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1894 갑오년 10장 전주성 선화당을 차지하다
전봉준이 남원 동헌에 도착했을 때 여러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녹두 왔는가?”
전라감사 김학진이 보낸 군사마와 자리를 함께 하고 있던 개남은 녹두가 장청 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서 뛰어내려 껴안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남원성을 차지하겠다더니 역시 형님은 허튼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남원 부사가 줄행랑을 쳤다는 소리는 잘 들었습니다. 하하하.”
전봉준도 김개남을 껴안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더운데 먼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시네. 총대장.”
원평 대도소에서 와있던 김덕명 대접주도 반갑게 웃으며 전봉준의 두 손을 잡았다. 눈치 빠른 동몽이 금세 달려가 시원한 물을 대야에 퍼왔다. 전녹두는 시원한 물에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진 얼굴과 손을 씻고 장청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원성에 입성하느라 아버님 제사에도 못 가봤네 그려. 미안하네”
옆에 앉은 김상흠 성찰이 말했다. 남원대접주 김홍기와 담양의 남응삼 흥양의 유복만 진안 이사명을 비롯해 임실 순창 금산의 즐비한 접주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송인회입니다.”
꿩 깃이 달린 검은 전모를 쓴 군사마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절을 했다.
“전주성에 주둔 중이던 군인들이 모두 한양으로 출발했습니다. 한양이 왜적에 넘어갔고 동학군이 곧 전주성에 입성한다는 남문 서문 장이 서지 않고 민심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나주성이 곧 함락되고 남원에서 백중날에 삼남의 백성이 대집회를 연다는 소문까지 퍼져 전주성이 온통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감사께서는 속히 도인들이 오셔서 민심을 수습해주시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김개남이 전라감사의 편지를 전봉준에게 건넸다. 일본군이 궁궐을 함락했으니 도인을 인솔하여 전주성을 지키며 국난을 이겨내자는 내용이었다.
“의논 후 대표를 전주성으로 보내겠소. 전라감사에 그리 이르시오.”
김개남의 말에 군사마 송인회가 절을 하고 자리를 떴다.
회의가 계속되었다. 김덕명이 녹두에게 말했다.
“일단 7월 백중을 기해 남원에 모여 국난에 대비책을 마련키로 하고 통문을 띄워 두려움에 떠는 도인들을 안심시켰네.”
“지난 취회처럼 원평에서 모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봉준의 물음에 김개남이 답했다.
“7월 백중은 큰 물이 드는 때네. 왜군들이 군함을 타고 동진강 화호 나루에 내리면 원평은 한나절 길목 아닌가. 왜군이 군대를 태워 군함을 타고 오면 위험하네. 남원은 왜적이 쳐들어온다 해도 지리산 골짜기들이 깊으니 숨어들기도 안심이네. 무엇보다도 이번 집회는 삼남의 도인들이 모여 국난에 대처할 방법을 찾고 뜻을 모아야 할 터 삼남이 모이기론 남원이 적격 아닌가. 가뭄이 심하지만 남원 요천강은 지리산 천 개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있으니 많은 이들이 모여도 여러모로 수월하지 않겠는가.”
전봉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학군들이 집강소 설치 순행을 하자 비적들이 저렇듯 더운 여름에 파리떼처럼 몰려다니다가 역병이 들어 다들 죽을 것이라고 양반들은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동학군들은 하루하루가 수행의 날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맑은 청수를 떠놓고 함께 주문을 외우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똥오줌을 누면 반드시 땅에 파묻었다. 코를 풀고 가래침을 뱉어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물이 더럽히지 않았다.
동학 법헌 해월 선생은 해마다 여름이면 위생수칙 통문을 접주들에게 보내 도인들이 역병에 걸리지 않도록 도소에서 교육을 시키도록 했다. 만병의 근원은 더러운 물과 상한 음식을 먹는 데 있다고 가르쳤다. 동학군들은 때가 아니면 음식을 입에 대지도 바닥에 드러눕지도 않았다. 길가에서 풋과일을 게걸스럽게 먹거나 짐승을 잡아먹지도 않았다. 끼니때가 되면 곡식이야말로 천지 부모의 젖이라 푸성귀에 보리밥 한술도 정갈하게 씹어 삼키고 언제나 자신의 몸을 하늘 대하듯 깨끗하게 씻어 보살피는 것이 법칙이었다. 그리하여 동학하면 역병도 비켜간다는 말이 나왔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동학에 입도했던 것이다.
“순천성 남원성이 함락되고 남원성이 총공격 중이니 감사가 두려운게지. 지난봄 전라감사 김문현처럼 패랭이에 짚신 신고 도망치기보다는 차라리 성문을 열어주고 감사가 자리보전을 하려는 수 아니겠습니까?”
“군사 없는 성에 왜적이 쳐들어오면 스스로 죽을 일밖에 없을 터.”
“전주성으로 당장 입성해야겠지요?”
“두말하면 잔소리.”
“감사가 문을 열고 기다리는 판에 전주성 입성이야 누워서 떡먹기 아닙니까. 천지신명 개벽굿을 치며 들이쳐야 전주성 사람들이 신이 날 판이니 우리 화산당접이 이번에도 앞장서 들이치겠소.”
교룡산성 아래 화산당접 이문경접주가 말했다. 남원의 광대패 소리패 무당패 재인패들이 모인 화산당접은 흥이 넘치고 몸이 날랬다. 신분의 굴레 차별의 굴레로 사무친 원한이 켜켜이 쌓인 화산당접 풍물패는 총을 든 지리산 산포수접과 함께 남원성 무혈입성의 일등공신이었다.
“화산당의 개벽 굿을 다시 보게 되겠구먼.”
왁자한 가운데 김개남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칼자루를 쥔 것은 우리요. 전주성은 무주공산, 입성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감사가 몸이 달고 애가 탄 지금이 전라감영 선화당과 전라도 전체 53개 군현의 행정권 사법권 군사권 재정권을 확보할 좋은 기회요. 전라도 통치권을 우리가 틀어쥐어야 각 고을 집강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오만 년 시운이 변하는 대개벽의 소용돌이 한복판입니다. 왜적의 침입 또한 개벽 세상의 시운에 다름 아닙니다. 세계의 판이 흔들리고 판이 새로 맞춰지는 때, 사나이 장부로 태어나 다시 못 올 좋은 때를 우리가 만난 것입니다. 오만 년 새날이 열리는 이때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겠습니까."
교룡산성 보제루에 매달린 큰 북이 천천히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전라감영 선화당을 전라도 대도소로 세우고 각 고을 집강소에서 고을의 문제를 우리 힘으로 다스려 봅시다.”
“딸꾹.”
누군가 딸꾹질을 했다.
다음 날 흰 말을 탄 전봉준은 말을 탄 수행원 수십 명을 이끌고 전주성으로 향했다. 동학 진영을 대표해서 선화당에서 전라감사 김학진을 만났다.
전라감사 김학진은 선화당에 동학대도소를 차리겠다는 전봉준의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화당은 전라감영 정청으로 전라감사가 도정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관찰사는 제주도까지 56개 군현 행정을 군대를 법을 진행한다. 선화당을 비워준다는 것은 곧 행정과 군대 사법권을 통째로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당치 않은 소리.”
“오늘 딱 하룻밤만 묵겠소. 그 사이 답을 주시오.”
말을 마친 전봉준이 두말없이 벌떡 일어섰다. 김학진은 기가 찼다. 완강한 전봉준을 붙잡지 않았다. 회담은 결렬되었다. 나주성을 제외한 50여 개 고을마다 수령이 도망쳐와 전주성 영저리에 숨어있고 아전들 포졸들도 줄행랑을 놓아 관아는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 전주로 도망쳐 숨죽이고 있던 양반들도 언제 왜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전주성에 동학군이 입성해 임진왜란 의병들처럼 왜적과 싸워주기를 기대였다. 안갯속 같은 날들이었다.
다음날 전봉준을 다시 만난 김학진은 선화당을 동학대도소로 내주겠다 약속했다.
“그리 할 줄 알았소.”
전봉준의 말에 김학진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시 눈을 감고 손바닥의 호두알을 굴렸다. 전봉준은 가슴이 벅차오름과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했으나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지난봄 동학군이 전주성에 입성했을 때 김학진은 전라감사 제수를 받아 삼례에 머물고 있었다. 한양에서 군대를 이끌고 온 홍계훈의 공격으로 시작된 완산 전투에서 동학군이 크게 패한 날 전봉준도 총에 맞아 쓰러졌다. 설상가상으로 청나라군 수만 명이 동학군을 토벌하기 위해 전주성으로 진격해 온다는 말에 성안의 군대와 백성이 혼비 백산중에 홍계훈은 당장 무기를 거꾸로 들고 항복하라고 연달아 서찰을 보내왔다. 이때 동학군 진영에서 삼례로 말을 타고 신임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달려간 이가 김개남이었다. 그때 김학진은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을 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소리치던 서슬 퍼런 한양 벼슬아치였다. 김개남은 학진의 목에 단도를 들이밀었다. 김학진도 어쩌면 그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전봉준은 주름이 많은 김학진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어디 한번 전라도를 손에 넣고 흔들어 보시게.”
호두 소리를 멈춘 김학진의 말이었다.
"정치는 생물이지.날뛰는 말을 타고 격량을 헤치면서 칼을 휘두르고 춤을 추는 일이네.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닐터."
"걱정마시오."
두 사람은 차후의 일은 오랫동안 서로 의논했다. 의논이 끝나고 전봉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개남은 언제 전주성으로 오는 것인가?”
“칠월 백중은 지나야 할 것이오.”
“내아도 비워줄 테니 그곳에서 침식을 하시면 될 것이네. 나는 관풍각에 들어 붓이나 놀리겠네.”
손 안의 호두알을 던져놓듯 김학진은 말했다. 하룻밤 사이에 부쩍 나이가 들어버린 얼굴이었다.
선화당을 나온 전봉준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완산의 봉우리들을 본다. 캐틀링 기관총이 흰 연기를 뿜으며 난사하던 저 골짜기에는 동학군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그날 총알이 박혔던 허벅지에 다시 통증을 찌르르 느껴졌다. 지난 5월 그날의 가득한 화약 연기는 걷혔어도 7월인 지금 매미 소리만 요란할 뿐 칼날 위를 걷는 듯 앞날을 알 수 없었다.
“삼례로 간다. 송희옥 형님을 만나 도집강을 의논해야 한다.”
수행원들에게 전봉준이 말했다. 그리운 형님. 삼례 봉동 김개남의 집 아름드리 기둥이 우뚝하던 사랑방에서 셋이 한 형제처럼 지내던 날들이 눈앞에 선했다. 어서 희옥과 마주 앉아 땅에 묻힌 항아리에서 길어 올린 시원한 막걸리 한잔을 들이켜고 싶은 마음에 북문을 나선 말에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