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룬파이트, 그리고 ONE
드디어, 이 칼럼 시리즈의 거의 마지막 장에 다다른 이야기가 될 거 같습니다. 드디어 아메리카, 유럽 쪽 (UFC로 대표되는)과 일본, 한국 쪽의 이야기를 하고, 이제는 "신흥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일단 이 <격투의 역사>의 이야기는 일단 쉬어도 될 정도인 것 같습니다. 물론, 시간이 더 흐르고 나면 더 할 이야기는 많을 것입니다. 그건 그때 가서 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일본-한국에 이어 성장하게 된 MMA의 새로운 시장, 바로 중국과 동남아 쪽의 이야기를 할 때가 왔습니다.
MMA라는 종목"만을" 놓고 봤을 때, 어쩌면 시작이 제일 느린 곳이 중국입니다. 중국에서 제일 큰 MMA 리그라 할 수 있는 무림풍(WLF)이 2004년 지역 단체로 시작했고, 또 다른 대형 단체인 쿤룬파이트(KLF)가 2014년 출범했고, 그다음에 JCK MMA (주쳉킹)가 2019년 출범해서 현재는 3대 리그 체제입니다. 물론, 중국도 2008년 경부터 "여러 단체가 난립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AOW(아트오브워) 라던가 차이나 MMA리그, 레전드 FC, 라닉(RUFC) 같은 여러 대회들이 있었지만, 이쪽은 운영난 (재정난은 중국의 경제가 당시 성장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정 문제보단 단체 운영 부실이나 도박 연루, 삼합회 등의 폭력조직과의 커넥션 등의 문제가 컸습니다.)의 문제로 정리되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투기종목"의 역사가 있는데도 왜 이렇게 MMA 종목은 늦게 오게 되었을까요?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하여는 조금 복잡한 사정이 존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문화 대혁명"을 이유로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오쩌둥이 "낡은 것을 혁파" 한다고 오랜 전통이나 그런 것들을 깡그리 없애버리는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이러면서 후에 개혁개방 이후에 덩샤오핑 시기에 "우슈를 국가체육으로 하자" 면서 우슈와 쿵후의 부활을 시키려 하니.... 지방의 고류 권법이나 무기술등이 깡그리 실전되어 버린... 즉 검도에서 일본이 폐도령 이후 지역에서 내려온 고류검술이 폐전된 거와 같은 일을 똑같이 겪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제일 피해를 봤던 것은 역시 "소림사" 일 것입니다. 우리가 소위 "소림 권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은 "이 형태가 아니다"라고 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맞습니다. 보통 "소림 권법"의 원형에 가까웠던 것은 심의파 (심의육합권) / 소림 72 예 / 소림곤법천종인데, 이것들은 지금은 중국 본토보다는 오히려 "대만에서 원형이 유지된" 경우가 많고, 지금 소림사의 경우, 형의권과 기타 현대 투기종목들, 즉 권투, 킥복싱 등의 기술이 더해진 상태에 러시아 삼보와 솔각이 합쳐진 '산타'가 약간 섞인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로 초기 중국의 MMA 단체들은 "MMA 경기"를 한다기보다는 "산타 경기" 내지는 "킥복싱 경기"에 가까운 대회를 많이 열었습니다. 보통 산타는 "유술+타격기"를 가진 우슈 분야고, 거기서 유술만 빼면 거의 킥복싱 동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권법"이라던가 "남권-북권" 등의 것들은 그저 "꾸역꾸역 살린답시고 살린 전통"에 불과한 것이며, 그나마 문혁 이후에는 "지극히 실리적인 것들"만 중국에 남아있었던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피지컬"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보통 지금의 장웨일리, 쑹야둥 그리고 그 전의 리징량 같은 UFC에 진출한 중국 출신 선수들을 보고 "피지컬이 왜?"라고 말하실 순 있겠지만 중국 선수들이 피지컬 적으로 한국, 일본 그리고 타국 선수들에 밀리지 않게 된 것은 오히려 2010년대의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역시 문제는 마오쩌둥입니다. "대약진 운동"이라는 극단적인 정책이 도리어 "전국적인 아사자"를 불러왔고, 덩샤오핑 이후 개혁개방이 되면서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중국의 식문화라던가 신체적 체질 개선이 이뤄지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이 오기 전까지는, 중국의 투기종목 선수들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중앙아시아 선수들을 "이기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고전을 해왔던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마오쩌둥-덩샤오핑의 "실패한 정책"에 대한 여파는 꽤 오래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국이 "이렇게 빨리 UFC 리거를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쿤룬파이트가 생긴 게 2014년이고, 리징량이 UFC 173에서 데뷔전을 했을 당시가 2014 시즌 (레전드 FC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UFC로 진출했습니다.)라고 하면 보통 중국에 MMA 단체가 난립했던 2008~2009년을 생각해도 4~5년 만에 달성한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인데요. 보통 이유는 역시 "2000년대 중반 중국의 경제 성장" 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일단 90년대 후반까지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막 벗어난 상황"이었고, 홍콩도 막 반환받은 마당이었으며 (홍콩의 반환은 1997년에 정식으로 진행됩니다.)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커진 것은 2002년 당시 중국이 남자 축구팀의 월드컵 첫 진출이 이뤄진 이후 (여자월드컵은 그보다 빨랐습니다.)라고 보면, 일단 "갑자기 늘어난 자금"으로 전문적인 선수 육성이 가능했던 것 + 홍콩은 그래도 "일국양제"의 체제 하에서 미국, 영국 등의 코칭스탭이나 MMA 관련 전문 육성 인력의 영입 등이 가능했던 것 + 그리고 생활 수준 및 체질과 식습관의 변화로 "투기종목을 하기 좋은 상태의" 피지컬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의 삼박자가 잘 맞았던 것이 그 영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쿤룬파이트가 생긴 이후 중국의 MMA는 UFC 등과 제휴를 하고 (쿤룬파이트의 파이트패스 입점 리그 등록과 상하이 UFC APEX 센터 개설 등의) 해외와의 교류를 직접적으로 하면서 (체육에는 워낙 진심인 중국을 생각하면 납득이 갑니다.) 동아시아 쪽에서는 제일 먼저 "UFC 챔피언을 배출한" 국가가 되었던 것이죠.
그에 비하면 동남아는 중국과는 다르게 "독자 노선"을 탄 형태로 성장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무에타이"의 프로리그가 긴 역사를 가진 태국의 영향력이 당연히 컸고, 그와 함께 1965년, 동남아의 역사를 바꾼 거대한 사건의 영향이 제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이라는 나라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원래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한 지역"이었습니다. 문제는 싱가포르 지역이 "화교들이 오래전부터 많이 산" 지역 즉 "케세이 에리어"라 불린 지역이었다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말레이인. 즉 말레이시아와 현재 인도네시아와 브루나이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인구 구성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섞일 수가 없었던 것이 제일 컸고, 결국 말레이시아 조정 (입헌군주국이므로) 은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왕국 수립 후 딱 2년 만에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연방왕국에서 빠진다"라는 결정으로 "너네 우리나라 아님!!"이라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대로면 "말레이시아에게 수도공급이 끊겨서 아사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와 "수카르노와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가 싱가포르에 군대를 이끌고 오면 어쩌지?"라는 공포감이 엄습한 싱가포르와 리콴유는 "빠르게 성장하는 수밖에는 없겠다"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강제독립 후 바로 영연방에 가입을 하고, 원래는 반공주의자이긴 했지만 "성장하려면 적과도 손을 내민다"라는 정신으로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와 이후 베트남 전쟁 승전국이 된 베트남에게도 손을 내밀면서 "경제 성장"을 엄청 빠르게 해 버리면서 싱가포르는 1980년 경부터 "부국" 이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ONE Championship (이하 ONE) 이 생기기 전인 2010년까지는 "프로복싱"과 "킥복싱" 경기만을 주로 열었고, 솔직히 이거만으로도 충분하긴 했습니다. 왜냐면 싱가포르에는 "호텔 아레나" 등이 굉장히 많았고, 여기서 여는 프로복싱 경기와 프로 킥복싱 경기 PPV 로도 "돈을 그냥 쓸어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싱가포르가 왜 갑자기 "MMA"를 하게 되었냐...라고 하면 "시장 개척" 이 컸습니다. 그리고 이걸 위해선 설명해야 하는 하나의 사건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2008년에 일어난 "서브프라임 사태"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게 왜 싱가포르에 영향을 준거죠?라는 질문에는 아무래도 "프로복싱 프로모터" 들이 미국과 영국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이 제일 컸습니다. 즉 미국과 영국의 경제가 나빠지니, 미국과 영국의 프로복싱 프로모터들은 프로복싱 경기를 대폭 줄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PPV 경기도 미국과 영국 지역으로 집중해서 치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홍콩에서의 경기? 싱가포르에서의 경기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몇 년이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일본 쪽 격투기 단체들이 싱가포르에서 투어 경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지난번에 말했다시피 여기는 "재정난과 단체 내 부패, 야쿠자와의 결탁" 등으로 PRIDE와 DREAM이라는 양대 리그가 한꺼번에 몰락했습니다.
결국 이런 여러 상황이 겹쳐서 결국 싱가포르가 그나마 "자본으로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있던 마당이라 결국 "이렇게 된 거 그냥 우리가 프로모팅을 직접 한다"로 귀결이 납니다. 그렇게 해서 먼저 시작한 것은 역시 "킥복싱" 프로모팅이었습니다. 바로 근처가 태국이었고, 태국은 무에타이의 프로리그가 있긴 했지만, "태국의 프로리그 만으로" 무에타이 풀이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메꿔주기에 이미 싱가포르가 충분히 그 역할을 하고 있었으므로, 2011년 ONE Championship이, 그리고 2012년 K-1의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일부 권리를 떠안아서 글로리(GLORY)가 만들어집니다.
다만, 처음에는 사이좋게 "킥복싱 단체"로 시작을 했었지만 ONE은 GLORY에 초반에 다소 고전을 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GLORY 가 당시 망해버렸던 FEG의 인프라를 어느 정도 인수한 상황이라서 K-1의 "후신"을 자처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킥복싱 "만으로는"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ONE의 차트리 싯요통 대표 본인이 낙무아이 출신의 입식격투가이긴 했지만, "아 이대론 안 되겠다"라고 하여, 결국 바로 방향을 "종합격투기 경기를 주로 하고 입식격투 경기를 부업으로 하는" 방식으로 흥행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략은 다행히도 먹혔습니다. 그리하여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MMA의 ONE, 입식의 GLORY"라는 형태로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유지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싱가포르의 움직임은 다른 ASEAN 국가들에게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됩니다. 일단 필리핀 마닐라의 "지역 MMA단체"로 운영되던 URCC가 2013 시즌을 기점으로 ONE과 함께 협력을 하게 되고, 인도의 단체들이었던 SFL(슈퍼파이트 리그)와 FCC(풀컨택트 챔피언쉽) 도 2013 시즌부터 ONE과 협력을 하게 됩니다. 즉, 2010년 전까지 "태국 무에타이에 다소 입지가 밀렸던" ASEAN과 인도의 지역 MMA 단체들이 싱가포르의 "헤쳐 모여"에 일종의 협력 리그 체계를 만들면서 "독자 노선"을 타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물론 인도는 이 와중에 운영상의 문제 등으로 FCC가 2016년 도산, SFL이 2018년 도산을 하는 문제가 있었고 구조조정을 거쳐서 MFN(매트릭스 파이트 나이트)이라는 새로운 단체만 인도에 남는 식으로 되었고, 물론이 MFN도 ONE과 협력하는 형태로 운영 중입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싱가포르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2020 시즌 바로 GLORY가 "단체 채권단 관리 절차"를 선언하게 되면서 싱가포르는 이제 공식적인 격투기 리그는 "ONE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ONE은 그래도 코로나19 비상사태가 종료된 후에도 살아남았고, 현재도 운영상태입니다.
ONE의 특색 아닌 특색(?)은 아무래도 "세부 종목" 구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우리가 ONE의 특색을 "원형 케이지"라고 하긴 하지만, 아주 정확한 말은 아닙니다. 이 세부 종목들은 "링의 종류" 그리고 "쓰는 장구류의 종류"에 따라서 구분이 됩니다. ONE 경기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에게 굳이 설명을 드리면...
ONE 킥복싱 : 원형 케이지 + 킥복싱 기어 (복싱글러브, 밴디지, 파울컵, 킥삭스 착용) - 킥복싱 룰은 과거 K-1과 GLORY의 룰을 계승하므로 팔꿈치 공격 및 클린치 상태에서의 일부 공격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ONE 무에타이 : 사각 링 (룸피니-라차담넌 규격링 동일) + 오픈핑거 글러브 + 무에타이 규정복장 (파울컵 착용, 킥삭스 선택, 안 신고 맨발로 해도 됩니다.) - 무에타이 룰은 ASEAN 지역 동일룰 (태국-싱가포르 공통룰)을 적용합니다.
ONE MMA : 원형케이지 + 오픈핑거 글러브 + 파울컵 + 맨발 - 이 부분은 네바다주 MMA 규정을 그대로 따릅니다.
ONE 그래플링 (최근 신설) : 원형케이지 + 파울컵 - 서브미션 그래플링만 되며 반대로 입식기술이 되지 않으므로 ADCC 등의 프로 그래플링 대회와 다소 유사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보통 한국 분들은 "ONE MMA 정도만" 보시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이 경기들은 "대부분 싱가포르 현지 지상파 TV 중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UFC의 경우 PPV (UFC 파이트패스 구독이나 현장 티켓을 구매해야만 볼 수 있는 경기)와 UFN (ESPN, 폭스스포츠 등의 스포츠채널 TV 중계) 경기가 나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ONE은 PPV급에 해당하는 "넘버 시리즈"와 주간 경기인 "파이트나이트" 경기가 모두 다 지상파중계입니다. 이 부분에선 "역시 돈 많은 싱가포르"라는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편은 "격투의 역사 - 에필로그"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