을 들고 몰려드는 걸 불을 지른 자는 곤장을 친다 엄히 훈계하여 겨우 막았습니다. 집강소에서 봉양의 죄를 물어 볼기를 칠라치면 천대도 만대도 부족하다 아우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