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끝'을 결심했더라도
다시 '시작'을 결심하면
모든 판은 새롭게 시작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자신이 창조해왔고
창조해 갈 인생 작품인 것이다.
지금 자신의 삶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해지지도 않은 가능성을 닫고, 희망을 등지는 선택을 해오진 않았는지 한번 돌아보자.
감옥의 문창살 밖을 내다 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흙탕물을 내려다 보고,
한 사람은
밤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본다.
모래 사막도 폭염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단지 변한 건
그녀의 마음뿐이었다.
하늘에 별이 아무리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어도 고개 들어 바라보지 않는 한, 그 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흙탕물만 바라보는 사람에게, 세상은 흙탕물만 존재할 뿐이다. 개구리가 우물만 고집한다면, 그 속의 세계가 전부다. 외로움은 세상과 아무 상관이 없다. 자신이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서커스단에서는 어릴 적부터 아기 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묶어놓는다. 안간힘을 써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인식하며 자란 코끼리는 성인이 돼도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 말뚝을 뽑아버릴 힘이 충분하지만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말뚝이 없어도 평생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벼룩은 한동안 툭툭 튀어 오르며 계속 부딪힌다. 그러자 몇 마리는 부딪히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후에는 한 마리도 부딪히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판을 치워보았더니 그래도 딱 그만큼만 튀어 오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와 같이 벼룩도 한계에 부딪히자, 스스로를 그 한계 안에 가두어 버린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 그래서 외부의 부정적인 말과 행동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보고 듣는 자신을 향한 말, 시선, 행동들은 고스란히 자아 이미지로 각인이 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스스로 묶여 벗어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잘못된 이미지를 자신이라 믿고 살아간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 틀을 깨고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는 창작자다. 가능성을 믿고 변화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될까!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두려움이 들 때 이 문장을 떠올리면 "왜 안돼?!"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자신감과 확신이 차오른다.
한계 짓지 않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