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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희 Dec 07. 2021

개남 開南 제2부

1894 갑오년 9장  눈물과 오줌 

개남 2부 1894 9장 눈물과 오줌      

불에 달구어진 듯한 여름 해가 겨우 식었다.

태리는 여전히 기력을 찾지 못한 채 방에 누워있었다. 

삼월이가 마루에서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고 있는데 우물에 갔던 뚱이네가 물동이를 이고 돌아왔다.

“삼월아 녹두장군이 왔대여.”

“남원성에 녹두장군이 왔다고요?”

“그뿐이 아니여. 전라감사가 보낸 군사마도 왔대여. 개남장헌티  동학군을 이끌고 전주성으로 와달라고 사정사정 했다는디.”

“머시여라? 긍게 시방 왜구가 쳐들어오고 있단 말이여라?”

삼월이가 겁에 질린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은 아녀. 왕궁이 왜놈들 손에 넘어강게 전주성에 있던 한양 군인들이 죄다 불려갔단 말이여.”

뚱이네는 물동이를 내려놓고 조단조단 듣고 온 말들을 풀어놓았다. 청나라와 왜국의 병사들이 조선에 상륙했다는 말을 듣고 동학군들은 점령했던 전주성에서 제 발로 나와 해산했다. 참다 참다못해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길이었지만 나라가 이리와 늑대 두 나라의 전쟁터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동학군이 또다시 전주성에 쳐들어오면 막으려고 주둔 중이었던 한양 군인들이 포로로 잡힌 임금을 구한다고 떠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갈팡질팡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왜적과 동학군 양편에 무방비 상태인 전주성에서 살길을 찾아 동학도는 개남장 있는 남원으로 양반들은 십승지를 찾아 무주 구천동으로 피난을 하느라 남문 밖 동문 밖 삼십 리 길이 흰옷으로 하얗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마솥에 깨 튀듯이 사람들이 무서워 사방으로 날뛰니 똥줄 탄 전라감사가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개남장에게 어서 동학군을 이끌고 전주성으로 와 달라고 한 것이제.”

뚱이네가 힘을 주어 아퀴를 지었다.

“글먼 우리는 어떡허고요? 우리도 전주성으로 따라가야 허는디 우리 아씨는 업고 가야겠지라?”

“개남장이 남원성을 놓고 전주성으로 가면 안 된다고 우물가에서 아우성이여.”

“어쩐데요. 왜적이 남원성에 들면 우리도 코가 베일 텐디.”

삼월이의 겁에 질린 목소리에 뚱이네가 답했다.

“걱정 말어. 개남장이 지켜줄 거여. 왜구가 쳐들어오는 앞 대문이 남원이여. 그래서 남원 임실 담양 순창 동학 도인들이 태인의 개남장을 남원성을 지켜야 한다고 모셔온 거여.”

“그래 봤자 하룻밤 사이에 한양성을 점령하고 청나라군도 물리친 왜적을 개남장이 무슨 수로 막는대요? 우리는 어차피 죽은 목숨...”

삼월이가 우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뚱이네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믿어. 하늘이 우리 편이여. 하늘이 개남장 손바닥에 개남하라고 명을 내렸응게. 태조왕은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임실 상이암에서 새나라를 세우라는 천명을 받아 조선을 세운거여. 개남장도 새 나라를 세우라고 하늘이 점지한 진인이란 말이여. 틀림없이 왜구를 물리치고 새나라를 세울 테니 걱정 말어.” 

“참말로 그럴까요?”

“그려. 삼월이 니도 주문을 부지런히 외워야혀. 그래야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왜구와 싸우다 날이 저물자 달을 끌어올려 왜구를 물리쳤던 태조왕 이야기 너도 들었제. 달이 뜰 때가 아닌데도 태조왕을 믿고 왜적을 물리치고자 한 백성들의 한 몸 한 목소리가 달을 확 끌어올려 사방을 대낮처럼 밝힌거여. ”

확신에 찬 의젓한 뚱이네 목소리였다. 동몽군의 납폐 수건이 대문에 걸리던 밤 운봉으로 몰래 길을 떠났다가 잡혀온 태리와 삼월이, 운봉댁이 남원성 옥방에 들어섰을 때 뚱이네는 빈대가 물어뜯는 가마니때기 위에 누워있었다. 옥방의 인연도 인연이라 송하 도사는 뚱이네를 태리가 누워있는 내아 별채로 불러 부엌살림을 맡겼다. 뚱이네는 흉년에 세금을 못 내 밤 도망을 친 유랑민으로 자식들도 서방도 길 위에서 다 잃고 과부로 떠돌다 동학에 입도한 여인이었다. 동학군들이 입을 옷을 짓다가 치마 밑에 몰래 옷감을 감춰 빼돌리다가 발각되는 바람에 옥에 갇혔던 욕심 많은 아낙네였다. 먹을 욕심도 많았고 양반이고 부자 이야기라면 놓칠세라 악담을 마다하지 않던 여인네였다.

“개남장이 인두대장 누이 때문에 걱정이 크시단다.”

사흘이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개남장은 수운 선생으로부터 선약을 받은 광한루 아래 서씨 약방 영감님께 선약을 들고 내아에 발걸음을 하게 했다. 그러나 태리는 여전히 누운채 눈을 뜨지 못하고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근디 삼월아 오늘 요천수에서 운봉 문달이가 큰 봉변을 당했다드라.”

“우리 나리마님이요?”

“흥, 나리마님은 무슨. 글겅이질로 여러 사람 목숨줄 끊은 악질 부자 아전이제.”

삼월이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문달이와 식구들 모두 입도를 허고 주문을 외며 숨어 살기로 약조허고 풀려난거라. 인두대장 누이 덕에 운 좋게 곤장도 한 대 안 맞고 그놈이 풀려난 거제.”

삼월이는 그 말에도 대답이 없었다.

“그란디 문달이가 지버릇 개 못 준다고 달고 온 종 머리통을 담뱃대로 내리치는 걸 동학군들이 봐부렀다마. 동학군들이 화가 나서 문달이 갓을 벗겨 물에 던져버렸대.”

“오메, 어쩐대요. 그래서 갓이 물에 떠내려가 버렸단 말이여라?”

“그럴 판이었는디 녹두장군이 동학군들 야단을 치며 다시 갓을 찾아주었다드라.”

“먹쇠 그놈이 원체 사람을 폭폭허게 허지라. 저하고 짝을 지어달라고 나리마님께 말했다지 뭐예요. 흥, 누가 저 같은 놈한테 시집간다고.”

“놈이라니. 온달도 평강 공주 만나 장군이 되었다지 않냐. 사람 함부로 말허는 것 아니다. 양반들은 날 때부터 똑똑했다냐. 평생 공부만 허니 공자왈 맹자왈 똑똑이 행세를 하는 것이제.”

“먹쇠는 생긴 것부터가 멍충이 같당게요.”

“옷이 날개녀. 비단옷에 통영갓 씌워놓으면 너나나나 이몽룡이제.”

“먹쇠는 그래봤자여라.”

삼월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날이 저물고 보리쌀을 확독에 가는 소리, 빠글빠글 강된장 지지는 냄새가 방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밥 짓는 아궁이 앞에서 뚱이네와 삼월이의 근심스런 목소리도 스며들었다.  

“그나저나 사흘을 저리 물도 안 삼키고 누워있으니 큰일 아니냐. 저러다 무슨 사달 나는 거 아닌가.”

“우리 아씨 죽으면 어쩐대요.”

삼월이 훌쩍이는 소리에 뚱이네는 핀잔을 주었다.

“목숨이야 하늘에 달린 것이고. 삼월이 니랑 나이도 같다면서 아씨 아씨 그만혀라. 다 같은 사람잉게.”

삼월이는 대답이 없었다.    


 

한밤중 태리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삼월이 코 고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윗목의 기름 종지에 불빛이 희미했다. 윗목에 뚱이네도 입을 벌리고 잠들어 있었다. 참을 수 없이 오줌이 마려웠다. 방구석에 요강이 보였지만 태리는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켜 가만히 문밖으로 나왔다. 맥을 놓고 물을 삼키지도 약을 삼키지도 않았지만 몸은 오줌을 밖으로 나갈 때라고 재촉했다. 다시 눈을 뜨고 않고 세상이 딱 끝나버렸으면 싶었다. 낮에 어머니가 울면서 태리야 태리야 불러도 눈을 뜰 수 없었다. 어머니가 아닌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고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러나 오줌은 눈물처럼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루 끝에 서니 흐린 달빛에 어두컴컴한 마당이 보였다. 뒷간이 어딘지 찾기도 전에 급한 몸은 어두운 마당 구석에서 오줌을 쏟았다. 남원 부사 식구들이 머물던 내아의 별채는 어느 구석에 옥잠화 몇 포기가 꽃망울을 터트렸는지 밤공기에 퍼진 꽃향기가 코끝에 아른댔다. 오줌이 밖으로 나가니 살 것 같았다. 그새 피를 빨겠다고 달려드는 모기가 손등을 물어 탁 쳤다. 밤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담장 밖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 담장 아래 풀섶은 이슬이 내려 촉촉했다. 왜구가 한양성을 함락하고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밤하늘엔 은하수가 아름답게 반짝였다. 은하수 사이로 견우별 직녀별이 가깝다. 오줌을 다 누고 일어서며 태리는 칠월 칠석이 코앞이구나, 칠석날엔 참았던 오줌 쏟아지듯 가뭄으로 메마른 세상에 큰비가 내릴까 이런 생각에 빠졌다.     

태리는 마루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앉아 밤새 우는 소리를 들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꼬박 사흘을 죽고 싶은 마음으로 누워있던 사이에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별이 반짝이고 몸에 오줌이 고이고 배가 고팠다. 태리는 혼자가 된 자신이 아주 작은 모기 같았다. 언제 누군가의 손바닥에 금세 으깨어질지 모르는 한없이 약하고 작은 생명, 언제 죽을지 몰라 한 치 앞을 모르고 가엾게 떨고 있는 생명이었다. 곳간이 쌀로 가득하고 궤짝이 돈으로 가득 찬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람의 목숨을 쥐고 흔드는 왕이었다. 주판알을 굴리듯 사람의 생사가 그 손 끝에 달려있었다. 빚을 못 갚아 아내를 할아버지에게 빼앗긴 초부꾼이 낫으로 할아버지 눈알을 쪼았다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흘 전의 세상은 이제 거울처럼 산산이 깨졌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낳고 죽은 어머니는 하늘에서 나를 보고 계실까?

저 많은 별 어딘가에 죽은 이들이 도착해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을까? 

운봉 외할아버지가 동학에 입도한 까닭은 살고자 했음이다. 할아버지 앞에서 늘 눈치를 보고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들이 사실은 할아버지를 다 죽이고 빼앗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와 나를 살리고자 했음이다. 돈을 꾸러 온 여인들은 어머니 앞에서 얼마나 굽실거렸던가. 아픈 부모를 살리고자 어린 자식을 살리고자 돈을 빌려달라고 꼭 갚겠다고 먼저 약속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돈 많은 외할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하고 재산을 빼앗고 불을 지르고 죽이려 들것이다.      

방에 들기가 싫었다. 홀로 앉아있고 싶었다.

오라버니가 동학에 입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힘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데 없어서 인두로 입을 지진 주인을 찾아 원수를 갚으려고 동학에 들었을까? 백정들이나 무당들이나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 그 사람들 얼굴을 가끔 마주칠 때가 있었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어딘가 성난 듯 보였다. 태리는 그런 사람들이 무서웠다. 김개남은 먹고살 만한 양반이었다는데 왜 동학에 들었을까? 세상이 하도 썩어 빠져서 아니면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영영 망할 것 같아서 아예 태조왕처럼 정말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고 싶었을까? 온갖 가난하고 천하고 서럽고 힘없는 사람들이 김개남을 초나라 왕처럼 떠받들어 세상을 뒤집어 버리려고 와글와글거렸다. 그리고 이제 임금은 왜놈들 포로로 잡히고 사람들은 장차 마을로 쳐들어올 왜적으로부터 기댈 사람은 개남장 밖에 없다고 사람들은 남원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전라감사처럼 어쩌면 임금도 왜구를 물리치고 구해달라고 개남장을 한양으로 부를지 모른다고 태리는 생각했다.

운이 좋은 것인가.

개남장 옆에 있는 것이 살길 인지도 모른다고 태리는 생각한다. 오라버니 인두가 개남장의 아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동학군들은 대장의 누이인 나를 죽이려들지 않을 것이다. 진짜 어머니는 죽었고 살아있는 어머니는 원수라지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어머니였다. 태리는 어머니와 능소화 핀 집과 운봉에서 제일 큰 고래 등 기와집인 외갓집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제 세상의 주인은 동학군이 되었다. 집도 종도 돈도 땅도 다 빼앗기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 칡뿌리를 캐먹거나 화전민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머니는 혀를 깨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이를 갈면서 되찾으러 할 것이다. 아버지 죽인 원수는 잊어도 재산 빼앗은 원수는 못 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이제 누구일까? 어떻게 될까? 장마철 넘치고 요동치는 성난 강물에 죽을지 살지 모르고 잠겼다 떠올랐다 떠내려가던 소와 돼지 개와 뱀 사람들처럼 자신의 운명도 산채로 격랑에 내던져졌다는 걸 태리는 알았다. 오줌이 빠져나간 덕분인지 배가 고팠다. 사흘을 굶었구나,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픔을 오래 참아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을 배가 고파 죽은 사람들을 태리는 처음으로 해본다. 얼마니 배가 고파야 죽는 걸까? 길바닥에 굶어 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태리는 담장 안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래 배고픈 사람들의 절망을 태리는 알 수가 없었다. 오줌을 비운 몸은 빈창자를 채우라고 신호를 보냈다. 수정과도 수박도 아닌 밥 한 그릇을 된장에 비벼 삼키고 싶었다. 옥잠화는 변함없는 달콤한 향기를 밤공기에 살랑살랑 내뿜고 있었지만 그 향기는 제사상에 퍼지던 죽음의 연기를 환기시키며 태리의 콧구멍에 어둡고 축축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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