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몸“을 움직여 남과 겨룬다는 것.
처음 이 칼럼 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는 UFC300 대회 직후였던 5월 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4개월의 대장정을 일단 멈추며 다시 이 칼럼 시리즈의 첫 번째 문장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왜 종합격투기에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
이 칼럼시리즈에는 여러 이유로 생략했던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UFC가 2010년대에 왔을 때 생긴 여러 경쟁 단체들, 특히 스트라이크포스와 벨라토르가 있었습니다. (UFC가 여성부 디비전이 없었을 시절)의 인빅타 같은 여성부 전용 대회도 있었고, 현재 PFL의 전신인 WSOF(월드시리즈 오브 파이팅) 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들이 이후 UFC에 인수되고, WSOF-PFL에 벨라토르가 인수합병되어 신생 PFL이 되어 현재 북미 MMA의 2개의 메이저리그가 있기까지는 이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다소 밀어두었습니다.
또한 유럽-아프리카권의 큰 대회인 KSW(EU), 케이지워리어스(영국), EFC(남아공) 도 일단은 이야기를 크게 넣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전엔 러시아의 큰 MMA 리그였던 M-1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유럽권은 결국 2020년대 UFC가 “파이트패스”라는 입점리그 체제를 만들면서 일종의 “팜 리그”처럼 되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하면 KSW나 케이지워리어스도 많이 리그의 수준은 올라온 것도 사실입니다. 얀 블라코비치나 패디 핌블렛 같은 현재 UFC 선수들이 이런 유럽리그를 거쳐서 올라온 선수들이고, 점점 DWCS를 뚫는 유럽 리그 출신들도 많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크게 넣진 않았던 것은 “역사”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도 있습니다. 격투의 “역사”라는 것. 결국 우리가 왜 “싸움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고찰을 해보다 보니 판크라티온이 있었고, 씨름이 있다는 것과, 원시적인 형태의 복싱과 레슬링이 있었고, 무에타이가 있었고, 유술 그리고 유도가 주짓수로 이어지고, 가라테와 태권도, 우슈의 여러 분야들까지 다양한 “투기종목”들이 있었고, 그중에서 제일 “효율적인 것들”을 모아 “종합격투기”라는 종목이 나왔던 것이지요.
전쟁에서 “맨손 격투” 가 버려졌던 것은 사람들에게 “무기”라는 것이 발명되고 나서였습니다. 그것은 맨손으로 잡기 힘든 맹수를 사냥하고, 맨손 격투로는 한 명을 상대로 오래 걸렸던 싸움을 “살상”이라는 방법으로 쉽게 끝내버릴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원래 “맨손 격투”는 버려지는 게 맞았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맨손 격투”가 버려지지 않았던 것은 맨손 격투의 방향성이 “외부를 상대로” 하던 것에서 “내부를 지향”한 것이 컸습니다. “몸을 움직여 남과 겨룬다는 것” 은 다른 사람들을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아닌 한) 죽이는 것은 아니었고, 그것이 오래 전의 고대 올림픽이나 동양에서 있던 제례행사에서 행해졌고, 그것을 잘하는 이에게 그만큼의 “땀의 대우”를 해 왔던 아주 원시적이지만 당연한 “수고하여 먹을 것을 얻었던” 시대였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시간이 흐르며 “전업 선수“ 즉 프로선수라는 이름의 직업으로 남았던 것이고요.
하지만 “프로 선수”들의 시대가 와도, 아마추어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시 돌아와서 “자기 자신을 단련한다는 것”에 집중했던 사람들. 점점 시대가 육체노동을 하는 시대에서 정신노동을 하는 시대로 오면서 육체적 건강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피로를 풀고 싶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로 인해, 체육관이 비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 “어린아이들도 한 도시국가의 시민으로 키우기 위한 차원” 에서 짐나지움이란 곳에서 이뤄진 격투 훈련은 시대가 흘러서 어린이들이 뒹굴고 뛰며 하는 “놀이 체육”의 시대로 바뀌어 갔습니다. 결국 게임이론의 원론적 이야기나 사회학의 원론적인 이야기들 (행동-보상 체계)로 돌아온 것 같지만, 어쩌면 이런 “행동과 보상의 체계”를 가장 직관적으로 맛볼 수 있는 것은 “운동”이었고, 남과 겨루는 “경쟁”의 요소 속에서 내가 더 강인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은 투기종목을 하는 가장 원초적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오늘도 도장에서 뛰는 어린이들이 있고, 청소년들이 있고, 청년들이 있는 것일 겁니다. 저도 아직도 1998년, 처음 동네 태권도장의 문을 이웃집 어른분을 따라서 들어가, 2009년, 그 도장에서 4단을 따고 나서 하산을 한 후의 도장 문을 걸어 나왔던 그 마지막을 기억합니다, 물론 태권도는 명예적으로 주어지는 10단을 빼면 9단까지 있어서 고작 절반이자 고단자의 시작단인 4단에서 이것을 멈춘 것이 무엇이 대단하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있긴 할거 같습니다. (요즘 하도 악플을 달 “건수가 보이면 “ 물어뜯고 보는 시대라 그냥 먼저 이야기합니다 하하하…) 그러나, 4단에서 5단으로 가는 것은 “나이제한“이 있었고 (5단부터는 최소연령기준이 청년 이상입니다.) 운동 중에 얻었던 부상이 너무 심해서 더 뭔가를 할 수가 없었던 때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느꼈던 많은 좌절들 중에 하나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체감했던 것들, 운동을 하면서 터득했던 것들은 아주 후에 다른 곳들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길게 쉬어도 좋으니 언젠가는 다시 이 길을 쉬엄쉬엄이라도 걷는 것” 이라던가 “꾸준히 하는 것” 이라던가, “다치지 않는 것” 이라던가 그런 마음가짐들. 그런 것들이 이 4개월의 이야기를 완주할 수 있게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격투의 역사” 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하는 날이 언젠가는 다시 오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파트에서는 아무래도 전체적인 개괄보다는 “어떠한 선수”의 일대기라던가, MMA계에 있었던 어두운 이야기 (특히 금지약물) 등의 이야기가 될 거 같긴 하지만 그러기엔 이렇게 길게 분량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도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을 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이 긴 4개월의 두서없고 뭔가 덜 정리된 듯한 이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른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아, 그래도 서두에 했던 문장에 답은 내려야 겠군요. 왜 사람들은 종합격투기에 열광을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과 너무나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칼럼 시리즈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